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찰 끔찍” 한나라당 경악
- 윤리지원관실, 남경필 의원 부인 사찰 의혹 파문
- "강용석 성희롱 이어 또…재보선 어떻게 치르나" 개탄
- "2008년 총선 때 이상득에 불출마 권유 괘씸죄" 의혹도
철저한 진상조사 한목소리 당차원 대응 강구키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데 이어 4선의 여당 소장파 중진인 남경필 의원의 부인까지 사찰한 것으로 21일 드러나자, 한나라당 안에서는 '도를 넘는 정치 사찰이 경악스럽다'는 분노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친이 직계의 한 수도권 의원은 "국회의원도 공직으로 성역이 아니지만 불법 행위에 대한 수사도 아니고, 본인도 아닌 주변 인물을 사찰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너무 황당해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강용석 의원 성희롱 사건에 이어, 이제 여당 중진 불법사찰 사건까지 터지면 7·28 재보선은 어떻게 치르라는 것인지,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부산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진짜로 정권이 망하려고 작정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서울지역의 한 중진의원은 "여당 중진의원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찰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중대한 사건으로, 사실이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친박근혜계의 한 초선 의원은 "한마디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했고, 수도권의 한 소장파 의원은 "너무나 명백한 엉터리 행위에 할 말조차 없다"고 입을 닫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자들의 오만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분석도 나왔다. 영남권의 한 초선의원은 "이건 권력의 만용이다. 권력을 쥔 자들이 아무 거나 막 해도 자기들이 하면 모든 것이 합리화된다는 식의 오만에 빠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과거 문제가 됐던 '사직동팀'에 버금가는 권한을 지원관실에 줌으로써 탄생해서는 안 될 조직이 탄생했다"고 지적했다.
당 일각에선 2008년 4월 총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요구한 의원들에 대해 광범한 사찰이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내 정보통으로 불리는 한 수도권 의원은 "당 안에서는 '형님' 불출마와 2선후퇴를 요구한 의원들에 대한 뒷조사가 이뤄졌다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심지어 정권의 실세로 불렸던 정두언 의원 주변에 대한 조사도 진행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그동안 남경필 의원은 물론 정두언·정태근 의원 등 이른바 '형님 퇴진'에 적극적인 의원들에 대한 뒷조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무성했었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데도 이견이 없었다. 서울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사실이라면 한나라당이 주축이 되어 지휘라인을 끝까지 추적해서 완전히 그 고리를 도려내고, 응분의 처벌을 해야 한다"며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고, 한나라당도 공멸한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의 한 초선의원도 "비선라인의 책임자를 철저히 조사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중진 의원은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당 차원의 대응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압수수색 직전 증거인멸… 커지는 ‘윗선’ 개입 의혹
- 총리실 ‘전방위 사찰’… 윗선 수사 불가피
◇ 윗선 개입 의혹 커져 =
증거인멸의 구체적인 정황이 잡힌 것도 '윗선'의 간여 의혹과 맞물리고 있다.
검찰의 압수수색 전인 지난 4일 컴퓨터 문서파일이 USB를 통해 외부로 옮겨졌고 5일과 7일, 그리고 9일 압수수색 1시간 전까지 문서파일이 삭제된 흔적이 파악됐다.
◇ 이인규 전 지원관 등 3명 구속수사로 =
검찰은 이들이 2008년 9월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동영상을 올린 김 전 대표에 대해 민간인인 줄 알면서도 불법사찰을 벌이고 경찰 수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직권남용)를 적용했다. 총리실이 직권을 넘어서서 민간인 개인의 권리를 불법적으로 침해했다는 것이다.
< 박홍두 기자 >
총리실 민간 사찰 50여건 추가 포착
- 검찰, 압수자료 분석 결과
- 조직적 증거 인멸 정황도
- 이영호 靑비서관 사표 제출
11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형사1부장)은 지난 9일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이인규 전 지원관 등 지원관실 소속 공무원 5명의 자택에서 확보한 압수물을 분석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지원관실이 추가로 50여건의 민간인 사찰을 저지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원관실이 사찰·조사 대상인 공직자 외에 민간인을 조사한 사실이 추가로 파악된 것이다.
검찰은 이번 압수수색에서 이 전 지원관 등이 사찰 활동과 관련해 작성한 공문서·보고자료·일지·회의기록과 함께 컴퓨터 전산자료 등을 확보했다. 또 사건 관련자들이 사찰 전후 시기와 최근에 한 전화통화와 e메일 송수신 내역 등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지원관실이 김 전 대표 외에도 광범위하게 민간인 사찰을 벌인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검찰 수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전 지원관 등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중요 서류와 문서 등을 사무실 밖으로 빼돌려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거나 은닉을 시도한 정황을 잡고, 이들이 사전에 의견을 조율했는지 확인하고 있다.
또 조직적인 민간인 불법사찰 배후에 윗선이 개입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전 지원관으로부터 비선보고를 받은 것으로 지목받는 이영호 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소환조사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비서관은 이날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관으로서 본의 아니게 대통령께 누를 끼쳤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 정제혁·박홍두 기자 >
이인규, 발령도 안받고 사찰
- 당시 노동부 공무원 신분
- 법적 조사 자격없이 활동
2008년 12월18일 관보에 따르면,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그해 12월14일까지 노동부 감사관직을 유지하다가 12월15일부터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으로 발령이 났다.
총리실이 지난 5일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 밝힌 조사 내용에 따르면 이 지원관이 김종익씨에 대해 제보를 받은 것은 2008년 9월10일로, 9~10월 김씨에 대한 사찰이 진행됐다.
결국 이 지원관이 김씨를 조사하던 당시는 공직윤리지원관이 아닌 노동부 공무원 신분이었다는 얘기다.
총리실의 조사 내용대로 "조사한 지 두 달 뒤에야 (김씨가) 공무원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 지원관은 김씨를 조사할 법적 자격도 없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2008년 10월6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 속기록을 보면 이 지원관은 '공직윤리지원관 이인규'라고 피감기관 출석자로 이름이 적시돼 있다.
이는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다급한 '필요'에 의해 졸속으로 신설된 과정을 보여주는 한 방증이다. 급히 만들어진 데다, 특정 인맥을 무리하게 당겨쓰다 보니 공식 인사 절차에 필요한 시간도 건너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신설을 위한 직제 개정안이 소관기관장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협의요청된 지 하루 만에 차관회의에서 상정돼 심의·의결까지 마쳤다. 이후 국무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불과 일주일이 걸렸다.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7월21일 신설된 뒤 업무수행 범위를 정한 근거규정도 없이 운영하다 5개월 뒤에야 '공직윤리업무규정'을 만들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
윤리지원관실도 ‘선진연대 호텔 모임’서 관리한 듯 | |
4인 상시모임 실체는 여당 관계자 “이인규, 이영호 아닌 박영준에 보고” 정부·금융계 등에 ‘선진국민연대 사람 심기’ 주력 | |
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8일 공개적으로 문제를 삼고 나옴에 따라 권력 비선라인의 인사 개입 의혹과 관련해 ‘메리어트 모임’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당사자들이 극구 부인하고 있어, 모임의 실체적 진실이 뚜렷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민주당과 여권 일부에서 제기하는 맥락을 따라가 보면, 이 모임은 박영준 국무차장의 행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박 차장은 2008년 6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권력 사유화’의 주역으로 공격받으면서 청와대를 떠났다. 그는 수염도 깎지 않은 채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하나, 7월22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선진국민연대 조찬 모임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이 잘되도록 외곽에서 돕겠다”고 말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특히 박 차장은 그해 여름 김대식 민주평통 사무처장과 함께 전국을 돌며 선진국민연대의 대선 당시 지역 책임자와 간담회를 여는 등 조직 재정비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차장이 메리어트 모임을 가동한 것도 이 무렵이라고 민주당은 보고 있다.
