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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답 '관세폭탄'…자유주의 무역 붕괴 재촉

道雨 2024. 5. 23. 12:04

미국의 노답 '관세폭탄'…자유주의 무역 붕괴 재촉

 

 

중국 EV가 미국 앞지를까 막무가내 '무역장벽'

미국이 만든 무역질서 스스로 무너뜨리는 모순

미국자동차, 혁신 인센티브 없어져 좀비화 가능성

한국, 미국 '속빈 성장' 곁불 쬐려다간 큰코 다친다

 

 

 

“중국 전기자동차(EV)에 대한 미국의 100% 관세: 나쁜 정책, 더 나쁜 리더십”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15일 기사 제목이다. 그 밑에 달린 부제는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동안 세계 무역 시스템(global trade system)은 무너지고 있다”이다.

이 잡지는 지난 9일에도 유사한 주제의 기사를 내보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제목 아래 “붕괴는 갑작스럽고 돌이킬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부제를 달았다.

전기자동차 100%, 반도체 50%, 태양광 패널 50%, 의료기기 50% 등, 지난 14일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들에 ‘관세 폭탄’을 때리겠다고 발표한 뒤에 나온 기사의 톤은 한층 더 다급해 보인다.

한국, 미국 너무 믿지 마라

이들 기사는 관세 폭탄으로 미국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정부의 그런 보호무역주의로의 선회가 오히려 미국을 더욱 궁지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나아가 지난 반 세기 동안 세계가 관세 장벽 낮추기로 이룩한 성과들, 미국 자신이 주도해 온 그 성취들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세계를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과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ies)의 번영은 전적으로 무역에 달려 있다”고 콕 집어 말하면서, 보호무역주의로 돌아가고 있는 미국의 강력한 성장에 기대어 세계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했다. 미국 너무 믿지 말라는 경고로도 들린다.

 
바이든의 ‘관세 폭탄’, 답 없는 보호무역주의

기사는 데이비드 리카도의 자유무역론에서 제시한 국경 개방이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며, 이와 대조적으로 관세는 비효율적인 기업을 만들어내 소비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했다.

그리고 1980년대 일본 자동차의 미국 대량유입 때 할당량을 강제한 보호주의적 조치가, 자동차 가격을 폭등시키고 ‘빅3’ 등의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퇴락을 초래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미국 기업들은 중국 자동차업체 비야디(BYD)의 ‘시걸’(Seagull)과의 경쟁을 두려워하고 있고, 바이든 정부는 그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관세 폭탄을 날렸다고 했다.

그 때문에 비야디 자동차의 일부 버전은 1만 달러도 안 되는 싼 가격이지만, 미국에서 팔 때는 가격을 3배나 올려야 한다. 그래서는 팔릴 리가 없고, 그런 고율 관세의 보호를 받는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친환경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인센티브가 없어진다. 혁신도 경쟁력도 없이 국민 세금만 갉아 먹으며 연명하는 ‘좀비 기업’들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아베노믹스’ 10여 년간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국의 녹색 보조금이 중국 기업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관세장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진짜 두려움은 중국 EV가 미국 자동차 앞지른 것”

바이든 정부는 중국 전기자동차가 막대한 보조금으로 어떤 이익을 얻었는지 근거를 제시하고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었고, 중국 전기자동차들을 쓰면 사용자의 정보가 중국 제조사와 정부에 유출된다는 근거 박약한 “무서운 추측”을 제시하기보다, 근거 있는 보안 위협을 문서화해 제시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이든 정부는 원래 중국이 미국 기술을 훔쳤다는 이유로 정당화했던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을 근거로, 이번에 새로운 관세를 추가했다. 자신의 ‘보호주의’라는 치부를 트럼프의 선행조치라는 ‘무화과’로 가린 것이라고 기사는 지적했다.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가. 오늘날 중국 전기자동차에 대한 진짜 두려움은, 그들이 미국에서 기술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동차들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무역질서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과도한 정부 보조금으로 값싼 제품을 만들어 가성비 좋은 상품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중국의 과잉생산도 한몫하고 있지만, 미국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 전기자동차 관세를 4배나 올려 100%로 결정한 것은, 뒤처진 자국 자동차들이 앞서가는 중국 전기자동차들에 경쟁력에서 뒤진다고 보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만든 무역질서를 무너뜨리는 미국정치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11월 대선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자동차와 자동차 관련 철강, 알루미늄 등의 생산 거점들이 있는 미시간 주나 필라델피아 주 등, 한때 백인 중산층의 본거지였으나 공장들의 해외 이전과 값싼 수입품 범람으로 몰락한, 이른바 ‘러스트 벨트’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들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결정이다.

