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다스' 찍고 'BBK'까지 정조준하나
다스 실소유 의혹 과거 여러 차례 무혐의..MB 구속되면서 'BBK' 사건도 재조명
17대 대통령 선거를 두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미국 법원은 2007년 10월18일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당시 대선은 이명박(MB) 한나라당 후보의 ‘대세론’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김씨는 이 후보의 대세론을 잠재울 여당의 ‘필승 카드’로 인식됐다. 야당에서 ‘기획 입국설’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이 후보의 차명회사로 알려진 (주)다스가 190억원을 BBK에 투자한 만큼, 이 후보 역시 주가조작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최재경 당시 특수1부장을 주축으로 한 BBK 김경준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검찰은 김씨가 송환되자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초기 수사에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검찰은 2007년 12월5일 이 후보의 BBK·다스 의혹에 대해 전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대통합민주신당은 BBK 수사 검사 3인(김홍일·최재경·김기동)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 역시 탄핵소추안 처리시한을 넘기면서 자동 폐기됐다.
검찰 수사 10년 만에 MB 구속
결국 이 후보는 2007년 12월19일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10년 정도가 흘렀다. 2017년 10월 서울중앙지검에 다스 관련 수사팀이 또 다시 꾸려졌고, 6개월여 만인 2018년 4월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기소 됐다. 특가법상 뇌물·조세포탈·국고 등 손실·특경법상 횡령·대통령기록물법 위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만 16개에 달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과거 수사 때와 달리 검찰이 다스의 실소유주로 이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는 점이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언론 브리핑에서 “과거 BBK 특검 수사 당시 허위진술 등으로 증거인멸에 가담했던 다스와 영포빌딩 관계자들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다스를 창업하기로 결정하고, 설립 절차를 진행할 직원을 선정했다. 다스 창업비용과 설립 자본금도 이 전 대통령이 부담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전 대통령 측은 이 같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기소가 확정된 4월9일 성명서를 통해 “다스의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검찰이 ‘실질적 소유권’이라는 이상한 용어로 정치적 공격을 하고 있다”며 “더구나 다스의 자금 350억원을 횡령했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현재 검찰의 구치소 방문조사도 거절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최병국 변호사(전 국회법사위원장)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통령의 공소장을 보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다”며 “향후 법원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법정에서 적지 않은 공방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현재 정치권 안팎의 관심은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검찰 수사의 칼날이 확대될지 여부에 쏠려 있다. BBK 사건은 재미사업가였던 김경준씨가 1999년 한국에 투자자문회사 BBK를 설립해 384억원에 달하는 돈을 횡령하면서 벌어졌다. MB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검찰과 특검은 이 사건을 김씨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김씨는 2009년 대법원에서 징역 8년과 벌금 100억원이 확정됐다.
김씨는 2017년 3월 만기 출소 후 미국으로 추방됐다. 하지만 출소 이후에도 트위터 등을 통해 BBK 재수사를 꾸준히 요구해 왔다. 지난해 김씨를 특별 면담했던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 전 대통령이 50대 50의 지분을 가지고 BBK 사건에 관여한 내용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자료도 (김씨가)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BBK 재수사 목소리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정치권에서도 이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BBK 사건에 대한 재수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11년 전에 밝힐 수 있었던 진실이 이제야 밝혀졌다. 이제 남은 것은 BBK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 주가조작에 연루됐다고 폭로했다가 실형을 선고 받은 정봉주 전 의원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BBK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4월23일 현재 ‘BBK’란 키워드로 검색된 국민청원 및 제안만 214건에 달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서는 핵심 증인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특히 김희인 변호사의 경우, 김경준씨나 누나인 에리카김이 사건의 열쇠가 될 핵심인물로 지목했다. 그는 2000년 이 전 대통령과 김경준씨가 공동 설립한 앨케이뱅크(LKeBANK)의 감사로 재직했다.
2000년 2월 김경준씨가 엘케이이뱅크(LKeBANL)를 설립하면서, 이명박 당시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에게 보낸 편지에도 그의 이름이 나온다. 당시 김경준씨는 “김희인 변호사와 만나 회사 정관과 주주계약의 세부사항을 논의했다”며 “김 변호사가 회장님(MB)이 검토할 수 있도록 회사 정관을 최종 완료할 계획”이라고 편지에서 밝혔다.
김씨나 에리카김은 2007년 검찰 조사나 특검 당시 핵심 이슈였던 한글판 이면계약서 작성 과정에서도 김 변호사가 배석했다고 그 동안 주장했다. 때문에 대통합민주신당은 2007년 BBK 특검 당시 홍종국 전 e캐피탈 대표와 전세호 심텍 사장, 이상은 다스 대주주, 조봉연 오리엔스 캐피탈 회장과 함께 김희인 변호사를 핵심 증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변호사가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로, 전자우편을 통한 서면 조사로 대체한 만큼, 재조사가 진행되면 김 변호사에 대한 추가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사저널은 이런 흐름을 감안해 BBK 사건을 지속적이고 심층적으로 취재해 왔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횡령이나 투자사기 건에 여러 차례 연루되면서 지명수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김씨가 대표를 맡았던 I코스닥 상장사의 가지급과 대여금 수백억원을 공시하지 않은 사실이 2003년 증선위에 적발됐다. 이후 검찰에 고발됐지만 김씨가 해외 도피 중이어서 수사를 못하고 지명수배를 내린 상태”라고 말했다. 2007년 BBK 수사 당시 검찰이 김씨를 소환하지 못하고 이메일 조사로 대체한 것도 이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인공심장업체 C사의 투자사기 사건에도 김씨가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2012~2013년 이 회사가 곧 나스닥에 상장할 것처럼 유도해, 한국 투자자들로부터 80억원 상당을 투자 받았다. 투자자들은 40~50명 규모로, 투자자 중에는 국내 증권회사에 다니는 직원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록 이 회사는 나스닥에 상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회사 경영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기자가 만난 한 투자자는 “지난 5년간 한 번도 주주총회를 열지 않았고, 경영과 관련된 회계장부를 전달받지 못했다”며 “주주들이 내용증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회계 보고나 회계감사 요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참다 못한 주주들은 현재 김씨에 대한 공동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BBK 핵심 증인 투자사기 연루돼 해외 도피 중
최근에는 김씨가 대표로 있는 미국 면역항암제업체 V사와 관련해서도 한국의 상장회사가 김씨를 상대로 사기·횡령·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또한 감독당국에도 김씨에 대한 진정서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증권 상장 조명업체인 P사는 3월 초 V사의 지분 63%을 취득해 1대주주에 오르는 MOU를 체결했는데, 2월 하순 3000원대였던 주가가 MOU 이전부터 급등해 불과 한 달 반 만에 무려 3만원까지 8배나 급등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미공개정보 및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시세조정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 진정 내용의 요지다.
잇따른 소송과 사기 등의 혐의 때문에 김씨는 현재 한국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돼도 김씨에 대한 소환 조사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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