이 모임에서는 주로 인사를 다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부처 인사는 물론 금융계, 포스코, 대우조선해양 등의 인사가 이 모임에서 다뤄진 것으로 꼽힌다. 특히 선진국민연대 사람을 심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지난해 2월 이 대통령이 선진국민연대 간부 250여명을 청와대로 불러 연 만찬에서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는 너무 많아 일일이 소개 못 하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그들의 공직 진출은 눈부셨다.
또다른 모임 장소로 지목받고 있는 곳이 여의도 ㅈ빌딩이다. 메리어트 호텔은 장기임대해서 사용한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비즈니스 센터를 빌려서 부정기적으로 사용해 안정성이 떨어졌다는 것이 여권 관계자의 얘기다. 정부 지분이 있는 한 언론사 관계자는 “낙하산으로 내려온 우리 회사 사장도 ㅈ빌딩 사무실을 찾아가서 회사 인사안을 받아오고는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불법사찰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도 이 메리어트 모임에서 관리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보고한 게 아니라, 이 모임에서 박영준 차장에게 보고한 것”이라며 “이인규 지원관을 박 차장에게 천거한 사람이 이영호 비서관”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박 차장이 메리어트 모임을 운영하게 된 데는 청와대 민정수석실과의 알력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의 관계자는 “애초 민정수석실로 취합되는 정보를 박 차장이 요청했으나, 민정 쪽에서 위험 부담이 크다고 보고 이를 거절하자, 박 차장이 별도의 비선조직을 운영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이후에는 이 메리어트 모임도 해체됐다는 것이 여권이나 야당 쪽의 일치된 얘기다. 박 차장이 지난해 1월 총리실에 들어가면서 별도의 비선조직을 운영할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는 오히려 정인철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이 정기적으로 은행장, 공기업 사장들을 불러모아 ‘월권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 비서관이 박영준 차장의 ‘하청’ 업무를 수행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한겨레 특별취재반> |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사람으로 불법 민간인 사찰을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소신을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부 권력투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 정말 안타깝다. 이젠 이 문제를 더 말하기도 어렵게 됐다.”
서울 은평을 재선거에 출마한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7일 이렇게 입을 열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에 대해 “이명박 정부에서 권력형 비리라든지 권력을 등에 업고 사찰을 한다든지 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한 이재오 전 위원장의 전날 발언을 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겨냥한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바라보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2년 전에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 입장에서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자신의 ‘권력사유화’ 경고를 무시한 채 이른바 영포게이트라는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번진 현실에 안타까움을 호소했던 정두언 의원은 더욱 위축돼 있다.
정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 무슨 얘기를 해도 권력투쟁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입을 닫았다.
정 의원과 가까운 수도권 한 의원은 “우리가 기자들을 만나는 것까지 저쪽(영포라인)에서 다 체크한다.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전화도 하지 말라”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영포회 국정농단→선진국민연대와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실의 인사전횡’으로 확산되는 최근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특정 세력이 자기 반성보다는 지난 2008년초 이재오·정두언계의 ‘형님인사·형님 공천’ 논란의 연장선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상득 의원과 가까운 몇몇 인사들은 민간인 사찰 논란과 선진국민연대의 인사독식 논란의 배후로 정두언 의원을 공공연히 지목하고 있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이상득 의원계로 분류되는 장제원 의원은 최근 기자들을 만나 “정두언 의원이 자꾸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전당대회 출마를 자기를 낙마시키려는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우리라고 할 말이 없는 줄 아느냐. 거기에 대해서 강력 대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장 의원이 7일 ‘동지의 등에 칼을 꽂는 비겁한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며 정두언 의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계획했으나, 전면전을 벌일 경우 정치적 파장을 걷잡을 수 없다고 친이계가 만류해 회견을 미뤘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창출의 3대 주축 세력인 이재오·정두언·이상득계의 이런 분란에 대해 기득권 싸움이라며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소장파의 대표격인 김성식 의원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영포회는 곁가지에 불과하고,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 사찰라인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을 중심으로 인사를 장악한 특정라인”이라며 “이들이 대통령 뒤에 숨어 국정을 어지럽게 만든 징본인으로, 전당대회에서 친이 기득권세력에게 국회의원들을 줄세우려는 세력과 한 몸통으로 진정한 쇄신의 대상”이라고 비판했다.
여권 ‘이재오-정두언-이상득’ 권력투쟁중?
이상득계 “우리라고 할 말 없는 줄 아나”
이재오쪽 “투쟁으로 보는 시각 안타깝다”
정두언쪽 “무슨 얘기를 해도…” 입 닫아
사건 경위를 보면 이런 의심에는 근거가 없지 않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에 대한 아무런 수사권한이 없는데도 2008년 9월부터 영장 없이 김씨 회사의 회계자료를 압수하는 등 불법사찰을 벌였다.
이런 불법의 결과는 그해 11월 수사의뢰 당시 경찰에 넘어갔을 것이다.
김씨가 2009년 3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고 그해 10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때까지, 검찰 역시 불법사찰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씨도 경찰이나 검찰 조사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검찰이 위법 사실을 알고도 이를 방치한 채 수사를 하지 않은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이라면 검찰의 직무유기다.
이것도 모자라 검찰은 불법사찰의 피해자인 김씨에게 무혐의가 아니라 죄 있음을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불법사찰에 힘을 보탠 꼴이라는 비난은 당연하다.
검찰이 어떻게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는지 그 경위를 조사해야 마땅하다.
검찰은 김씨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서도 ‘증거수집 과정에서 어떤 위법도 없었다’는 답변서를 올해 초 헌법재판소에 내어 결과적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검찰은 비비케이 동영상 증거를 얻는 과정만으로는 위법이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는 같은 동영상을 올린 수많은 사람 가운데 유독 김씨만 지목된 것이 불법 표적사찰의 결과라는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문제의 동영상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온갖 불법적 사찰활동 끝에 얻은 것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위법하게 획득한 다른 사찰 자료와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이 배제되는 게 옳다.
불법사찰로 사람을 옭아매려다 실패하자 별건수사로 끝내 골탕먹이는 일을 용인한다면 권력기관의 불법과 위법은 영영 근절할 수 없다.
