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으나, 중국 정부에 의해 위조 공문으로 확인된 ‘출입경기록조회결과’(왼쪽)과 변호인이 제출한 진본 ‘출입경기록조회결과’(오른쪽). 도장과 문서 양식 등이 모두 다르다. |
사건 경위·공문서 위조 내용
중국 문서엔 재입북 기록 없는데
검찰쪽 문서엔 ‘입·출·입·출’ 적혀
정황설명서·발급확인서도 위조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34)씨의 항소심 재판은, 검찰이 “2006년 5~6월 유씨가 북한에서 14일간 머물렀다”는 출입국기록을 제출하면서 분위기가 전환됐다.
2006년 5~6월 유씨가 북한에 머물렀다는 주장은, 검찰엔 재판 결과를 뒤집을 카드였다. 유씨가 이때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시작했다는 게 공소사실의 요지였다.
유씨는 2006년 5월23일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으로 나왔다. 여기까진 유씨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1월 초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했다는 유씨의 출입국기록을 재판부에 냈다. 이를 보면, 유씨는 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으로 나왔다가 11시16분에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고, 그해 6월10일 중국으로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유씨가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중국으로 나온 뒤 다시 입북해 27일부터 14일 동안 북한에 머문 것처럼 보인다.
이게 맞다면 장례식 이후 북한에 간 적이 없다는 유씨 주장은 거짓말이 된다.
유씨는 검찰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공식 발급기관)에서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았다.
이를 보면, 27일 오전 10시24분 유씨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뒤, 11시16분에 다시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기록이 찍혀 있다. 또 6월10일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출입경기록은 ‘출-입-출-입’이 자연스러운데, 유씨의 기록은 ‘출-입-입-입’으로 돼 있다. 이는 오류다.
유씨는 중국 삼합변방검사창(세관)이 “처음 (장례식 때문에 왕래한) 출-입 기록은 정확하다. 뒤의 입-입 기록은 시스템 업그레이드 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인해 틀린 기록”이라고 밝힌 정황설명서를 추가로 재판부에 냈다.
검찰도 곧바로 삼합변방검사창에서 발급받았다는 정황설명서를 재판부에 제시했다. 이를 보면 “‘출’과 ‘입’ 기록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쓰여 있다. 검찰이 낸 ‘출-입-출-입’ 기록이 맞다는 것이다.
변호인이 이에 대한 반박 의견과 자료를 내자, 검찰은 세번째로 문서를 제출했다. 화룡시 공안국이 심양에 있는 한국영사관에 보냈다는 “화룡시 공안국은 유우성의 출입국기록 조회 결과를 틀림없이 발급하였음을 확인해드리는 바입니다”라는 확인서였다.
유씨와 변호인은, 화룡시 공안국은 출입국기록을 발급하는 공식 기관이 아니어서 이것 또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길림성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고, 그 안에 연길시·화룡시·용정시 등이 있다. 자치주 공안국은 연길시에 있다. 유씨 가족은 연길시에서 살고 있으며, 화룡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유씨 쪽은 검찰이 낸 세가지 서류가 진짜 중국 당국에서 발급한 게 맞는지 중국에 확인해보자고 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12월23일 중국에 사실조회 신청을 했고, 지난 13일 중국이 ‘검찰이 낸 서류는 모두 위조이고, 유우성씨가 제출한 두개의 서류는 합법서류’라는 답변을 한 것이다.
검찰은 1심에서도 유씨가 북한에서 찍었다는 사진을 증거로 냈지만, 검증 결과 모두 중국에서 찍은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
기어코 간첩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몸부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의해 간첩으로 지목을 받았으나,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유우성씨가 6일 오후 항소심 재판이 열리는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토요판] 뉴스분석 왜? / 유우성 사건, 검찰 문서 조작 의혹
▶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수사 당국이 증거를 조작해 재판부에 제출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던 과거의 기억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알려졌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항소심에서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유우성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심층취재를 통해 사건의 내용을 깊이 추적해봤습니다.
