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관련

권력형 불법사찰, 어물쩍 넘어갈 순 없다

道雨 2010. 6. 26. 13:25

 

 

 

   권력형 불법사찰, 어물쩍 넘어갈 순 없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상대로 벌인 불법 사찰의 내막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블로그에 올린 이명박 대통령 비난 동영상은 하나의 꼬투리였을 뿐, 총리실의 주 표적은 옛 여권 정치인에 대한 옭아매기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총리실이 동원한 각종 무리수는 탈법이나 위법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법과 절차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초법적 행태의 연속이었다.

 

피해자 김아무개씨의 말을 종합하면, 총리실은 그가 같은 고향 출신 정치인(이광재 당시 민주당 의원)과 촛불집회 등에 후원금을 제공했으리라는 의혹을 갖고 내사를 시작했다. 이 전 의원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총리실은 김씨의 회사를 불법적으로 압수수색한 것으로도 모자라 회사 직원들까지 불러 조사를 벌였다. “정치자금을 밝히지 않으면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들이 스스로 수사기관 행세를 한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수사기법’마저도 저질스럽기 이를 데 없다.

 

총리실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방식도 통상적인 절차와는 거리가 멀다. 경찰청이나 서울경찰청 등을 경유하지 않고 곧바로 일선 경찰서와 직거래를 했다. 이 수사가 권력형 ‘청부수사’였음을 드러내는 방증이다.

이번 사건의 파문이 날로 커지는데도 총리실은 문제의 공직윤리지원관에 대해 대기발령만 냈을 뿐 아직 조사도 착수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총리실이 조사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로 진상규명이 될 리 없다. 게다가 문제의 공직윤리지원관은 현 정부 최대 실세 그룹들이 포진한 지역 출신이다.

애초 내사가 시작된 게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기획사정이 시작될 무렵인 점을 고려하면, 사건의 의미와 파장은 더욱 커진다. 과연 공직윤리지원관이 독단적으로 내사를 결정했는지, 당시 총리실장을 포함한 윗선은 보고를 받지 않았는지, 청와대 등 정권 핵심 실세들의 묵인·방조는 없었는지 등 밝혀야 할 내용이 수없이 많다.

 

이번 사건이 소름끼치는 이유는 어느 누구나 이와 같은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표적을 정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권력, 개인의 삶이야 망가지건 말건 나몰라라 하는 정부, 그들 밑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럽고 절망스럽다.


(2010. 6. 26  한겨레신문 사설>

 

 

 

 

             경찰 “총리실서 노사모라며 수사요청”
“명예훼손 등 자료보내”…무혐의 판단에 서장이 ‘제동’
김씨 “총리실, MB비판 동영상 올리기 석달전부터 조사”
국무총리실에서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김아무개씨를 불법 내사한 뒤 경찰수사요청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폭로(<한겨레> 22일치 10면)와 관련해, 해당 경찰서는 25일 “당시 총리실에서 ‘노사모 핵심 인사’라며 김씨와 관련된 자료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과 검찰뿐 아니라 총리실까지 나서서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잡도리에 나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ㄱ은행 지점장을 지낸 김씨는 2008년 당시 이 은행에 용역 인력을 지원하는 ㅋ사 대표이사였다. 김씨는 “총리실의 조사는 동영상을 올린 2008년 6월보다 앞선 그해 3월부터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총리실의 조사가 시작된 뒤 은행 쪽 압력으로 그해 9월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으며, 그 직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회사를 찾아와 경리장부 등 서류를 들고 갔으며 후임 대표이사와 경리부장 등을 총리실로 불러 내가 이광재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줬는지, 촛불집회에 지원금을 건넸는지 등을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총리실이 경찰에 관련 서류를 넘긴 2009년 1월께 경찰은 김씨를 불러 동영상과 관련된 조사 외에도 촛불집회 자금 지원 여부, 노사모 참여 여부와 이광재 의원과의 관계 등을 추궁했다.

김씨를 조사했던 동작경찰서 수사팀은 나중에 회사 돈 횡령 혐의나 블로그 동영상의 명예훼손 혐의 등에 대해 무혐의로 판단했으나, 당시 동작경찰서장이 재검토를 지시해 결국 명예훼손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이 혐의에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하지만 그 기간에 김씨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회사 지분까지 모두 포기했다. 당시 김씨를 수사했던 경찰 관계자이날 <한겨레>에 “총리실에서 보낸 자료에 명예훼손과 함께 횡령 부분도 들어 있었고, ‘노사모 핵심 인사’라는 부분이 있었다”며 “그래서 횡령 혐의가 있는 3천만~4천만원 정도를 어디에 썼는지 물어본 것이고, 김씨가 이광재 의원과 동향이라서 그런 부분을 조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동작경찰서장은 이미 퇴직해 연락이 닿지 않았다. 총리실은 권태신 총리실장이 파리 출장에서 돌아오는 대로 진상조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준현 선임기자 dus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