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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형 안보 딜레마’ 곧 닥쳐온다

道雨 2025. 2. 24. 09:02

‘유럽형 안보 딜레마’ 곧 닥쳐온다

 

 

 

 “이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 대서양 동맹은 끝났다. 유럽은 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얼마 전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했던 독일 지인이 필자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다. 유럽 전역을 뒤흔든 제이디 밴스 미 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뮌헨 발언에 대한 반응이었다.

 

올해 44살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발언 요지는 이렇다. 2014년 이전의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회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의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전후 우크라이나 안전을 위해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일은 없고 나토군을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해서도 안 된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40살 밴스 부통령 발언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는 안보회의 초청 강연에서 안보 사안은 거론하지 않고, 유럽 민주주의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섰다. 이민, 표현의 자유, 선거제도 등의 문제점을 열거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미국이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없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오는 6월 나토 정상회담 전까지 모든 회원국이 지디피(GDP)의 2% 방위비 분담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의 고압적 태도에 대한 유럽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여론 지도층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미국을 설득, 대서양 동맹을 살리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종속적인 제후 국가냐고 반문하며 이번 기회에 유럽 안보의 독자적 협력 토대를 마련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중국과의 대결을 관리하기 위해 러시아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게 되면 유럽이 버려진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유럽형 안보 딜레마가 우리에게도 곧 닥쳐올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트럼프의 미국’에 대한 희망적 사고 편향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가(MAGA) 지지자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이들에게 한국은 대표적인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부각되어왔고, 한반도 유사시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을 미국의 자동 군사개입을 촉발하기 위한 ‘인계철선’(부비트랩)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특히 밴스, 헤그세스와 같이 테러와의 전쟁(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참전한 40대 세대에게는 미국의 젊은 병사들이 다른 나라의 전쟁에서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과거와 같은 ‘혈맹 읍소형’ 접근은 역효과를 내기 쉽다.

 

둘째, 정공법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주력군이 되고 미군이 지원군이 되는 전력구조로 가야 한다. 또한, 전시작전통제권도 조속히 전환해야 한다. ‘한국의 방어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하고 동맹의 틀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트럼프 행정부와 거래주의적 ‘딜’이 가능해지고 한-미 동맹도 건재할 수 있다. 우리 정부 하기에 달렸지만 주한미군이 없어도 미국은 ‘역외 균형자’로서 한국에 대한 해공군 지원과 확장억제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자연히 방위비 분담 압력도 완화되기 마련이다.

 

셋째,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포함한 북-미 간 직거래를 반대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 핵폐기’(CVID)를 목표로 삼되 그것이 대화와 협상의 절대적 전제조건이 될 이유는 없다. 당장 시급한 것은 북-미 정상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의 위기를 막는 예방외교다. 이를 통해 북한의 핵 활동을 중단시키고 핵 물질과 탄두를 줄여나가는 한편, 중장기적 안목에서 점진적으로 핵을 폐기해나가면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어서는 안 되며, 북-미 비핵화 협상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중 갈등에 대한 연루의 위험을 피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조성할 수 있는 창의적 외교가 요구된다. 한·미·일 공조를 지속하되 경직된 진영 외교의 틀에서 벗어나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중·일 3국 협력 체제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북·중·러 3국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조율해 새로운 동북아 안보 구도를 만드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트럼프 2.0의 미국은 우리가 종전에 알아왔던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여 슬기롭고 당당하게 앞으로 다가올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적 위기의 조속한 타결과 국가 대전략에 대한 국민적 합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