검찰은 자신을 향한 불신의 눈길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여기서 또 신뢰를 잃으면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검찰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검찰은 자신의 잘못까지 포함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2010. 7. 8 한겨레 사설>
‘불법사찰 한통속’ 의심받는 검찰
김종익씨 “언론 보도 뒤 가족에 ‘죽인다’ 협박 전화”
검찰의 참고인 조사에 응하기 위해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나온 김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총리실 내부 문건에 내가 민간인이라는 사실이 다 나와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변호인인 최강욱 변호사와 함께 출석한 김 전 대표는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채 기자들의 질문에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후 조사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억울함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 전 대표는 "저를 유죄라고 판단한 기관에 와서 다시 조사를 받는 것이 어색하지만 한국 사회의 법 절차라면 성의를 다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 전 대표에 대한 조사를 이날 마무리하기 위해 밤 늦게까지 조사를 진행했다. 김 전 대표는 매우 적극적으로 검찰 질문에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사건으로 2년 넘게 힘든 과정을 겪었는데 최근 이 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뒤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많은 협박전화가 걸려와 가족들이 문 밖에 못 나갈 정도로 공포에 떨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최 변호사도 "일부 언론이 김 전 대표에 대해 이번 사건의 사실과 무관하게 흠집을 잡는 보도를 하고 있다"며 "안그래도 힘든 김 전 대표와 그의 가족들에게 꼭 이렇게 해야 하나. 공정한 보도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앞서 일부 언론들은 'MBC < pd첩 > 에 등장한 김 전 대표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의 책장에 꽂힌 책들 중 진보 성향의 사회과학 서적이 많았다' '김 전 대표가 노사모 회원이고 후원금도 정기적으로 냈다'는 식의 보도를 내보내 사건의 본질이 아닌 진보·보수 논쟁의 대상으로 몰아갔다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은 이날 국민은행 노사부문팀장인 ㅇ씨 등 관계자 두 명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
남경필 의원은 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특정 지역 출신 특정 인물과 연결된 특정 인맥 몇명에 권력이 집중되고, 이들이 정부 인사 등 모든 걸 독식하는 게 최근 사태의 근원”이라며 “한나라당이 먼저 영포목우회의 국정 농단 여부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영포목우회 때문에 포항 지역 대다수 주민들은 우린 국물도 없는데, 왜 우리가 욕만 먹어야 하느냐는 분노가 크다”며 “한나라당이 국정조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당내 사정에 정통한 한나라당 한 의원도 “이번 민간인 사찰 문제는 포항지역의 특정 인맥과 조직을 중심으로 연계돼 특권의식을 갖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선을 대며 정부 및 공기업 인사 등에서 뒤를 봐주면서 성골 노릇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이런 특정지역 연고주의가 이명박 정부의 인사뿐 아니라 국정 운영, 당 운영 전반에 투영되면서 그 연고에서 배제된 99%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포항에 직·간접적인 연고를 둔 몇몇 인사들이 여권의 핵심실세로 한나라당과 정부, 청와대, 공기업 등에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몇몇 돌출적인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여권 핵심 인사들 사이에선 “민간인 사찰의 몸통으로 의심을 받는 인사들이 여의도에 비밀 사무실을 차려놓고 정부와 청와대·공기업은 물론 금융권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쇄신파의 대표주자격인 김성식 의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윤리지원관실은 말만 총리실 소속이지 청와대 직속기관인 걸 여권에선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고, 현재 드러난 민간인 사찰은 각종 의혹들 가운데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정부와 공기업 인사를 주무른 사람들과 사찰의 배후까지 성역없이 밝혀야 한다”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
“영포회 인사전횡 국정조사를”
여당서도 목청…김성식 “지원관실, 사실상 청와대 직속”
또 확인된 불법 민간인 사찰, 더는 없겠는가
총리실은 배씨가 공기업인 건강보험공단 직원 출신으로 근무시간 중에 골프를 친다는 제보가 있어 확인에 나선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직기강 점검 대상이라는 것이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배씨는 공기업 직원이라기보다 민간조직인 노총의 간부다. 더구나 당시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을 담은 노동관계법 개정을 놓고 노총과 정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고, 배씨는 노총 안에서 정부와 합의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이었다.
정황으로 보면 정부에 반대하는 이의 흠을 찾아내 ‘본때를 보이겠다’고 사찰에 나선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으로 권력을 휘둘렀다면 폭력배의 협박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누가 이런 직권남용을 주문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이와 비슷한 불법 사찰이 또 없었는지도 본격적으로 찾아야 한다.
애초 피해자였던 김종익씨는 비비케이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비선조직이 그를 사찰 대상으로 삼았다면 같은 이유로 다른 사찰 대상자들이 더 있을 수 있다.
정부 정책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배정근씨가 사찰을 받았다면, 다른 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한 이들 역시 불법 사찰을 받았을 수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물론, 이 조직의 보고를 받은 배후인물들에 대한 전면조사가 불가피한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 태도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보고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부터 어물거리며 말을 바꾼다. 실제 배후와 진상을 감추고 파문을 줄이려 괜한 말로 얼버무리는 것으로 비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몇몇 공무원들의 어설픈 권력남용’이라는 투로 말했다. 이제 막 시작한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런 식으로 미봉하려 한다고 국민이 넘어갈 단계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2010. 7. 7 한겨레신문 사설>
여권 내부서도 ‘권력 사유화’ 논란
이재오 전의원 “권력을 등에 업고 불법사찰 정말 한심”
김성식 의원 “영포회는 빙산 일각…성역없이 수사 일벌백계를”
남경필 의원 “국정 운영 방해한 영포회 세력 철저히 조사”
한나라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7·14 전당대회 출마자들도 권력 사유화 문제를 일제히 비판했다.
김성식 의원은 이날 대구·경북지역 비전발표회에서 "영포회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가 관련돼 있건 성역없이 철저히 수사하고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경필 의원은 비전발표회에서 "자기들끼리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을 지난 정권 때 많이 보지 않았나. 영포회는 뭐냐, 창피하다"며, "한나라당이 먼저 민간인 불법사찰, 영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밝히라 하고 국정조사를 실시하라고 주장하자"고 말했다.
서병수 의원은 불교방송 인터뷰에서 "역대 정권에서 보면 대선 때 가동한 사조직 문제나, 정부 부처 일부에서 권력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총리실에서 민간인 사찰을 한다는 것은 80년대에 있었던 일 아니냐"고 비판했다.
비선 사조직 불법사찰·권력사유화, 모든 의혹의 길목마다 이영호 있다
야당 “박영준 등 삼각커넥션 밝혀야”
민주당이 "박영준 국무차장,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의 삼각 커넥션 고리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몸통의 진상을 밝혀내는 핵심"이라고 지목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비서관은 바로 '윗선'으로 지목되는 박 국무차장과 이 지원관을 연결하는 비선 조직 의혹의 길목에 해당된다. 실제 "박영준 차장이 청와대를 나간 뒤 총리실 사정팀을 통해 이영호 비서관의 사설 라인이 생겼던 것으로 안다. 이 비서관이 여러 차례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를 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청와대 내부 증언도 들린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또 다른 불법사찰 건인 한국노총 산하 공공노조연맹 배정근 위원장 미행과 관련해서도 이 비서관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린다. 한국노총 출신인 이 비서관의 담당 업무인데다, 당시 배 위원장이 노조법 개정 등과 맞물려 정부·여당과 보조를 맞추던 한국노총 지도부에 비판적인 인물이었던 점에서다. 바로 이 비서관이 배 위원장 견제를 위해 사조직화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동원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고향 후배라는 인연으로 선거캠프에 합류한 이 비서관은 노동총괄단장으로 한나라당과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성사에 간여하기도 했다. 박영준 국무차장과는 당시 대선 캠프부터 대통령직인수위, 청와대까지 동행했다.
< 김광호·강병한 기자 >
경북 칠곡 출신으로 대구 오성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차장은 1994년 당시 재선의원이던 이상득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11년 동안 이 의원을 ‘모셨던’ 그는 이 의원의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인 2005년 서울시청으로 자리를 옮겨 정무보좌역과 정무국장을 거쳤다.
이상득 위의 이상득 비서관?
당시는 이미 이 대통령이 ‘대권 플랜’을 가동하기 시작한 때로, 이 대통령을 도우려고 이상득 의원이 박 차장을 ’파견’했던 것이다. 이때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2006년 8월 꾸린 대선캠프 ‘안국포럼’에선 일련번호 ‘AF006’을 받을 정도였다.
안국포럼의 영문 이니셜에 숫자를 붙인 이 일련번호는 안국포럼 초기 이 대통령 측근을 사칭해 일을 벌이는 사람이 없도록 고안한 일종의 관리 장치였는데, 10번 안쪽은 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한 최측근들이었다.