이는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멕시코를 경유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 전기자동차에 200%의 관세를 때리겠다고 공언했고, 이번 바이든의 관세 폭탄 조치가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중국 전기자동차 수입이 얼마 되지 않는 미미한 상황에서, 이런 관세 폭탄은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것이 대선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조치라는 지적은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결국 미국정치가, 미국이 만들어낸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유주의 무역질서를 무너뜨리는데 가장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장하준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도 산업화 후발주자로 선발국들을 따라잡을 때는 보호무역에 기댔다가, 최강자가 된 뒤에는 자유무역을 주장했으나, 동아시아와 중국이라는 도전자들이 등장하고 자국이 경쟁력 우위를 상실하게 되자, 다시 보호무역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나가면,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브라질은 이미 전기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올리고 있고, 유럽연합(EU)도 곧 뒤따라 갈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무역 정책을 주도하고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유주의 무역질서의 성과

15일 기사는, 지난 반 세기 동안 세계가 이룩한 가장 큰 성취 중의 하나가 글로벌 차원에서 관세가 대폭 감소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르면, 1970년대엔 평균 10%가 넘었던 수입 관세가 오늘날 3%로 내려갔고, 이것이 국제 상업 붐을 촉진하고, 1인당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이 거의 3배나 증가하는데 기여했다.

9일 기사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와 2000년대, 말하자면 1970년대의 높은 관세장벽이 허물어진 이후 시기의 “역사상 유례없는” 성취를 열거한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 통합되면서 수억 명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아 사망률은 1990년에 비해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국가들 간의 분쟁으로 사망한 세계 인구의 비율은, 2005년에 전후 최저치인 0.0002%를 기록했다. 1972년에는 그 수치가 거의 40배나 높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대체하기를 희망하는 '워싱턴 컨센서스' 시대는, 가난한 나라들이 따라잡기 성장을 누리며 부유한 나라들과의 격차를 좁힌 시대였다.”

“규제받지 않는 세계화를 불평등, 세계 금융위기, 기후위기의 원인이라며 비판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는 얘기다.

 
허물어지기 시작한 질서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영국과 미국이 선도한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예찬으로 비칠 수도 있는 기사에서 얘기하는 그 시대는 최근 급속히 흔들리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기사에 따르면, 징벌적 제재는 1990년대보다 4배나 더 많이 동원됐다. 미국은 우크라 침공 이후의 러시아 군대를 지원하는 단체에 2차 처벌까지 가했다.

국가들이 친환경 녹색(green) 제조업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막대한 국가지원(보조금 지급)을 모방하면서, 보조금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달러가 아직은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거대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의 성장, 우크라 전쟁 이후의 진영간 분열 조짐과 함께, 글로벌 자본 흐름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기존 시스템을 보호했던 기관들이 사라졌거나 빠르게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내년에 3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미국의 무시로 이미 5년 넘게 작동 정지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환경문제와 금융 안정보장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한 유엔 역시 거의 기능 정지상태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우크라를 침공했고, 역시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자행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안보리 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한다.

국제사법재판소도 유명무실하고,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을 비롯한 미국 주류의 친이스라엘 세력은, 국제형사재판소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할 경우 오히려 이 기관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한다.

“힘이 곧 정의, 전쟁은 대국들의 의지처”

자유주의 무역질서는 이런 요인들이 누적되다, 어느 순간 갑자기 허물어질 수 있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1차 세계대전 바로 전 영원할 것 같았던 ‘세계화의 황금시대’ 붕괴 사태가 보여 준다. 1930년대 초 대공황이 시작되고, ‘스무트-홀리 관세’(대공황 초기인 1930년에 산업보호를 위해 미국이 제정한 관세법. 2만여 개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한 법)가 부과된 뒤 미국의 수입량은 불과 2년만에 40%나 급감했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터졌다.

1971년 8월 리처드 닉슨의 예기치 않은 달러의 금 태환 중단 발표도 그랬다. 그 19개월 뒤 브레튼우즈 체제의 고정환율제도가 무너졌다.

기사의 필자는 오늘날 그와 비슷한 파열이 상상 이상의 강도로 다가온다는 걸 느낀다며,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제도와 규범의 침식은 가속화할 것이며, 값싼 중국산 수입품의 두 번째 물결에 대한 두려움(‘차이나 쇼크 2.0’)이 그것을 더욱 더 가속할 수 있다고 했다.

거기에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충돌, 또는 서방과 러시아의 전면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붕괴와 손실이 발생하면서 무정부 상태로 돌입할 수 있다.

무정부 상태에선 “힘이 곧 정의”이고 “전쟁은 대국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신자유주의 질서 유지가 해법?

기사의 지적대로 한국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주도한 개방적인 자유무역 질서의 수혜자일 수 있다. 기사가 얘기하는 자유무역 질서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다분히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체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계급적 계층적 이해가 다르고 때로 상반되기도 하지만, 한국이란 나라가 GDP나 화폐소득 기준으로 신자유주의의 혜택을 받아 ‘번영’한 ‘작고 개방적인 경제’라고 한 말은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을 한민족 또는 한반도 전체로 연장할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 연장된 한국 또는 한반도, 한민족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수백만의 동족이 희생당한 채 여전히 분단상태로 소모적 대립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이 주도한 2차 대전 이후의 국제질서에서 가장 큰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는, 침략과 식민지배 가해자이자 전범국이면서도, 면죄부를 받고 미국의 최대 동맹국으로서 특혜를 누린 일본일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또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로의 회귀 또는 복원이 곧 ‘한국’의 번영을 보장할 것인지 여부는 간단하게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한승동 에디터sudohaan@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