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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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가 안된다"던 청와대가 만든 '극비 리스트'
[판결문으로 본 박근혜 국정농단 3]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 ①
최근 일본은 '표현의 부자유, 그 후'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시켰다. 성노예로 끌고 간 위안부는 없다는 아베 정부의 입장에 배치된다며 보조금 삭감 등으로 협박한 모양새다.
이런 일본의 조치는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아베 정부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광범위하고 집요한 것이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문화예술인은 모두 8931명이었고 단체는 342곳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김기춘 실장과 조윤선, 김상률 수석, 김소영 비서관과 신동철, 정관주 비서관, 김종덕 문체부장관 등)의 판결문을 기준으로 사건의 전모를 따라가 본다.
박근혜와 김기춘 - 정무수석실과 교문수석실 – 문체부 – 산하기관
이 사건의 주연과 조연 등 등장인물부터 살펴보자.
청와대쪽 사람들이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2013.8~2015.2)이다. 이 사건의 키맨은 김기춘이고, 박근혜는 김기춘의 보고를 받아 승인한다.
다음으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사람들이다. 교문수석실은 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계획을 수립하고 문체부를 통해 블랙리스트 적용을 관리한 곳이다. 모철민 교문수석(2013.3~2014.6)과 그 후임인 김상률 교문수석(2014.11~2016.6)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송광용 교문수석(2014.6~2014.9)이 짧지만 재임했다.
그 실무책임자 역할은 앞의 세 교문수석의 재임 기간 내내 비서관이었던 김소영 문화체육비서관(2013.10~2016.9)이 맡았다. 이들의 지시를 받아 김낙중 문체비서관실 선임행정관(나중에 주 LA문화원장이 됨), 용호성 선임행정관(나중에 주 런던문화원장이 됨), 신종필 행정관도 이 범행에 가담했다.
다음으로 청와대 정무수석실 사람들이다. 정무수석실에서도 특히 국민소통비서관실이 움직였다. 이들은 실제 블랙리스트로 지목할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작품을 선별하는 일을 했다. 무서운 검열자였다. 우선 박준우 정무수석과 조윤선 정무수석(2014.6~2015.5)과 현기환 정무수석이다. 다음으로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2013.3~2014.6)과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2014.10~2016.2)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문화체육관광부쪽 사람들이다. 우선 유진룡 문체부장관(2013.3~2014.7)과 김종덕 문체부장관(2014.8~2016.9)이 있다. 유 장관은 나름대로 소극적으로 지시를 이행하다가 경질된다. 다음으로 조현재 문체부 제1차관(2013.3~2014.7)과 김희범 1차관(2014.7~2015.2)이 있다. 또 송수근 문체부 기획조정실장(2014.10~2016.12)도 가담했다.
그 외에 문체부 실무 과장들과 사무관들이 있다. 또 문체부의 지시를 하달받았던 예술위원회나 영화진흥위원회, 출판문화진흥위원회 등의 임직원들도 있다. 이들의 명단은 다음 편에서 따로 소개하겠다.
김기춘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와 연극 <개구리>는 용서 안 된다"
▲ 2017년 6월 9일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환자용 수의를 입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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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지 14일째인 2013년 8월 21일경. 김기춘 비서실장이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이하 '실수비')에서 이런 취지로 말한다.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다시 20일도 지나지 않은 9월 9일, 김기춘 실장은 다시 실수비 회의에서 이렇게 말하며 구체적으로 배제해야 할 작품을 지목한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메가박스에서 상영되는 것은 종북세력이 의도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와 펀드 제공자는 용서가 안 된다.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연극 <개구리>도 용서가 안 된다.
김기춘 실장이 지목한 <천안함 프로젝트>는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이명박 정부 때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폭침'이라고 발표한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연극 <개구리>는 그리스 아리스토파네스의 원작을 바탕으로 연출가 박근형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박정희와 박근혜를 풍자하는 내용으로 해석되는 작품이다.
국정원 문건을 문체부에 하달한 김기춘 실장
김기춘 실장의 이런 사고는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정보보고 문건이 뒷받침했다. 그즈음 국정원은 '시·도 문화재단의 좌편향·일탈 행태 시정필요'라는 제목의 문건을 대통령과 비서실장에게 보고한다. 이 문건에 담긴 주요 내용은 이렇다.