그가 ‘정권 최고 실세’로 부각된 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과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맡아 실질적인 인사권을 쥐면서부터다.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공공기관의 인선을 박 차장이 주도한 것이다.
애초 인선 작업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류우익 대통령실장(현 주중국 대사),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진행했다. 그러던 중 박 차장이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의 ‘지분’을 요구해 그도 인선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인수위 막바지에 이르러선 한나라당 인사들을 정 의원보다 더 잘 아는 박 차장이 마무리 작업을 맡았다. 그런데 이 무렵 인수위에 정 의원과 가까운 인사가 많이 포진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정 의원은 완전히 인사 작업에서 배제되고, 박 차장이 칼자루를 쥐게 된다.
박 차장이 주도한 인사는 크게 선진국민연대 출신과 경북 포항 출신으로 집중됐다. 선진국민연대에선 이영희 상임의장과 정종환 충남연대 대표가 각각 노동부 장관과 국토해양부 장관에, 김성이·이봉화 중앙위원이 각각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 차관에 임명됐다.
박인제 중앙위원은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됐고, 장영철 공동의장은 서울시체육회 상임부회장, 방판칠 상임고문은 한국토지주택공사 감사, 임동오 전남연대 대표는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자리를 받았다.
인사비서관실을 비롯해 청와대 곳곳에도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한 ‘박영준 라인’이 포진했다. 박 차장의 사조직이란 의혹을 받는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정부 출범 때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동헌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 행정관 10여 명도 선진국민연대에서 박 차장과 맺은 인연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왕 비서관’을 겨냥한 정두언의 난
포항 출신 인사 가운데서도 ‘박영준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주로 청와대에 몰려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상휘 춘추관장이다. 인수위에서 박 차장의 인선 작업을 도왔고, 이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기용됐다.
공무원 사정 업무를 하는 민정수석실엔 이강덕 당시 경북지방경찰청 차장이 민정2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들어갔고, 한영수 법제처 부이사관은 법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됐다.
조재정 노동부 공공기관 비정규직 실무추진단장은 인수위를 거쳐, 최종석 노동부 서기관과 함께 사회정책수석실 행정관 명함을 얻었다.
지식경제부 소속으로 미국 뉴욕 총영사관에 파견을 나갔다 돌아와 청와대로 다시 파견된 박일준 서기관도 포항 출신이다.
고위 공직자 중에선 ‘영포회’(포항 출신 5급 이상 중앙부처 공무원이 가입할 수 있는 모임) 회원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박대원 전 주알제리 대사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 총재로, 권종락 전 주아일랜드 대사는 외교통상부 제1차관으로 기용됐다. 이병욱 세종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는 환경부 제1차관에, 정장식 전 포항시장은 중앙공무원교육원장에 발탁됐다. 김석기 전 경찰종합학교장은 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했다.
선진국민연대와 포항 출신 인사들의 청와대·내각·공기업 ‘접수’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사이 박 차장은 ‘왕(王) 비서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대형 ‘폭탄’이 터졌다. 인수위에서 인선 작업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했던 정두언 의원이 두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박 차장을 직접 겨냥해 ‘권력 사유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2008년 6월7일치 <조선일보>에선 “청와대엔 전리품 챙기기에 골몰한 사람들이 있다. 장·차관 자리, 공기업 임원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게 전리품이요, 이권이 되는 것이다. B비서관은 이간질과 음해, 모략의 명수”라며 박 차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6월8일치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선 “청와대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 제일 문제다. 보좌관 한 명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그가 대통령을 감싸고 있으면서 모든 인사와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 모든 중요한 인사는 다 그의 손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 얘기가 왜 나오나”라며 박 차장의 실명을 공개하고 나섰다.
‘정두언의 난’엔 여러 이유가 얽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시 박 차장이 인사권을 틀어쥐고 무섭게 힘을 불리고 있다는 여권 내부의 전반적인 우려가 있었다.
특히 안국포럼 출신으로 한나라당 내 친이직계로 분류되는 정태근·권택기 의원은 정 의원 발언이 공개되기 하루 전인 6월6일 청와대에 들어가 박 차장을 사임시키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또한 정 의원 발언을 두고도 너무 거칠게 문제제기를 하기는 했지만, 정권에 타격을 줄 만한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박 차장 행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밖와대’에서도 강력한 영향력
이런 분위기 탓에 박 차장은 6월9일 밤 이 대통령과 1시간가량 독대를 한 끝에 눈물을 쏟으며 청와대에서 짐을 쌌다. 그러곤 다시 전국을 돌며 선진국민연대 회원들을 만났다.
당시는 ‘쇠고기 촛불’로 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까지 곤두박질칠 때여서 박 차장의 움직임을 놓고 “선진국민연대 조직을 재정비해 이 대통령 지지 조직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청와대에서 나온 지 한 달쯤 뒤인 7월22일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선진국민연대 조찬 모임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참석한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야인’으로 납작 엎드려 지낸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와 가까운 인사들은 “실용주의, 다산 정약용과 관련한 책을 읽으며 앞으로 이명박 정부 성공을 위해 뭘 해야 할지 구상하고 있다. 당분간은 공개적으로 나서진 않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랬다. 박 차장은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인사 조직을 장악한 박 차장의 영향력까지 쉽게 줄어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밖와대’(청와대 밖의 청와대라는 뜻)로 불리는, 서울 시내 모처에 낸 박 차장의 사무실에 인사비서관실 담당자들이 드나들며 관련 서류를 박 차장에게 전달하고, 박 차장이 ‘결재’를 해야 인사가 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국무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되살아난 것도 이 무렵인 2008년 8월이다. 영포회 회원으로 알려진 이인규 전 노동부 감사관이 공직윤리지원관을 맡고, 진경락 서기관, 김충곤 팀장, 원충연 사무관 등 박 차장과 가까운 인사가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자리를 옮긴 게 바로 이 때였다. 정부 출범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갔던 포항지청의 한 수사관도 비슷한 시기 공직윤리지원관실로 파견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수집·작성한 정보·동향 보고서는 박 차장이 직접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관계비서관을 통해 보고됐다고 알려졌다.
선진국민연대와 포항 출신 인사들 역시 박 차장이 청와대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승승장구했다. 박 차장과 의형제간으로, 선진국민연대 조직을 함께 이끌었던 김대식씨는 대통령에게 직보를 할 수 있는 자리인 민주평통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그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다음달 치러질 한나라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박 차장 후임으로 발탁된 정인철 기획조정비서관은 선진국민연대 대변인 출신이고, 권성동 강원연대 대표(현 한나라당 의원)와 김석원 대외협력팀장이 각각 법무비서관과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에 임명된 것도 박 차장이 ‘민간인’ 신분일 때였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의 공기업 감사·이사도 쏟아졌다. 정책위원장을 맡았던 허증수씨는 인수위 시절 인천시로부터 189만원어치의 향응을 접대받아 인수위원직을 사퇴했는데, 2년 만에 포스코와 KT의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힘있는 누군가가 인사에 강하게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에게만 이런 행운이 따를 수 있었을까.
고속 승진도 눈에 띈다. 선진국민연대 사무처에서 실무를 맡았던 이동헌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애초 3급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1년 만에 2급으로 승진했다.
고속 승진은 선진국민연대보다 포항 출신 인사들한테서 더 많이 발견된다. 이상휘 춘추관장도 1년 만에 2급에서 1급으로 승진했다. 이강덕 전 경북지방경찰청 차장(경무관)은 민정2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들어갔다가 역시 1년 만에 치안비서관(치안감)으로 승진했고, 지난 1월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발령났다.