지난 2월 검찰은 이른바 ‘화교남매 간첩’을 발표하며. 서울시 공무원으로 활동하던 유우성(33)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무죄 판결했다.(‘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으로도 불림. 관련 기사 <한겨레> 9월7일치 14면)
유씨의 여동생이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오빠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간첩’이라고 한 진술을 재판 과정에서 스스로 뒤집은 것이 큰 원인이었다.
유씨의 여동생은 국정원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허위진술을 했고, ‘남한에서 오빠와 편히 살게 해주겠다’는 국정원의 회유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씨가 지난해 1월22~23일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사진도, 실제로는 중국에서 찍은 것으로 확인되는 등, 사실관계가 틀린 검찰 공소장 내용이 유씨 변호인단의 중국 현지조사 과정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오류 많은 중국 기록지를 완벽하게 수정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
국정원과 검찰은 과연 증거를 제대로 수집해 간첩죄 기소를 하는 것인가.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는 없는 것인가. 간첩으로 몰린 탈북자들에게 변호인 선임권은 제대로 주어지고 있는 것인가.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장하나 민주당 의원 등이 일부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지만 아직 국정원은 아무런 답이 없다. 상황 변화라고는 유우성씨 무죄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뿐이다.
검찰은 지금도 유씨를 간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최성남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이범균 재판장)가 무죄 판결한 직후인 8월26일 항소해, 현재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윤성원 재판장)에서 관련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이 편 항소의 주요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검찰은 ‘국정원이 유씨의 동생을 남한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고 해서 무고한 오빠를 간첩이라고 주장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유우성씨는 진짜 간첩이고, 유씨의 동생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백했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또 유씨 동생의 진술 내용이 오락가락한 점에 대해서는 원심 재판부가 수사 과정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판부는 유씨 동생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아 그가 국정원 등에서 한 진술을 탄핵해 버렸는데, 검찰은 ‘특정 수사 시점에서 진술한 내용의 사실관계가 이후 변경된다고 하여 신빙성을 통째로 부인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무죄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 기록이 아니라 법정에서 제시되는 증거라는 점에서 검찰의 논리가 억지라는 반론도 있다.
간첩혐의로 기소되었지만 1심에서 무죄받은 유우성씨
검찰은 왜 항소심 재판에 조작 의심되는 출입경기록을 들이대며 무리하는 것일까
검찰은 문제 문서 발급 경위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무고한 사람 간첩을 만들려고 증거 조작했다면, 형사적 조치와 검찰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
검찰은 유우성씨 재판 때 사실상 유씨 동생이 국정원에서 한 진술 외에는 이렇다 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은 유씨가 탈북자 명단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그 탈북자 명단엔 남한 사람 비율이 더 많았고, 문제의 명단은 탈북자 대학생 모임의 대표 자격으로 소지하던 장학금 신청서라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낸 항소이유서를 둘러싼 논란이다.
그런데 검찰이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겠다며, 최근 재판부에 낸 유씨의 ‘북한 출입경기록’(출입국기록)이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기록은 여러 정황을 놓고 보았을 때 조작 가능성이 의심된다. 중국 당국도 위조서류라고 밝혀 문서의 진위 여부조차 의심받고 있다.
6일 오후 3시 서울고등법원 404호 재판정에서는 유씨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재판 시작과 함께 윤성원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검사 쪽과 변호인 쪽이 팽팽하게 다투고 있습니다. 변호인 쪽은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검사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은 문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검찰이 제출한 기록을 증거로 채택할지 재판부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유씨 변호인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유씨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오간 기록이 담겨 있는 출입경기록은 원래 오류투성이여서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는데, 검찰이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오류 기록을 스스로 수정해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즉, 증거 조작이다.
함경북도 회령시에 거주한 유씨는 중국 국적의 재북 화교였기에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중국을 왕래했다.
