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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망국적 헌정 위기’ 직시해야

道雨 2025. 3. 31. 10:04

헌재는 ‘망국적 헌정 위기’ 직시해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하염없이 미뤄지면서, 국민의 불안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으로 헌정을 파괴한 대통령이 넉달 가까이 국가원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또 다른 헌법질서의 파괴다.

윤 대통령 파면 선고를 미루는 헌법재판관들도 이제 내란 사태 연장의 공범이라는 비판도 무리가 아니다.

 

헌재의 선고 지연이 다른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서, 일부 헌법재판관이 고의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심지어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임기 종료일인 4월18일까지도 헌재가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명의 재판관이 퇴임하면, 헌재는 6인 체제로 돌아가 어떤 선고도 내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헌정이 파탄 지경에 몰리는 것이다. 이후 혼란상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망국적 헌정 위기가 도래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헌재가 하루하루 시간을 허비하는 만큼, 우리가 쌓아온 정치·경제·외교 등 모든 분야의 국가적 역량과 자산이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헌재가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고, 또 나라를 망국의 대혼돈에 빠뜨릴 만큼 무책임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조속히 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해 국가 정상화의 길을 터야 한다. 이는 헌법과 양심에 따라 헌법 수호의 직분을 다하는 헌법재판관이라면 필연적으로 도달할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헌법재판관에게 부여된 의무이기도 하다.

만에 하나 정치적·개인적 이해관계에 매몰돼 다른 선택을 한다면, 헌법의 명령을 배반하고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행위가 된다. 국민과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다.

 

한덕수 권한대행도 망국적 사태를 막기 위해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즉시 임명해야 한다. 지난주 한 대행 탄핵심판 선고에서 헌재는 국회 선출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게 위헌이라는 다수 의견을 내놨다.

또 헌재는 지난 2월 ‘최상목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못박았다.

이처럼 명백한 위헌임이 확인됐는데도 마 후보자 임명을 계속 미룬다면, 한 대행은 헌정 질서를 지킬 의지가 없는 것을 넘어, 헌정 위기를 조장하려 한다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

 

민주당은 한 대행이 4월1일까지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중대 결심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위헌 상태를 해소해야 할 것이다.

 

 

 

[ 2025. 3. 31  한겨레 사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