경북 영일 출신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정부 출범 뒤 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여섯 달 만에 서울경찰청장 자리를 차지했다. 용산 참사 과잉 진압만 아니었다면, 그는 초고속으로 경찰청장에 기용될 수도 있었다.
지난해 이맘때쯤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시 6급 공무원 출신으로 박 차장과 가까웠던 이아무개씨는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5급 행정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공기업 인사를 맡았던 그는 박 차장의 지시대로 인사안을 작성한다는 평을 듣던 차였는데, 공교롭게도 1년 만에 다시 4급으로 승진했다. 보통 공무원은 1직급씩 승진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리는데, 이 행정관은 불과 2년 만에 두 계단이나 뛰어오른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이 행정관이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동서고속도로의 동홍천~양양 구간 공사 입찰에서 특정 업체가 공사를 따내도록 해달라고 도로공사 고위직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사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의 조사를 받았다.
특별감찰반이 조사한 의혹엔 이 행정관이 승진 대상인 한 공기업 간부를 찾아가 ‘승진을 확실히 보장해줄 테니 대가를 달라’는 취지로 돈을 요구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민정수석실은 “뚜렷한 혐의가 없다”면서도 “인사 담당자로서 유사한 소문이 계속된다”는 이유로 그를 다른 부처로 전보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그를 처음 보내려던 부처가 바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이었다고 한다.
이런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은 “가서 또 무슨 짓을 하려고”라며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행정관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권 누구도 “의혹 털고 가자”는 말 못해
이 대통령에게 박 차장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박 차장은 지난해 1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아프리카 자원외교를 도맡고 있고 정부 내 15개 태스크포스팀장을 맡을 만큼 하는 일도 많고 책임과 권한도 강력하다.
조만간 단행될 청와대 비서실 개편 때 박 차장이 청와대에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도 유력하게 제기된다. 박 차장의 ‘능력과 충성심’을 이 대통령이 신뢰한다는 징후로도, 그 만큼 박 차장 스스로가 조직을 확실히 장악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여권 핵심 인사들도 두 가지 해석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또 박 차장이 여러 가지 의혹에 깊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쉽게 ‘박영준’을 입에 올리지 못한다. 이미 정두언 의원이 권력 사유화 발언 이후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박 차장을 둘러싼 의혹과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여권의 그 누구도 “의혹은 시원하게 털고 가자”는 말조차 못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이번 민간인 사찰 파문에서 알 수 있듯, 그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이 대통령 임기는 아직 2년 하고도 일곱 달이나 남았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
나는 ‘왕(王) 비서관’이로소이다
민간인 사찰 파문 배후로 지목되는 박영준 국무차장…
이명박 정부의 ‘영원한 비서관’으로 인사에 강한 영향력 행사하며 실세로 군림
조사대상자 ‘입’만 의존… 비선·몸통 ‘꼬리 자르기’
의혹만 키운 ‘반쪽 조사’
“사찰 두 달 지나 민간인인지 알았다”
납득 안가는 뒷수습… 파장 최소화 미봉책
◇조사결과 = 총리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3가지 점에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을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제보 즉시 조사 대상이 적격한지 확인하지 않은 결과 민간인을 조사하게 된 점 △피조사 대상 기관에 직접 자료제출을 요구할 경우 대상이 적격한지 확인을 소홀히 한 점 △조사 대상이 민간인임이 확인된 뒤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 통상적인 업무범위인지 이견이 있다는 점 등이다. 이에 따라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등 관련 직원 4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3명을 직위해제했다.
총리실은 다만 형법상 직권남용, 강요, 업무방해 등 불법행위 의혹에 대해서는 "조사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 "민간인 사찰 의혹 외에도 ㄱ은행 압력 여부, ㅋ사 압수수색 의혹, 경찰 수사의뢰 및 수사 재개시 압력 여부, 상부 보고 여부 등에 대해서 짚었다"(조원동 사무차장)면서도 "공무원 복무규정을 제외한 조사결과를 일일이 말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사건을 일부 공무원들의 문제로 한정짓고,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로 공을 넘긴 셈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인 김종익씨를 조사하게 된 게 '공공기관 종사자의 개인블로그에 대통령 비방 동영상이 게재됐다'는 익명의 제보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제보만 믿고 김씨를 공공기관 종사자로 판단했고, 민간인이라는 사실은 조사 두 달 뒤에야 알았다고 해명했다. 김씨가 민간인이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김씨 조사에 대한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들은 심지어 ㄱ은행을 "국책기관으로 알았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명도 했다고 한다.
조사과정에서 ㄱ은행 노무팀장을 만나 블로그 운영자 확인을 요청했고, 부행장의 요청으로 동영상 내용을 설명했다는 부분도 납득하기 힘들다. 이들의 요청이 당사자들에게는 '압력'으로 작용했을 수 있고, "ㅋ사와의 거래관계 청산 및 김씨 사임을 요구했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나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부 보고 누락 의혹에 대해서는 국무총리실장과 사무차장에게 구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고받은 적 없다"고 수차례 밝혔다. 당시 김영철 사무차장은 2008년 10월 작고했다.
총리실은 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동작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한 부분이 통상 업무범위 내인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수사의뢰할 수 있는지 논란이 예상된다.
한편 총리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영포회' 관련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대상이 아니다"라고 했고, '윗선'이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도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이번 조사는 사건이 불거진 지 열흘이 지나서야 이뤄졌고, 조사 착수 사흘 만에 검찰 수사의뢰를 결정한 것에서 보듯 민간인 사찰 파문 확산을 막기 위한 미봉책의 성격이 커 보인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조 사무차장)는 점에서 이번 조사의 한계와 방향도 어느 정도 잡혀 있었던 셈이다. 각종 의혹들을 검찰 수사를 통해 신속하게 '정리'해 여파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또 있었다
“총리실 직원·경찰이 미행” 한국노총 간부 주장 파문
정책 반대에 뒷조사 의혹
5일 한국노총 관계자들에 따르면 산하 연맹위원장 ㅂ씨는 지난 4월 비공개로 진행된 연맹 중앙위원회에서 '지난해 말 총리실 직원과 총리실에 파견된 경찰관에 의해 미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ㅂ씨는 지난해 12월 집 앞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뒤 여의도 국회의사당 쪽으로 차를 운전하고 가다 음식점에서부터 검은 차량 한 대가 자신을 미행하는 것을 발견했다. ㅂ씨는 미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유소로 들어가 차를 세운 뒤 뒤따라온 차량에 다가가자 차량은 급히 주유소를 빠져나갔다. 또 그가 도로로 나서자마자 다시 뒤따르기 시작했다.
ㅂ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일산의 한 길가에 차를 세운 뒤 경찰을 불러 미행 차량에 타고 있던 2명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다"며 "이들의 신원을 나중에 확인해보니 한 명은 총리실 직원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포항북부경찰서에서 파견된 경찰관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별일 아니니 그냥 돌아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당시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둘러싸고 노정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라며 "ㅂ씨는 한나라당과 보조를 맞추던 한국노총 집행부를 비판했다"고 전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ㅂ씨가 지난 3월 이후부터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몇 차례 누군가 뒷조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고 4월에는 회의 석상에서 이를 밝히면서 연맹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다"며 "휴대전화와 문자 메시지의 경우 100% 파악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여러 차례 했다"고 말했다. 이어 "ㅂ씨가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집행부에도 정책연대 파기를 촉구하는 등 반발하고 나서니까 이런 뒷조사 대상이 됐던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ㅂ씨는 이후 한국노총 집행부에 미행 사건을 보고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나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유정인 기자 >
총리실이 이르면 5일 이 공직윤리지원관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하게 되면, 이후 검찰 수사에선 불법사찰의 배후 여부와 사찰 기획과 실행, 보고 과정에서 ‘비선’의 개입은 없었는지 등이 분명히 규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선 검찰 수사가 이 지원관과 공직윤리지원관실 일부 직원의 불법사찰 혐의에 대한 단순 사실확인에 그칠 경우 의혹 해소는커녕 더 큰 국민적 불신만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비선’ 직보했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권력 실세’가 직접 인원 선발 및 조직 구성에 관여했다는 말이 무성했다.
