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공백과 연대의 정치
민중은 바람보다 먼저 눕기도 하지만, 결국 바람보다 먼저 일어섰다. 이번 내란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이 땅의 풀들이 일어났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오물처럼, 내란 이후 ‘열린 사회의 적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민주화 이후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통제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결함은 보수의 공백이다.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부수려 한 세력을 어떻게 보수라고 부르겠는가?
보수의 자리를 차지한 극단 세력은,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으며, 국가를 사적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애국심이 없다.
그리고 결국 무능이 드러나자, 나라를 지키는 군대를 정권 유지를 위해 불법적으로 동원했다. 시대가 변한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수용하는 보수를 찾기가 어렵다.
전후의 세계사에서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반도와 중립화 통일을 이룬 오스트리아 사례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합리적 보수의 존재 유무다.
전후 오스트리아는 좌우의 온건파들이 협력해서 극단 세력을 제어하고 이념 갈등을 막았다. 국내의 단합으로 강대국을 설득할 수 있었다.
언제나 국내 정치와 외교의 공통점은 협상의 능력이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가 외교를 잘할 수 없다.
대한제국의 붕괴와 해방 후의 분단까지 국내의 분열이 외세의 개입을 부르고, 그것이 식민지와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땅 비극의 역사는 분열의 결과이고, 그것은 보수의 공백 때문이다.
여전히 독재의 역사를 찬양하고 쿠데타를 옹호하는 세력이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는 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광장에 들어오려면, 최소한 물리적 폭력은 포기해야 한다.
정치권이 저출산·고령화나 기후변화와 같은 시대적 과제를 논의해야 하는데,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정치력을 소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다시 초당적 대화로 시대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게 가능하겠는가?
선진국의 초당적 대화는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다. 대화는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토론이 가능하겠는가? 극단 세력이 보수를 대신하는 한, 중도의 지혜란 불가능하다.
다시 세계적으로 극우의 물결이 퍼진다. 극우주의는 무너진 중산층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해서 세력을 키운다.
일상의 삶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이성에 지치고 성찰을 멈추자, 증오와 편견 그리고 미신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반이민의 광기 너머에는 세계화로 더욱 벌어진 양극화의 그늘이 존재한다.
세계는 파시즘이 등장했던 시대적 환경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 ‘시민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성, 그리고 국회의 신속성’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위기의 구조는 그대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극우주의가 번지는 유럽에서, 독일의 기독민주당과 같은 보수정당이 민주주의의 문지기 구실을 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독일에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이념적 격차를 넘어서 대연정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극우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물론 극우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방화벽 원칙’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광기의 시대에 이성의 연합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세계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보고 있다.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던 시도가 실패했고, 시민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했으며,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만든 민주주의의 불꽃이, 제도화 과정에서 차갑게 식은 과거의 실패를 기억한다.
교훈은 분명하다.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
파시즘은 비타협적인 급진파와 무능한 보수파의 분열 틈에서 탄생했다. 과거 한국 대선의 역사를 돌아봐도 민주주의 진영이 연대하면 승리했고, 분열하면 패배했다.
김구 선생은 1948년 2월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할 때, 논어의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내부 투쟁을 중지하자고 호소했다.
광복 80년을 맞으며, 우리는 중요한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무엇보다 극단주의 세력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
무너진 민생과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 경쟁은 치열해야 하지만, 민주주의 규범 연합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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