△ 광역지자체 산하 12개 문화재단들이 이념 편향적 사업 치중.... △ 감사원·문체부에서 국비지원 사업 감사 등을 통해 문화재단 운영 실태를 면밀 점검, 보조금 삭감·탈법 행위 의법 조치 등 정상화를 견인
김기춘 실장은 이 문건을 2013년 9월경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에게 전달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한다. 모철민 수석은 이 문건을 용호성 행정관을 통해 문체부에 전달한다.
그러자 문체부와 예술위는 11월 11일부터 12월 13일까지 전국 16개 기관(시·도 4개, 문화재단 12개)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다. 그 결과는 예술위가 2014년 2월 17일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실태조사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문체부를 통해 청와대 교문수석실에 보고한다.
김기춘 실장 등의 재판에 언급된 또 다른 국정원 작성문건에는 '좌성향 세력의 세 확산 기도 등 문화관련 이념문제'도 있었다. 이 문건은 2013년 10월경에 청와대 교문수석실에 전달되고 다시 문체부에 하달된다. 이 문건의 주요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다.
지난 정부 이후 정부지원 축소 및 스크린 강화로 좌성향 세력이 많이 위축되기는 했으나 부분적으로 세 확신 기도가 감지된다. 국립단체는 필터링을 위한 공모제 확대 및 심사기준 강화가 필요하다.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좌성향 교수를 보직교수로 임명하는 것에 유의하고, 연구실적이 부진한 좌성향 교수의 퇴출 유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국가정보원 역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연 또는 조연이었다.
박근혜 "좌편향 문화예술계, 문제가 많다"
박근혜 역시 이미 '좌파의 문화계 장악론'에 몰두하여 균형 잡힌 시선을 잃은 상태였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2013년 9월 30일에 열리는데,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한다.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
이처럼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풍자하거나 정부비판 여론에 일조하는 문화예술인들을 배척하는 것으로 청와대의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었다. 2013년 연말과 2014년 1월이 되면서 더욱 구체적인 지시가 떨어진다.
김기춘 실장은 2013년 12월 18일경 실수비 회의에서 이렇게 지시한다.
반국가적·반체제적 단체에 대한 영향력 없는 대책이 문제이다. 한편에는 지원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제재를 하고 있다. 문화계 권력을 좌파가 잡고 있다. 영화 <변호인>과 <천안함 프로젝트>가 그렇다. 하나하나 잡아 나가자. 모두 함께 고민하고 분발하라.
마침 2013년 12월 18일에 개봉을 한 영화 <변호인>(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이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흥행에 성공하고 있었다. 그런 탓에 김기춘 실장은 12월 18일경 모철민 교문수석에게 영화 <변호인>을 배급한 CJ에 대한 제재방안을 찾아보라고도 지시한다. 모철민 수석은 이를 김소영 문체비서관에게 전달하며 문체부와 영화진흥위(영진위)가 협의해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김 실장은 2013년 12월 20일과 2014년 1월 3일 실수비에서도 연이어 이렇게 지시한다.
좌파 성향의 단체들에게 현 정부가 지원하는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마련하라.(2013.12.20)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복지부, 안행부 산하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그 상황을 보고하라. 반드시 실사가 필요하고 그 내용들은 중간보고하라.(2014.1.3)
김기춘 "문예기금 지원과 우수도서 선정 바로 잡아라"
▲ 2017년 1월 25일 모철민 주프랑스 대사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소환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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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4년 2월 어느 날 김기춘 실장이 모철민 교문수석에게 국정원이 작성한 정보보고 문건을 또 전달한다. 이 문건은 2014년 1월 발표된 예술위의 '2014년도 문예진흥기금 공모사업 지원심의 결과'에 대한 국정원의 분석자료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 예술위는 2014년 상반기 문예진흥기금 지원대상을 선정하였는데 지원대상에 좌파단체인 민예총 산하 '민족미학연', 이념 편향성 연극으로 물의를 빚은 극단 '혜화동1번지',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좌성향 '작가회의' 소속으로 정부를 비판해온 고*철, 박*구, 신*목 등이 포함됨 △ 지원 대상 선정을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에 맡긴 데다, 심의위원도 대중적 인기·지명도를 우선 고려하는 관행에 따라 좌성향 인물들이 포함되기 때문임.