야당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경북 영덕 출신으로 포항고를 나온 이 지원관이 총리실장 등 총리실 공식 라인을 제치고 같은 포항 출신인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직보를 올린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지원관실 전체 직원 40명 중 포항 특정고 출신이 17명에 이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포항이 지역구인 이상득 의원의 측근으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지낸 박영준 국무차장과의 관련성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 공직윤리지원관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언제 알게 되었고, 이후 어떤 조처를 했는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는 지난 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이아무개 행정관이 전화를 걸어와 “공직자 윤리 담당자를 조사해서 징계조처에 필요하면 쓰려고 한다”며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김씨 사찰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물었다고 밝힌 바 있다.
■ 사찰 배후 있나
일부에선 민간인 불법사찰이 ‘촛불집회’ 뒤 ‘친노 진영’ 등 비판 세력에 대한 대대적 공안몰이의 일환으로 ‘권력 실세’ 차원에서 기획한 사건이 아니냐는 의혹을 꺼내들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촛불집회’ 직후인 2008년 7월께 조직이 신설됐다.
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 피해자인 은행 용역회사 전 대표 김종익씨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며 동작경찰서에 이첩한 자료에는 ‘첩보 입수 후 내사 시작’이라고만 돼 있다.
민간인인 김씨에 대한 첩보를 자체 입수한 것인지, 다른 기관에서 넘겨받은 것인지 등이 규명돼야 어떤 배경에서 공직자 감찰기관이 불법을 무릅쓰고 민간인 사찰에 나선 것인지를 분명히 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작서 수사팀이 지난해 2월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다가 당시 서장의 지시로 수사관까지 교체해 재수사를 벌여 김씨를 검찰에 송치한 과정에 외압은 없었는지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야 할 문제다.
■ 총리실은 책임 없나
불법사찰이 저질러질 당시 이 지원관의 직속 상관이던 조중표 전 총리실장 등 총리실 공식 라인의 관리책임은 없는지도 분명히 짚어야 할 사안으로 꼽힌다.
권태신 현 총리실장은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불법사찰 의혹이 제기되기 직전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총리실이 한동안 ‘이 지원관이 병원에 입원중이어서 조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한 경위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리실 해명과 달리 이 지원관은 24일 퇴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봐주기’ 의혹이 증폭된 바 있다.
<손원제 황준범 기자 wonje@hani.co.kr >
이인규씨, 불법 무릅쓰고 왜 사찰했나…배후 밝혀야
‘총리실 불법사찰’ 검찰서 규명해야할 의혹은
기획→실행→보고과정 ‘비선’ 개입 여부 촉각
청, 언제 알았나·어떤 조치 했나도 도마위에
집권후반기 대형악재 판단…불똥 차단나서
»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과 관련해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 총리실 조사반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4일 오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있는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정부중앙청사 창성동별관 출입문이 닫혀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청와대 핵심 참모는 “공직사회에는 적당한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고, 포항 라인이 그런 역할을 해온 데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평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지난 3일치 <조선일보>는 전했다.
걱정스럽다. 청와대가 요즘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한 이인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 사건으로 속을 끓이고 있다는데도, 이 대통령은 도무지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야권에서 ‘영포게이트’라는 말을 입에 올릴 정도로, 이 사건은 이제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넘어 이 대통령의 동향인 ‘공직 내 사조직’이 국정을 쥐락펴락한 정권 차원 의혹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그 핵심에 포항·영일 출신 5급 이상 공직자 모임이라는 ‘영포회’가 있다. 이인규 실장은 영덕 출신이지만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영포회 인맥으로 분류돼 왔다.
“우리의 영도자 이 대통령을 위해 힘껏 지원하는 열정을 가슴에 새기자.”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함께 ‘포항 라인’의 핵심으로 꼽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말이다. 최 위원장이 2008년 11월26일 영포회 모임에서 한 발언은 당시 그 자체로도 정치적 파문이 적지 않았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최근 드러났다. 최 위원장이 그 말을 했던 바로 그해 같은 달에 영포회 회원들이 포함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한 내사자료를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회사를 운영하던 그 민간인의 측근들을 불러 그 민간인이 회사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은 뒤였다.
이유는 단지 그 민간인이 이광재 강원지사와 동향이라는 것뿐이다.
같은 시기에 일어난 두 사건에서 ‘포항 라인’의 생각과 행동은 ‘위’에서 ‘아래’까지 놀랍도록 일사불란했다.
‘포항 라인’은 이 대통령을 ‘힘껏 지원’하는 대가로 ‘정부의 퍼주기’를 듬뿍 챙긴 듯하다. 이들이 받은 인사특혜는 별도 자료가 없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당시 포항시장 말대로 “이렇게 물 좋은 때에 고향 발전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는 정황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여기서 문제는 다시 청와대로 향한다. ‘포항 라인’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인정하는 태도는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를 끌고 가는 데 또다른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대통령은 이미 대대적 국정쇄신 요구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이 ‘포항 라인’을 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영포회 사건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국정동력을 잃고 레임덕을 재촉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다.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카르텔이 ‘우리끼리의 성벽’을 높게 쌓고 ‘배타주의의 해자’를 깊게 판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오랜 고민이다.
하지만 단순한 고민을 넘어 ‘포항·영일 카르텔’처럼 다른 지역 출신에게 ‘당신은 이광재와 동향 평창 출신이 아니냐’며 한 개인을 철저히 파괴하는 마당이라면, 그 칼날은 오늘 평창이었다가, 내일은 부산, 광주, 대전으로 옮겨갈 수도 있음을 국민들은 익히 알고 있다.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dust@hani.co.kr >
영포회보다 청와대가 문제다
» 손준현 사회부문 선임기자
“제 삶을 온전히 되돌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주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의 집을 찾았다.
그는 야당으로부터 ‘영포회’(영일·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 인사들이 주도한 민간인 불법사찰의 실질적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사찰을 진행한 이인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은 영덕 출신으로 ‘범영포회’ 인사로 분류되며,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활동 내용을 보고받은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영포회 회원이다. 두 사람은 ‘박영준 인맥’으로 통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박 차장 지시로 가동된 ‘사조직’이란 얘기도 나온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4일 구두논평을 통해 “민간사찰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인규 지원관이 사찰을 한 것은 권력의 뒷배경 없인 불가능하다”며 “사찰의 실제 지휘자를 박영준 차장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영준 차장은 이날 “나를 이번 사건의 배후라거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조직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는 잘못된 것”이라며,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 40여명을 지휘감독한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 차장은 “지난 1년 동안 2달 반가량을 아프리카 등 외국에서 보냈다”며 “국내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 관여 같은 일을 했다면 외국에 그렇게 오랫동안 나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
야, 영포회 배후 박영준 지목
이인규-이영호 ‘같은 인맥’
안국포럼 AF 006번 ‘최측근’
박영준 차장 “잘못된주장”
» 박영준 국무총리실 총무차장
권력 주변 사조직의 관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은 한둘이 아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총리실 산하 조직이지만 공식 보고체계를 무시한 채 청와대 지시로만 움직였다고 한다. 옛날 공안통치 때처럼 편법으로 꾸려진 특명조직인 셈이다.