이때 북한과 중국을 오간 기록이 출입경기록에 남게 되는데, 이 기록을 보면 유씨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수시로 보름 정도씩 중국을 오갔다. 유씨는 외가 쪽 친척이 중국에 살아 중국 방문이 잦았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지방정부의 출입국관리소가 관리하는 출입경기록에 오류가 원체 많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에 들어갈 때는 기록이 잘 누락되고, 중국으로 나올 때만 제대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기록물 관리 체계를 알 수 없어 정확한 원인은 파악되지 않지만, 중국 정부도 이 때문에 ‘출입경기록은 오류가 있으니 참고자료로만 쓰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날 재판정에서 공개된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에도 서류 말미에 중국어로 ‘주의: 데이터 수집, 전송 등 원인으로 위 출입경기록은 오류 혹 누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 자료는 참고자료로만 제공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국정원은 유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출입경기록을 유씨에게 보여줬다. 2006년 5월23일 오후 2시54분 중국 화룡(허룽)시 삼합 세관(일종의 출입국사무소)에서 북한 회령 세관으로 들어간 뒤, 27일 오전 10시24분 다시 중국으로 나온 기록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유씨도 인정하는 기록이다.
유우성씨 “2006년 5월 이후엔 북한 안 가”
유씨는 2004년 3월 탈북자 신고를 한 뒤 남한에서 지내오다, 2006년 5월23일 북으로 건너가 가족들을 사흘간 만나고 돌아온 일이 있다. 유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숨져 장례를 치르기 위해 건너간 것이었다.
이것은 이전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이미 조사받고,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국정원과 검찰은 이후에도 유씨가 계속 북한을 드나들며 간첩행위를 해왔다고 주장하는데, 유씨는 그 후 한번도 북한에 간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유씨의 출입경기록에는 2006년 5월27일 오전 11시16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오고, 2006년 6월10일 오후 3시17분 다시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기록이 붙어 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기록은 없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나온 기록만 있는 이상한 기록이다. 중국 출입국관리소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류다.
유씨는 최근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으면서 ‘전산 오류’라는 확인서를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올해 초 유씨를 신문하며 이 오류 상태의 출입경기록을 보여준 바 있다. 유씨는 ‘북한에 들어간 기록은 없고, 북한에서 나온 기록만 있어 출입경기록 자체가 오류’라고 주장했으나, 국정원은 ‘두만강 도강 등의 방식으로 몰래 북한에 들어간 뒤 중국으로 나와서 기록에 오류가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번에 제출한 출입경기록에는 오류투성이의 기록들이 전부 수정되어 있었다. 2006년 5월23일 북한에 들어가고, 27일 북한에서 나오고, 또 그날 북한으로 들어가서 2006년 6월10일 북한에서 나온 것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검찰이 제출한 기록은 화룡시 공안국 출입관리과에서 올해 9월26일 발급받은 것으로 돼 있었다.
이 기록만 보면 마치 유씨가 ‘2006년 5월27일 이후에는 북한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해왔던 기존 진술이 거짓인 것처럼 보인다.
반면 유씨 쪽이 올해 11월4일 중국 연변 공안국 출입국관리소에서 받아온 출입경기록에는 여전히 오류가 남아 있었다.
검찰 제출 기록에는 검찰이 유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되었다고 주장하는 시점인 2006년 이전의 출입경기록도 수정되어 있다.
유씨의 여권을 보면, 2002년 11월30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2년 12월18일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2003년 9월15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9월30일 북한으로 다시 돌아간 기록이 있다.
그런데 출입경기록에는 2002년 12월18일과 2003년 9월30일 북한으로 돌아간 기록이 없다. 역시 이 부분도 중국 당국의 기록 오류인데, 역시 북한으로 들어가는 기록만 누락되었다.
반면 검찰 제출 기록에는 북한과 중국의 드나듦이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2002년 11월30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9월15일 북한으로 돌아가고, 다시 2003년 12월15일 중국으로 들어왔다가 2003년 12월29일 북한에 들어간 것으로 출입경기록이 바뀌어 있다.
검찰 주장대로 유씨가 두만강을 도강해 북한에 들어가면서 기록이 누락된 것이라고 해도 2002~2003년에도 유씨가 북한을 그런 방식으로 드나들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유씨는 이때 북한 보위부에 의해 간첩이 되기 전이기 때문에 굳이 몰래 북한을 드나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씨뿐 아니라 유씨 친인척들의 출입경기록에도 비슷한 오류가 반복 기재된 것이 확인된다. 북한 입국기록에 오류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검찰 주장보다는 중국 출입경기록의 일관된 오류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검찰이 9월 화룡시 공안국에서 발급받아 온 출입경기록과 유씨 쪽이 지난달 발급받은 출입경기록의 내용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은 6일 재판에서 기록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중국 당국이 발급한 서류가 맞다”는 설명만 했다.