이 문건을 김기춘 실장이 모철민 교문수석에게 주면서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데, 이 지시는 다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문건과 함께 하달된다. 한편 비슷한 때인 2014년 2월 18일경 문체부의 '우수도서' 선정에도 문제가 있으니 개선하라고 김기춘 실장이 실수비에서 지시한다. 이 지시도 교문수석실을 통해 문체부에 하달된다.
김기춘 실장이 '우수도서'에 대해 언급하게 된 배경은, 그즈음 보수우파의 인터넷매체였던 <미래한국>에 '반미, 반대한민국 내용 서적들,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돼 대량 유통'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미래한국>이 문제 삼은 도서는 7종이었는데,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체게바라를 다룬 동화책 <체게바라와 랄랄라 라틴아메리카>(작가 최광렬),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 후 고조된 이슬람 혐오에 대한 반대를 다룬 동화책 <나는 빈라덴이 아니에요!>(작가 베르나르 샹바즈) 등이다.
이런 지시들을 받은 문체부는 즉각 대책을 마련해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한다. <미래한국>의 보도가 있은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2014년 2월 21일, 유진룡 문체부장관이 김기춘 실장의 집무실을 직접 찾아가 '이념 편향 논란의 도서 또는 사업 선정 관련 대책방안'을 보고한다.
우수도서 선정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된 도서 선정 경위를 특별감사하고 심사위원 구성시 이념 편향적 인물을 배제하겠다고 보고한다. 문예기금 지원대상 선정과 관련해서도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위촉방식을 고치고 선정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였다. 이 보고에 대해 김기춘 실장은 '잘하라'고 반응하였다.
청와대 "후보자 105명 중 19명은 아웃시켜라"
이 보고를 마친 후 문체부는 후속조치를 취한다. 2014년 2월 28일에 문체부의 이*재 사무관은 '우수도서 선정보급 사업 개선방향 보고'라는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 교문수석실에 보낸다.
여기에는 첫째, 우수도서 선정 사업을 출판문화진흥원으로 통합하고, 둘째, 선정시스템을 도서 내용을 중심으로 심사하는 '심사위원회'와 이념 편향 등 결격사유를 중심으로 심사하는 '선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셋째, 이념 편향 등 결격사유를 중심으로 심사하여 우수도서 최종(안)을 선정하되 비공식적으로 문체부 등 관계기관이 최종안을 재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한다는 구체적 방안이 담겼다.
실제 이 방안대로 2014년 4월에 우수도서 명칭은 '세종도서'로, 사업주관은 출판진흥원으로, 그리고 심사위원회에서 두 차례 검토한 후 선정위원회가 최종 3차 심사를 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와 함께 문체부 예술정책과의 조*래 과장과 오*숙 사무관이 '문예기금 지원사업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 교문수석실에 보낸다. 여기에는 국정원 문건에서 지목된 논란이 된 사업들이 선정된 경위와 함께 2014년 (하반기) 책임심의위원 선정계획과 향후 대책이 담겼다. 문체부가 마련한 구체적 향후 대책으로는 문체부 사전협의 의무화, 특정 성향이나 '반정부행위 관여자' 배제 등 심의위원 기준 강화였다.
특히 문체부는 3월경에 결정할 것이 예정되어 있던 예술위의 심사분야별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105명의 명단을 첨부해 청와대에 보낸다.
이 자료들은 김소영 문체비서관을 통해 모철민 교문수석에게 보고되고 다시 김기춘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된다. 다시 모철민 수석의 지시에 따라 김소영 비서관은 문체부에서 보내온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105명의 명단을 정무수석실의 신동철 소통비서관에 보낸다. 그리고는 배제대상자를 선별해달라고 한다.