청와대 안의 ‘윗선’도 이상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직기강 관리를 맡고 있으니 공직자 사정·감찰을 맡은 민정수석실과 협의하는 게 그나마 상식적이겠지만, 활동 상황을 보고받은 것은 엉뚱하게 다른 수석실의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었다.
지원관실은 그로부터 검찰·경찰·국정원 등에서 입수한 정보도 전달받았다고 한다. 공조직의 활동 방식은 결코 아니다.
이 비서관이나 이인규 지원관 등 관련자들이 공직사회 안에서 특정 권력 실세의 인맥으로 꼽힌다는 점도 공교롭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형제의 고향인 포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는 등 여러 인연을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 영일·포항 출신 고위공직자 모임인 ‘영포회’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또 이 비서관은 권력 실세가 주도한다는 여권 내 유력 외곽단체 출신이기도 하다.
고향 따위 사적 인연으로 연결된 정권 내 사조직이 공무원사회 감시는 물론 민간인 사찰 등 다른 불법행위까지 저지른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다.
논란이 이쯤 되면 전면적인 조사가 불가피하다. 혐의가 분명한 몇몇을 처벌하는 정도로 이들 의혹이 잠재워지기는 이미 어렵게 됐다.
사조직 관여 의혹만 해도, 영포회 등이 실제로 친위대 구실을 했다면 이 대통령이 이를 사전에 알거나 용인했는지, 그 수장과 배후는 누구인지 등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 권력남용이 한둘에 그치지도 않을 것이니 지금와서 대충 덮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정부는 검찰 조사는 물론 국회 국정조사 등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비공식 권력의 전횡을 방치하거나 숨기려 들다간 더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2010. 7. 5 한겨레신문 사설>
영포회 의혹, 그 배후가 궁금하다
‘불법사찰’ 조사 뒷짐…총리실·사정기관 ‘윗선’ 눈치보나 | |
- 총리실, 정총리 조사 지시 11일 지나서야 시늉만 - 청, 총리실로 떠넘기고, 검찰은 “징계 절차뒤” 손놔 - 검찰간부 “직권남용죄”…참여연대 “5일 고발장” | |
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노사모 핵심 인물’이라는 의심만으로 불법사찰을 벌여 개인의 삶을 파탄냈는데도, 총리실은 물론 청와대, 검찰 등은 사실상 열흘이 넘도록 손을 놓고 있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독재정권에서도 보기 드문 경악할 일이 벌어졌는데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사정기관들은 윗선 눈치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 떠넘기기·늑장 조사
이번 의혹이 불거진 뒤 총리실과 청와대 등의 태도를 보면,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조차 못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다. 총리실은 지난달 21일 야당 의원들의 폭로 이후 줄곧 의혹의 핵심 인물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을 보호하는 데 급급했다. 총리실은 최근까지도 “이 지원관이 고혈압이 심해 입원했다”고 둘러대며 조사를 미뤄왔다. 야당의 공격이 거세지고 여론의 비난 수위가 높아지자, 총리실은 2일에야 “오늘 이 지원관을 처음 조사했다”며 “정운찬 국무총리는 22일 처음 조사를 지시했고, 30일 다시 ‘총리실이 주도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총리실 설명대로라면 총리가 지난 22일 총리가 조사를 지시한 뒤 11일 동안 늑장을 부린 셈이다.
애초 ‘민정수석실에서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던 청와대는 지금껏 핵심 인물인 이 지원관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않다가, 이날 아예 조사 업무를 총리실에 넘겼다. 청와대 관계자는 “외부에서 우리(청와대)가 조사하면 의구심이 생긴다고 하니까, 조사한 부분을 총리실에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총리실은 이번 사찰 논란을 빚은 당사자여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을 낳고 있다.
핵심 사정기관인 검찰 역시 “공무원 징계 절차 등을 밟은 뒤에 (수사)하는 것이 맞다”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직권남용으로 보이지만, 고발장이 들어오면 몰라도 이미 정치쟁점화한 사건에 검찰이 먼저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 “명백한 불법행위”
그렇지만 검찰은 내부적으로는 이인규 지원관 등 관련자들의 혐의가 비교적 명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검찰 간부는 “이 지원관 등 민간인을 불법 조사한 총리실 직원들의 경우 직권남용죄나 강요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간부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대로 전결 권한 없이 총리실장 도장을 사용해 공문을 만들어 경찰에 보냈다면 공문서 위조죄를 적용할 수 있고, 사기업에 가서 서류를 가져온 것은 업무방해죄 등에 해당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 정부의 법의식과 윤리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실체도 불분명한 공무원 조직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영장도 없이 조사하는지, 사회의 인권의식이 한심스런 수준으로 후퇴했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정부와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오는 5일 직접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석진환 손원제 기자 soulfat@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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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갈무리해 올린 인력공급회사 ㅋ사의 전 대표 김아무개(56)씨가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을 받은 사건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무총리실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이 충격적인 사건은 국무총리실의 ‘박영준 라인’이 주도한 것으로 <한겨레21> 취재 결과 확인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권 실세인 박영준 국무차장의 ‘사조직’이라는 의혹도 나온다.
구성부터 활동까지, 박영준 중심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씨를 사찰한 뒤 2008년 11월17일 서울 동작경찰서에 수사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제보자료 이첩’ 공문은 국무총리실장 명의로 돼 있으나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전결로 작성됐다. 원충연 행정사무관이 기안한 이 공문은 김충곤 팀장의 중간 결재를 거쳤다. 이 공문은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하여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는 아래 사람(김씨)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니 적의(적절하게) 처리 후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과 김충곤 팀장, 원충연 사무관은 모두 박영준 국무차장의 인맥으로 꼽힌다. 노동부 감사관 출신인 이 지원관은 경북 영덕 출신이지만, 초·중·고교를 포항에서 나와 박 차장과 가깝다. 포항 출신인 진경락 서기관(현재 공직윤리지원관실 총괄지원과장)과 함께 총리실로 파견됐는데, 노동부 안에선 “정권이 바뀌니 TK(대구·경북) 출신이라 역시 잘나간다”는 말이 무성했다고 한다. 원 사무관은 이들과 같은 노동부 출신으로, 대구 남부지방노동사무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원래 총리실의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 발탁된 김 팀장 또한 포항 출신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1국 1과 7팀으로 모두 40명이 근무한다. 한 해 10억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지만,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4급 이상 공무원 9명, 5급 이하 31명이 근무한다는 사실 말고는 인적 구성이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대부분 박영준 국무차장이 ‘심어놓은’ 사람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난해 10월22일 국무총리실을 상대로 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신건 민주당 의원(당시 무소속)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파견 나온 직원들을 뽑을 때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직접 면접을 해서 뽑은 것으로 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영호 비서관은 포항 출신으로, 박영준 차장이 주도한 이명박 대통령 대선 지원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박 차장의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그런 이 비서관이 2008년 7월 설치된 공직윤리지원관실 인선을 맡았다는 것은, 당시 ‘야인’으로 지내던 박 차장을 대리해 그의 뜻대로 조직을 꾸렸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김씨에 대한 불법 사찰을 통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인적 구성이 일부 드러나면서 이 조직 자체가 아예 ‘박영준 사조직’이라는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씨는 박 차장과 갈등 관계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뒷조사를 한 것이 정 의원 쪽에 알려져 청와대 근무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씨의 새 일자리가 하필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마련됐다는 건 든든한 ‘뒷배경’이 없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동향보고서 대통령에게 직보 의혹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별도로 각종 동향보고서를 작성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정부 각 조직에 별도의 정보 라인을 가동해, 이들로부터 정보를 취합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박 차장의 지시로 동향보고서·정보보고서를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영호 비서관을 통할 때도 있고, 필요할 땐 박 차장이 이 대통령한테 직보할 때도 있었다”며, “이 때문에 권재진 민정수석과 박 차장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이 대통령이 직보를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권 수석이 지난해 9월 취임한 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 체계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는 얘기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직제상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국무총리실 소속이긴 하지만, 총리실 어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직속 책임자인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에게도 업무 관련 내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다. 김씨 사찰 문제만 해도, 권 실장은 내사가 진행된 지 1년9개월이 지난 6월21일 국회 정무위 회의 직전에야 알았다. 이날 회의에서 의원들로부터 김씨 사찰에 대한 추궁을 받자 권 실장은 회의 시간 내내 “보고는 받았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운찬 총리도 못 건드린다. 같은 총리실 조직이지만 거기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를 뿐만 아니라, 우리랑은 다른 조직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정 총리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지휘·보고 계통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제동을 걸려고 했다는 말도 나온다. 여권에선 “올해 초 정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박영준 차장을 용퇴시키겠다고 건의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실질적인 관리자가 박 차장이며, 박 차장 개인을 위한 조직이라는 강한 의심이 없이는 이런 소문 자체가 돌기 어렵다.