한국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를 살펴본 화룡시 공안국 관계자는 유씨 쪽의 확인 요청에 “우리가 발급한 기록이 아니다. 화룡시 공안국은 출입국기록을 발급할 권한도 없다. 위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중국 쪽 “우리 협조 받지 않았다…이상하다”
유씨를 변호하는 김용민 변호사는 “검찰이, 유씨가 중국과 북한을 수시로 드나들며 간첩활동을 한 것으로 몰아가려고, 중국 당국이 발급한 출입경기록을 조작해 재판부에 제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발급받은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공식 문서임을 증명하려고 문서 말미에 공증을 받아 왔으나, 중국 당국이 발행한 문서라면 공증 과정이 왜 필요한지도 의문일 뿐 아니라, 공증 양식도 중화인민공화국 공증법의 절차와 맞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났다.
한국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을 살펴본 화룡시 공증처 관계자는 “우리가 사용하는 공증 양식과 다르다. 찍힌 도장도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의 발급 경위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과 우리 정부가 1998년 체결한 형사사법공조조약을 보면, 우리 수사기관이 형사사건의 증거 수집을 위해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반드시 외교부 장관이 공조요청서를 중국에 보내도록 돼 있다.
검찰은 5일 재판부에 낸 의견서를 통해 “정식 절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중국 당국의 협조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입증하는 관련 문서도 추가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 주재 중국 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중국 정부의 협조를 받지 않았다. 유씨의 출입경기록이 어떻게 한국 재판부에 제출된 것인지 이상하다”고 밝혔다.
만약 검찰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형사 처벌 대상이다.
황필규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는 “검찰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를 조작했다면, 직권남용 무고죄 등의 책임을 묻는 형사적 조처와 검찰 차원의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에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제출하면서 기존 공소사실을 스스로 뒤집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유우성씨가 두만강을 도강해 몰래 북한에 들어가는 수법을 보였다고 주장해왔지만, 정작 검찰이 낸 출입경기록에는 국경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드나든 것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김용민 변호사는 “출입국 기록도 조작된 것이라 확신하지만, 검찰 스스로 기존 공소장 내용과 모순되는 증거를 제출해 애초 유씨에 대한 수사가 엉터리였음이 더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유우성씨는 이날 재판 뒤 <한겨레>와 만나 심경을 밝혔다. 유씨는 “왜 죄도 없는 사람을 계속 간첩으로 만들려고 증거까지 조작해 제출하는지 너무 괴롭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유씨는 고생 끝에 2011년 6월 탈북자 특채로 서울시에 들어가 복지정책과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해왔다.
그가 간첩으로 몰리자 서울시는 지난 3월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유씨는 국정원 수사 과정과 구치소 생활에서 받은 충격으로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유씨에게 입힌 피해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
국정원, 조작증거 의혹 해명도 거짓말국정원
"심양영사관 통해 문건 획득"...외교당국 "잘 모르는 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주도한 국정원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내놓은 해명이 거짓인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정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사태가 걷잡을수 없게 커지자 "위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외교당국 및 사정당국에 따르면, 중국 선양 주재 영사관에서 서울시 간첩 사건과 관련해 중국 화룡시 공안국으로부터 받은 공문에 대한 수신 기록은 단 한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당국 관계자는 "선양영사관에서 자료가 나갔는지 확인 중"이라며, "선양영사관에서 외교부 본부로 보고가 올라온 3개 문서 가운데 대검에서 요청한 자료는 화룡시로부터 팩스로 수령한 것이 맞다"고 밝혔다.