이에 따라 정무수석실 신동철 비서관은 문학분야 1순위 후보자로 추천된 황*산, 방*호, 신*룡, 김*인 등을 비롯해 시각예술분야, 연극분야, 무용분야 등 분야별 후보자 19명을 책임심의위원으로 위촉해서는 안되는 인물이라고 지목해 교문수석실에 회신한다. 신 비서관이 19명을 지목한 이유는 이들이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 촛불시위 참여, 노무현시민학교 강좌, 노무현스토리 제작비 모금, 국정원 국기문란 비판 성명 등에 이들이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윗선의 뜻이니 19명은 위촉하지 말아달라"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예술위 문예기금 지원대상 선정 책임심의위원 블랙리스트는 다시 김소영 교문수석실 비서관과 용호성 선임행정관을 거쳐 문체부 예술정책과의 오*숙 사무관에게 전달된다. 그 다음에는 오*숙 사무관이 예술위 이*신 예술진흥본부장과 장*석 창작지원부장에게 이 19명의 명단을 넘겨 청와대의 지시대로 이행할 것을 전달한다.
이 당시 책임심의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은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심의 운영규정'에 정해져 있었다. 그에 따르면 예술위 위원장이 분야별 또는 사업별 후보자를 3배수 선정하고 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의 의결을 거쳐 위촉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술위 이*신 본부장과 장*석 부장은 위원장과 위원들에게 이렇게 요청한다.
윗선의 뜻이니 하달받은 후보자 19명이 책임심의위원으로 위촉되지 않도록 해달라.
그 결과 2014년 3월에 예술위원회 회의에서 의결된 책임심의위원 명단에는 청와대가 하달한 19명은 아무도 포함되지 않았다. 청와대의 의도대로 블랙리스트가 적용된 것이다.
블랙리스트 마스터플랜을 위해 구성된 민간단체보조금TF
김기춘 실장은 더 치밀한 계획과 추진력을 원했다. 그래서 2014년 3월 14일경 김기춘 실장은 박준우 정무수석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수석실별로 나눠져있는 업무 관련 비서관들을 모아서 TF를 만들어라.
이 지시에 따라 청와대의 국민소통비서관, 행정자치비서관, 사회안전비서관(이상 정무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경제수석실), 교육비서관, 문화체육비서관(이상 교문수석실), 보건복지비서관, 고용노동비서관(이상 고용복지수석실) 등이 참여하고 박준우 정무수석이 주재하는 '민간단체보조금 TF'가 구성된다.
'민간단체보조금 TF'는 2014년 4월 4일부터 5월 하순까지 운영되는데, 이곳에서는 5월 말 일종의 블랙리스트 사건의 초기 마스터플랜에 해당하는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완성한다. 그리고 박준우 수석과 신동철 소통비서관은 이 보고서를 5월 말에 김기춘 실장과 박근혜에게 보고한다.
블랙리스트 1차 지침서, 청와대 작성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 2017년 7월 3일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는데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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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에는 "△ 3000여 개의 문제단체와 8000여 명의 좌편향 인사(문재인 지지, 구 민노당지지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 야당 후보자 지지선언이나 정권 반대운동에 참여하거나 좌파성향의 개인·단체 등에게 지원된 정부예산" 139억 원을 "문제예산"으로 규정한 뒤 이를 축소하고, △ 노무현 지지선언과 문재인 후보 광고 촬영을 한 바 있는 "오*윤 감독 등 총 26명의 좌편향 인사"를 "공모사업을 실시하는 주요 부처 및 산하기관의 심사위원에서 배제 조치"하고, "△ 문제단체에 대한 지원을 관행으로 인식하며 개선의지가 부족한 (유진룡) 문체부 장관·차관의 경질과 산하기관 통폐합 등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주요 부처 공모사업 심사위원 조치 현황 일람표가 첨부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지원배제나 심사위원 배제 사유 등이 기재되어 있다. 청와대가 꼽은 배제사유는 다음과 같다.
