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은 모두 3단계에 걸친 불법행위로 이뤄져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제1단계로 본다면, 김종익씨에 대한 불법사찰 폭로 뒤 윤리지원관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영구삭제한 증거인멸 행위가 제2단계 불법이다. 마지막 제3단계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들의 혐의를 의도적으로 빼는 등 축소 수사를 통해 진상을 은폐·조작한 행위다.
제3단계의 주범 내지 공범은 검찰 간부들이 될 수밖에 없다. 제대로 수사한다면,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한 현 법무장관을 비롯한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들이 수사선상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크다.
장 전 주무관이 그동안 밝힌 내용만 보더라도 검찰을 둘러싼 의문은 한둘이 아니다.
수사 의뢰 4일 만에야 뒤늦게 진행된 지원관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사건을 파헤칠 중요 단서가 될 만한 업무분장표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압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사 과정에서도 진경락 총리실 과장이 검찰에서 조사받은 뒤 자기 신문조서를 들고 와 장 주무관과 말을 맞췄고, 최종석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호텔에서 출장조사를 받는 특혜를 누린 끝에 아예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모두 검찰이 의도적으로 봐주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게다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검찰 출신 민정2비서관은 “내가 연루되면 민정수석실도 멀쩡하지 못할 것”이라는 최 행정관의 협박에 검찰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질책했다는 게 장 전 주무관의 전언이다.
그가 여러차례 밝힌 인터뷰 내용과 최 전 행정관과의 대화 내용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검찰이 은폐조작에 적극 가담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런 대목들까지 모두 성역 없이 파헤쳐 자기 살을 도려내겠다는 특단의 각오 없이는 수사를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제2단계의 증거인멸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연루 사실이 드러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윗선’이 밝혀져야 한다. 이 전 비서관과 최 전 행정관이 윗선의 아무런 보장도 없이 증거인멸이라는 불법행위를 과감하게 저질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1단계의 민간인 사찰 행위도 원점에서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추가적인 사찰행위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사찰 보고서가 어떤 경로로 누구에게 보고됐는지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지휘해 민간인을 사찰하는 해괴한 조직 운영의 비밀을 푸는 열쇠다.
지금 수사팀에 많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마저 꼬리자르기, 왜곡, 은폐 수사가 이뤄져선 절대 안 된다.
사건의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됐는데 증거부족 운운하며 빠져나갈 생각도 말아야 한다.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 2012. 3. 17 한겨레 사설 ]
**********************************************************************************************************
검찰, 고용비서관실 너머 민정수석실 겨누나
‘민간인 사찰’ 재수사 방향은
검찰 간부 “이영호·최종석 처벌은 어렵지 않을것”
‘민정수석 보고용’ 폴더 나오고 협의 의혹 제기돼
수사팀장 박윤해, 노환균 전 서울지검장과 동향
16일 꾸려진 민간인 사찰 재수사를 위한 특별수사팀의 1차 수사 대상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지휘한 것으로 보이는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역할도 빠뜨릴 수 없는 규명 대상이다.
■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업무 관련성으로 보면 공무원 감찰기구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가깝다. 그러나 장진수 전 주무관의 주장을 종합하면, 실제로는 사회정책수석 산하 고용노사비서관실의 지휘를 받은 정황이 뚜렷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정수석실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비선 조직’이라는 관가의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공무원 감찰이라는 ‘본연의 업무’ 외에 민간인 사찰 등의 불법 행위는 고용노사비서관실에 보고했으리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게 합법·불법의 선을 그어서 보고체계가 이원화됐다고 보기도 어려운 정황도 있다. 검찰은 1차 수사 때 공직윤리지원관실 하드디스크에서 ‘081001 민정수석 보고용(9월30일 생성)’ 폴더에 들어 있는 ‘다음(동자꽃)’이라는 이름의 한글파일을 찾아냈다. ‘동자꽃’은 민간인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케이비한마음 대표의 포털사이트 아이디였다. 데이터가 삭제돼 파일의 이름만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만, 김씨에 대한 사찰 내용이 당시 정동기 민정수석에게도 보고됐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인규 전 지원관은 1차 수사 과정에서 “이강덕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장(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김종익씨 사찰 건을 보고했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은 이 팀장을 서면조사하고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린 적도 있다.
2010년 7월 최종석 행정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수사 무마를 협의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있다.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최 전 행정관이 김진모 민정2비서관을 찾아가 “내가 연루돼 들어가면 민정수석실도 멀쩡하지 못할 것”이라고 사실상 협박했고 김 비서관이 검찰 관계자에게 전화해 “어찌 하여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질책했다는 게 장진수 전 주무관의 주장이다. 이때 민정수석이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장 전 주무관의 폭로 내용으로 보면 이영호 전 비서관이나 최종석 전 행정관의 처벌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며 “재수사팀이 새로 밝혀야 할 것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활동과 관련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역할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 수사팀 면면
박윤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이 이끄는 특별수사팀에는 형사3부의 전영준, 형사1부의 단성한, 특수3부의 조두현 검사가 팀원으로 합류했다. 사법연수원 22기인 박 부장검사는 대검 공안연구관과 국가정보원 파견 근무 경험이 있는 ‘공안통’이다. 또 1차 부실수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노환균 법무연수원장과 동향(경북 상주)이고, 1차 수사 당시 민정2비서관이었던 김진모 검사와는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검사의 축소 수사 및 수사 무마 의혹은 문제가 없다는 예단을 둔 인선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