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대통령 노릇 잘하려면 탄핵 결정문을 보라

道雨 2025. 4. 11. 09:18

대통령 노릇 잘하려면 탄핵 결정문을 보라

 

 

 

‘한국 대통령은 위험한 직업이다.’

중국의 소셜 미디어에서 떠도는 말이라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국민에 의해 쫓겨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손에 의해 시해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이른바 ‘의회 쿠데타’로 그 자리에서 밀려날 뻔했다. 그는 살아있는 권력의 박해로 죽음에까지 내몰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 최초로 탄핵심판을 통해 파면됐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그 직을 박탈당했다.

그러니 아무리 좋게 봐도 한국의 대통령 자리는 매우 위험한 자리다. 퇴임 후에도 온갖 고초를 겪어야만 하는 ‘극험’ 그 자체다.

 

 

그런데 왜 다들 대통령이 되고 싶어할까?

권력욕, 사명감, 부추김, 떠밀림 등이 이유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뭐든 대통령이 그 나라와 국민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선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이고, 확률적으론 후보군이 풍성하면, 그중에 괜찮은 카드가 끼어있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리가 지닌 위험성을 피해 가는 좋은 텍스트가 있다. 바로 헌법이다. 헌법에 정한 대로 하면 된다. 헌법에서 금지한 것을 하지 않으면 되고, 헌법에서 요청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하면 된다.

레퍼런스도 있다. 실패한 대통령 사례에서 배우면 된다. 어떻게 배울지 모르겠다면 헌재의 탄핵 결정문을 읽어보길 권한다. 3번의 탄핵 사례가 있었으니 3건의 탄핵 결정문이 있다. 그 결정문을 찬찬히 밑줄 그으며 읽고 또 읽으면, ‘대통령 노릇 잘하는 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결정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대통령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로서 자신 스스로가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기관이나 일반 국민의 위헌적 또는 위법적 행위에 대하여 단호하게 나섬으로써 법치국가를 실현하고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 ‘다른 국가기관’을 국회로, ‘위헌·위법적 행위’를 탄핵 남발과 예산 삭감으로, ‘단호하게 나섬’을 비상계엄으로 오독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결정문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대통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하는 경우의 하나로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여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우’를 적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저지른 불법 계엄을 꼭 집어 말하는 것 같다.

이에 기초해 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지만, 헌재로선 파면 결정이 처음부터 불가피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도 눈에 띄는,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각별히 새겨야 할 지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최서원(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서원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 실현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사인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면 안 된다,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 사익 추구를 도와주고 은폐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의 국정 개입 용인을 넘어 아예 의존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남용하고, 검찰권을 활용해 부인에 대한 온갖 의혹의 소명을 가로막았다. 주가 조작으로 이득을 얻었다는 의혹이 넘쳐나도, 명품백을 대놓고 받아도, 공천에 개입해도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부인의 사익 추구를 편들거나 은폐하려 했다. 제도적 부패다.

따라서 헌재로선 파면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차례나 탄핵소추 당했다. 그중에서 두번째는 의회 폭동을 선동한 것에 대한 문책 차원이었다.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할 때 10명의 공화당 하원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초당적 탄핵이란 모양새를 갖춘 셈이었다. 그럼에도 그 탄핵안은 상원에서 최종 부결됐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7명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3분의 2에 못 미쳐 부결됐다.

만약 미국이 탄핵심판 권한을 우리처럼 헌재에 뒀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근래 미국은 법원마저 정치적 양극화에 적지 않게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100%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우리 헌재처럼 헌법·법률을 중심에 놓고 판단했다면 인용 가능성은 더 컸을 테고, 그랬더라면 트럼프의 2차 집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민주주의의 보루가 된 헌재의 존재가 참 다행스럽게 다가온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또 다른 윤석열의 등장을 막을 차단벽을 하나 더 세우긴 했으나 완벽하진 않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제도를 우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진화된 윤석열이 출현하지 않게 하려면, 더 촘촘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당들이 엉터리나 빌런을 걸러내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역할을 충실히 해줘야 한다. 또 상대를 존중하고 권력을 자제하는 민주적 규범이 확고하게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성공한, 아니 최소한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헌재 결정문에서 배워야 한다.

 

‘대통령이 헌법의 대통령제와 대의제의 정신에 부합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함으로써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통하여 직접 민주주의로 도피하려고 하는 행위는 헌법 제72조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법치국가 이념에도 반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결정문의 한 부분이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이 필요한 경우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은 조항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행위는 대통령들이 즐겨 사용하는 정치수단이나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안 된다. 우리 헌법이 정한 대의제에 정신에 맞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싫든 좋든,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대통령은 국회와 어울리고 야당과 부대끼며 거래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선 여길 주목하면 좋겠다.

‘대통령은 그 권한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합법적으로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그 성질상 보안이 요구되는 직무를 제외한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공무 수행의 공개가 없으면 사를 두게 되고 마가 끼기 마련이다. 공개해야 조심하고, 견제와 균형 기제가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의회와 언론 그리고 국민의 감시와 평가가 상시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로서 자부하는 소명의식과 애국심 때문에 그들은 곧잘 국회나 언론, 시민단체 나아가 국민의 평가를 꺼리고 불편해한다. 이처럼 자신의 둘레에 벽을 쌓기 시작하면서 망조가 든다.

 

어떤 공격이나 실책에도 흔들림 없이 인기를 누리는 대통령에게 ‘테플론’(Teflon)이란 수식을 붙인다. 테플론 대통령의 대표 사례인 레이건도 공개를 피해 추진한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바 있다.

 

 

하나 더, 윤석열 탄핵 결정문의 한 구절이다.

‘민주주의는 대등한 동료 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

 

민주주의는 힘자랑이 아니고 존중이고 배려라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동료 시민에 대한 사랑이자 동료 시민과 함께 사는 공존이다.

 

“민주주의는 그 누구에게도 등을 돌리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체제다.”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의 말이다.

 

 

 

[ 이철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