계엄의 말로
계엄을 선포한 정치지도자들은 어떤 이유에서 계엄을 발동했고, 어떤 정치적 종말을 맞이했을까.
17세기 영국의 찰스 1세는 계엄을 수시로 발동했고, 전쟁을 자주 일으켰다. 그는 1628년 전쟁으로 고갈된 재정 확충을 위한 특별세 부과를 위해 의회를 소집했다. 의회는 특별세 허가 조건으로, 그의 폭정을 바로잡기 위해 권리청원을 승인할 것을 압박했다. 권리청원의 핵심은 의회의 동의 없이 과세할 수 없고, 평화 시에는 계엄을 선포할 수 없으며, 백성을 군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세수 확보를 위해 이를 받아들였으나, 이듬해 의회를 해산하고, 11년 동안 의회를 소집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장로교도와의 전쟁 패배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자, 찰스 1세는 의회를 소집할 수밖에 없었다. 의회는 왕의 실정을 강력하게 지적했다.
왕과 의회의 갈등은 청교도 혁명이라는, 왕당파와 의회파 간의 내전으로 이어졌다.
전쟁에서 패배한 찰스 1세에겐 법원에 의해 반역죄로 사형이 언도됐다. 처형 직전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 국민들의 자유를 갈망했다고 주장했다. 또 국왕의 통치권은 누구도 넘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 역사상 첫 군주 처형이 이뤄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이니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찰스 1세의 주장이 매우 유사하다. 두 사람 모두 의회의 통제가 싫어서 계엄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세기 들어 가장 놀라운 계엄은 1975년 인도의 계엄이다. 당시 총리는 인디라 간디. 초대 총리이자 독립운동가로 존경받았던 자와할랄 네루의 딸이었다. 그는 1971년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확고한 정치지도자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총선 당시 그가 저질렀던 불법선거였다. 공무원을 선거에 동원했고, 유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 1975년 6월12일 인도 고등법원은 인디라 간디의 의원 당선을 무효로 하고, 6년간 출마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 달 24일 대법원은 대부분의 판결을 인용했다.
그러자 하루 뒤인 6월25일 인디라 간디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21개월간 지속된 계엄 기간에 11만명의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대학생이 체포됐다.
계엄이 충분했다고 생각했는지 인디라 간디는 1977년 계엄령을 해제하고 총선을 치렀다. 결과는 여당이었던 인도국민의회당의 참패. 인도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인디라 간디는 1980년 총선에서 승리해 다시 총리직에 복귀했다. 하지만 재임 기간 시크교도를 사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인디라 간디는, 결국 1984년 시크교도 출신 경호원에게 기관총 수십발을 맞고 사망하게 된다.
윤석열과 인디라 간디의 공통점은, 계엄 선포 배경에 개인적 곤경이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은 명태균 게이트를 가리키며 “이게 나라냐”고 말한 다음 며칠 뒤 계엄을 선포했다.
20세기에 시작해 21세기까지 여파가 이어진 계엄도 있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그가 소속된 정당은 패배해 제3당에 머물렀다. 집권 기간 내내 여소야대를 경험한 후지모리는, 1992년 4월5일 티브이 연설을 통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군대가 의회에 진입했다. 계엄 직후 치러진 1992년 11월 조기총선에서 소속당은 과반을 달성했다.
그는 1993년 개헌에, 1995년 재선에 성공했다. 2000년에는 부정선거로 가까스로 3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인기가 떨어져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후지모리는 일본으로 도주했고, 국회는 영구적 도덕장애라는 명분으로 그를 탄핵했다.
2005년 칠레를 우회해 페루로 복귀하려던 그는 칠레 정부에 붙잡혔고, 2007년 페루에 압송되었다. 재판에서는 총 25년형이 선고됐다. 2023년 최종 사면을 받았으나, 2024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후지모리는 집권 2년여 만에 여소야대를 못 견디고 계엄을 선포했다는 면에서 윤석열과 매우 흡사하다. 차이라면 후지모리는 계엄에 성공해 3선까지 했다는 점이다.
역사상 친위 쿠데타는 대부분 성공했다.
윤석열의 계엄이 성공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위 사례가 생생히 보여준다. 아마도 수십년간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윤석열 쪽은 탄핵 재판에서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례와 비교했을 때 누구보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심판을 받고 있다.
이제 정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준일 | 시사평론가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0) | 2025.02.12 |
---|---|
트럼프 "가자는 거대한 부동산 부지"…아랍권 거센 반발 (0) | 2025.02.11 |
역사 왜곡하는 역사 강사 전한길의 위험한 행보 (0) | 2025.02.11 |
트럼프의 ‘영토 먹방’ (0) | 2025.02.11 |
트럼프의 ‘의회 폭동’ 사면,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0) | 2025.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