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재

궁예 석등 사진 발견

道雨 2008. 1. 19. 16:53

 

 

 

         일제때 촬영한 '궁예 석등' 사진 발견

 

 

 

                                     

 


  지금은 볼 수 없는 궁예도성과 국보급 석등의 모습이 담긴 일제때 촬영된 선명한 화질의 사진 4장이 최초로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원 철원군 홍원리, 중강리 풍천원 일대에 세워졌던 궁예도성은 한국전쟁의 격전지 한 가운데 놓여 있어 포화에 휩싸이는 비운을 겪었다.

  휴전 후에는 비무장지대 내 지뢰밭 한 가운데 놓이게 돼 일반인의 출입은 물론 학술적인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전설 속의 성으로 남아 있다.

  이번 사진 발견은 철원군의 요청으로 문화재청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뒤져 찾아낸 것으로 비록 흑백이지만 화질이 깨끗해 궁예도성과 석등의 선명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속의 궁예도성은 외성의 일부로 추측되는데 천년 풍상을 겪으면서 흙이 무너져 내리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채 방치돼 있으며 주변은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모습이다.

  고려사 지리지에는 "궁예궁전의 옛터가 동주(東州.철원의 옛 지명)의 북쪽 27리 풍천벌에 있으며 지금 그 위성의 둘레는 1만4421척(4370m)이요 내성의 둘레는 1905척(577m)인데 절반이나 무너졌으며 궁전의 터가 아직도 완연하게 남아있다"고 기록돼 있다.

  궁예도성은 후삼국시대인 904년 궁예가 고암산을 진산으로 정해 건립한 태봉국의 왕궁을 호위하는 성으로 밑 부분은 석축으로, 상단 부분은 토축으로 건립됐다.

  철원군은 지난해 2월 태봉국 철원정도 1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 1억원을 들여 궁예도성의 400분의 1크기인 축소 복원모형을 제작해 군청로비에 전시해 놓았다.

  석등은 도성의 남문에 높이 280cm의 화강암으로 제작됐으며, 일제때인 1940년 7월30일 국보 제118호로 지정된 중요한 문화재다.

  사진 상에는 석등 둘레에 나무 막대로 보호대를 설치한 것으로 미루어 볼때, 조선총독부가 국보로 지정한 직후 촬영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특히 석등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도록 현지 농민으로 보이는 사람을 곁에 세우고 촬영한 모습이 이채로워 보인다.

  또한 이 석등 외에 제작 양식과 보존상태가 다른 석등 사진도 발견돼, 당초 알려진 사실과 달리 석등이 2기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철원군은 최근 일고 있는 사극 열풍으로 궁예에 대한 인식변화와 궁예도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반영해 궁예도성이 관측되는 평화전망대 전시실에 이번사진들을 확대 제작해 전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