백보 양보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권 실세와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김씨 사찰 과정에서 보인 행태는 ‘권력 그 이상’이다. 우선 민간인 사찰 자체가 명백한 불법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임무와 기능은 대통령령인 ‘국무총리실과 그 소속기관 직제’ 제13조 2항에 규정돼 있다. 규정은 △공직자 사기 진작 및 지원 △공직자 고충처리 지원 △우수 공무원 발굴 △공직사회 기강 확립 △부조리 취약 분야 점검 및 제도 개선 △그 밖에 공직윤리 지원과 관련한 국무총리 지시사항 처리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임무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직윤리점검반 편성·운영을 규정한 국무총리 훈령인 ‘공직윤리업무규정’ 제9조 2항도 업무 수행 범위를 ‘공무원’과 관련된 일로 못박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활동과 관련한 그 어떤 규정에도, 이들이 민간인을 조사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직권남용죄 해당하는 민간인 사찰
나아가 이들의 행위는 직권남용죄에 해당될 수 있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런 법규정을 무시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작성한 ‘허위사실 유포 등 관련 진행상황 보고’ 문건을 보면, “△2008년 9월10일 첩보 입수 후 내사 시작 △9월16일 (김씨가 거래하는) ㄱ은행 노무팀장 면담 △9월19일 ㄱ은행 인사부행장 면담, 부행장은 김씨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 함” 등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그간 저지른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전기통신기본법의 허위통신, 정보통신망이용법의 명예훼손 조항 등을 적용해 김씨를 직접 소환 조사하겠다는 계획까지 적혀 있다.
ㅋ사는 2005년 3월 ㄱ은행 행우회가 100% 출자해 만든 회사로, 어음 교환이나 금융상품 판매 등 ㄱ은행의 아웃소싱 업무에 인력을 공급한다. ㄱ은행이 ‘갑’이고 ㅋ사가 ’을’이기 때문에, ㄱ은행을 압박하면 ㅋ사는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를 악용해 ㄱ은행 고위 인사를 만나 김씨를 “조치”하도록 종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서둘러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일본으로 떠났지만,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씨 주변을 더욱 압박했다. 김씨가 가진 회사 지분(전체 지분의 75%)을 모두 내놓게 하라고 회사 관계자들에게 요구한 것이다. 결국 김씨는 2008년 12월4일 자신의 지분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불법적인 회사 압수수색까지
역시 총리실이 작성한 ’허위사실 유포건 처리결과 보고’ 공문은 더욱 충격적이다. “9월29일 ㅋ사로부터 회계 관련 자료와 디스켓 등 자진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김씨가 회사 공금 유용하였을 가능성 추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또 ‘향후 조치’로 “11월 중 김씨를 명예훼손, 횡령(공금 유용)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의뢰. 혐의 사실을 엄밀히 추적 의법 조치”하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검찰 수사 기록을 보면, ㅋ사가 회계 자료를 넘겨준 게 자발적인 ‘자진 제출’이 아니라,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압수수색’을 당한 것으로 나온다. 수사기관도 압수수색을 벌이려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그런데 수사권도 없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ㅋ사의 회계 자료를 압수수색한 것이다. 게다가 회사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이런 초법적인 활동으로 얻은 자료를 근거로 횡령 혐의까지 추가해 김씨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총리실에서 넘겨받은 ㅋ사 회계 자료 등을 바탕으로 서울 동작경찰서는 2008년 11월 중순 내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법인카드 사용 내역과 같은 회계 자료를 검토하고, 회사 관계자는 물론 김씨까지 두 차례 조사한 결과 동작경찰서 담당 경위가 내린 결론은 “(총리실이 제기한 명예훼손과 공금 횡령 혐의는) 혐의 없음이 명백하므로 내사 종결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경위는 내사결과보고서에서 “피내사자(김씨)는 국무총리실의 내사 및 ㄱ은행과 ㄴ사(김씨가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뒤 ㅋ사가 바꾼 이름)의 특수한 관계 등으로 인해 자신의 직원 700여 명에게 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해 ㄱ은행 측의 요구에 따라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지분까지도 이전하여 개인으로서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판단된다”고 썼다.
하지만 이 의견은 내부 결재 과정에서 무시되고, 수사과장 전결로 보완수사 지시를 받게 된다. 담당 수사관도 교체돼 재수사가 벌어진다. 이런 과정은 ’윗선’의 개입이 있었으리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실제로 김씨는 경찰 재조사 과정에서 동작경찰서 간부에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검찰에 넘겨야 하니 양해해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경찰은 2009년 3월6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입건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검찰은 9월24일 김씨를 소환 조사한 데 이어 10월19일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김씨는 12월23일 “기소유예 처분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냈다.
김씨의 법정 대리인인 최강욱 변호사는 “총리실 소속 공무원들의 행위는 명백한 직권남용죄에 해당되며,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도 (직권남용 사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채 김씨에게만 기소유예(범죄 혐의는 인정되나 여러 정황을 고려해 검사가 ‘용서’해주는 제도)를 한 검사의 행위도 직무유기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과연 피해자는 한 명뿐일까?
지난해 10월22일 국무총리실을 상대로 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신건 의원은 이렇게 질타했다. “민주국가에서 이런 행위를 방치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공무원 책상을 다 뒤지는데, 앞으로 국민들 책상 다 뒤지지 말라는 법이 어디가 있어요? 공무원들 뒤지는데, 힘없는 국민들 못 뒤지는 법이 어디 있어요?” 신 의원이 말한 ‘이런 행위’는 2008년 12월 말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감찰반원 10여 명이 한밤중에 외교통상부 4개 부서의 책장과 책상 서랍을 뒤져 30분 만에 양주 101병을 찾아낸 일이다. 신 의원이 한 우려의 핵심은 이들이 공무원들의 책장과 책상 서랍을 무단으로 뒤진 데 있었다.
우려는 1년이 채 안 돼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직제상 최종 책임자인 권태신 실장은 내용 파악도 못하고 있고, 실무 책임자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도, 정확한 임무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피해자는 김씨 한 명뿐일까? 권력 남용과 사유화의 그늘에서 피해를 본 사람이 김씨 혼자뿐일까? 과연 그럴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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