대검이 외교부와 선양영사관을 통해 받은 자료는 국정원 자료와 유씨 변호인 측이 제출한 증거자료 내용이 크게 엇갈려 확인차원에서 요청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24일 사실확인을 요청하고, 12월 6일 법원에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후 12월13일 또다시 같은 문서를 제출했다. 처음 문서의 팩스번호는 선양시로 추정되는 98번으로 시작하는 번호이지만, 뒤늦게 제출한 문서의 팩스번호는 화룡시에 해당하는 0433으로 시작해 당시에도 위조 논란이 일었다.
문제는 선양영사관의 팩스수신대장에는 수신기록이 한차례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팩스번호가 엉뚱하게 찍힌 것이 드러나자 누군가가 별도의 문서를 위조했을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이 법원에 제출해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위조'로 판명된 증거자료는 이밖에도 △화룡시 공안국의 '출입경(국)기록 조회 결과' △삼합변방검사창(세관)의 '유씨 출입경기록 정황설명서에 대한 회신' 등 두 가지가 더 있다.
이런 문서들은 국정원이 선양영사관을 통해 화룡시 공안국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선양영사관에는 이에 대한 문서수신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나머지 두 건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두 문서는 팩스본이 아닌 원본으로 법원에 제출됐다.
이에 따라 국정원 등이 비정상적인 중국 공문을 얻었거나, 증거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검이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뒤늦게 발표한 것도 사실상 위조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검이 사실확인을 위해 '외교부-선양영사관-화룡시' 라인을 통해 회신받은 공문도 비슷한 경로로 조작됐을 공산이 크다.
당시 선양영사관은 화룡시 공안국의 증거자료 발급에 대해 확인해 주는 공문을 보냈지만, 결국 공문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과 연관된 선양영사관 관계자가 거짓 공문을 만들어 서울 외교부에 전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러한 의혹을 밝히기 위해선 국정원과 선양 영사관에 대한 강도높은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법원에 증거를 제출하고 공소유지를 한 검찰도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특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steel@cbs.co.kr/warmheartedcr@cbs.co.kr
********************************************************************************************************
신경민 "간첩사건 1심 판사, 매우 수상한 판사"
"문제의 판사, 김용판 재판때도 무죄판결"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17일 중국 공문서 위조 파문과 관련, "지난 6일 김용판 무죄 판결을 내린 수상한 판사가 이 사건 1심에도 등장한다"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맡았던 1심 재판부를 정조준했다.
신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은 고문사실을 알 수 있었고, 알았는데도 조작과 고문에 눈을 감았다. 법원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수상한 판사는 김용판 재판에서 '경찰 17명이 일치된 진술을 한다'는 이유로 '용판무죄 은희유죄'의 다수결 판결을 내린 바 있다"고 김용판 무죄판결을 내린 당사자임을 강조한 뒤, "피해자 유모 씨와 그 여동생이 합심센터에서 조사받을 당시 수사관들으로부터 폭행·협박·가혹행위로 자백하라는 회유를 받았다는데도, 국정원 수사관들이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일치된 진술을 한다는 이유로, 판사는 피해자에 대한 고문이 없었다며,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식의 조작이라면 국정원은 이제 대공수사권에서 손을 떼고 국정원의 자료를 확인조차 안한 검찰은 국정원 필경사로 전업해야 한다"며, "검찰이 국정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상 검찰을 통한 국정원 수사와 공소유지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특검을 주장했다.
우원식 최고위원도 "중국 측이 '증거 조작범을 잡을 수 있도록 수사에 협조해 달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나"라며 "대한민국 정보기관과 사법기관이 중국 공문서 위조를 주도하거나, 최소한 연루되어 중국의 수사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소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대선 직후인 지난 1월 검찰 구속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대선기간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선거 공정성 훼손 의혹, 경찰의 수사 왜곡·축소 논란이 한참 불거지던 시기의 국정원 작품"이라며, "국정원이 세간의 눈을 흐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초기부터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딱맞아 떨어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보고, 언론을 얕잡아 보고, 야당이 물러터져 보였으면 어렵게 이 땅에 온 한 사람의 일생을 간첩이란 누명으로 짓밟는 짓을 벌이겠나"라며, "사법기관의 행태를 보니 국정원이든 검찰이든 이 정도면 국민의 통제력을 벗어나고 바로잡을 의지도 자격도 없다. 국회가 나서서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