'문재인 지지선언', '노사모 및 문재인지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 '밀양 희망버스',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 방식 규탄 시국선언', '용산참사 해결 시국선언', '미국산쇠고기 협정파기 촉구선언', '남영동 1985 배급사', '영화 26년 초반부 애니메이션 제작' 등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문건은 그 후 블랙리스트 사건의 1차 지침서처럼 활용된다. 예를 들어, 2014년 6월 경 박준우 정무수석이 퇴임을 앞두고 후임자인 조윤선을 만난다. 그는 김기춘 실장의 지시로 만들었던 '민간단체보조금 TF' 활동과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을 조윤선에게 설명하며 업무를 인계한다. 또 정무수석실의 신동철 소통비서관 역시 신임 조윤선 정무수석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문재인 후보지지 등을 이유로 보조금 지원을 배제하고, 공모사업 심의위원이나 정부위원회 위원 명단을 확인하여 좌파인사를 배제하고 있다.
신 비서관도 블랙리스트 업무를 담당하는 소통비서관에서 정무비서관으로 옮기고 난 후 후임자인 정관주 소통비서관에게 인계한 문건이 바로 이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이었다.
김소영 비서관 "극비리에 관리하고 이들에게 자금 지원하지 말라"
한편 신동철 비서관은 이 TF를 운영하며 보고서를 완성하기에 앞서 이미 약 80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신 비서관은 2013년부터 2014년 초까지 2년간 문체부와 문체부 산하기관(예술위 등)이 정부 예산이나 기금 등을 지원한 개인이나 단체를 조사한다. 그중에서 고은 시인이나 극단 그린피그 등 야당 후보자에 대한 지지선언이나 정권반대운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개인이나 단체 등 80명의 명단을 선별했다. 그는 이 명단을 교문수석실의 김소영 비서관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한다.
문체부가 이런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원되지 않도록 명단을 문체부에 전달하라.
그 후 이 명단은 모철민 교문수석에게 보고된 다음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김소영 비서관은 2014년 5월 초순에 조현재 1차관을 청와대로 오라고 한다. 김 비서관은 신동철 비서관이 만든 명단을 조 차관에게 전달하며 이렇게 말한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저항과 비판이 굉장히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고 윗선의 지시이다. 이 명단은 정무에서 만든 것인데 극비리에 관리하면서 이들에게 정부의 자금 지원이 가지 않게 하라.
조 차관은 이를 유진룡 장관에게 보고한다. 그 뒤 문체부에서는 김소영 비서관을 통해 받은 80여 명의 명단을 기본으로 하여 블랙리스트를 계속 업데이트한다. 문체부는 청와대 문체비서관실 행정관들이 추가로 하달한 배제 대상자 명단이나 문체부 스스로 국정원 등에 지원배제 여부를 검토의뢰하여 받은 명단을 추가하였다.
김기춘 "문체부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있어요!"
▲ 2017년 1월 13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관련 혐의로 구속수감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위해 출석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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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에서 지적한 사항처럼, 유진룡 문체부장관은 7월에 경질된다. 유 장관이 2월에 김기춘 실장의 지시에 따라 우수도서 선정이나 문예기금 지원심사 방식을 변경하기는 했으나 적극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경질이었다.
2014년 8월에 청와대는 그의 후임으로 김종덕 장관을 새 문체부 장관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두 달쯤 후인 10월에 김기춘 실장은 김종덕 문체부장관을 불러 이렇게 말하며 질책한다.
청와대에서 지시한 사항들이 문체부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김 장관은 마침 10월 초에 임명된 송수근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에게 청와대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시했던 사업들의 현황을 파악해 비서실장에게 보고할 문건을 만들라고 지시한다(송 실장은 청와대의 블랙리스트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1급 문체부 간부들이 대거 경질되면서 기조실장에 임명된 인물로 그는 나중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해 문체부 1차관에까지 임명된다).
블랙리스트 2차 지침서, 문체부 작성 '건전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
송수근 실장은 문체부의 각 국장과 과장들을 통해 청와대의 그동안의 지시사항을 파악한다. 그러고는 '건전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어 김종덕 장관에게 보고한다. 김종덕 장관은 송 실장이 만든 보고서 전문과 요약 보고서인 '건전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및 지원방안' 보고서를 가지고 2014년 10월 21일에 김기춘 실장 공관을 직접 찾아가 대면 보고한다. 그러자 김기춘 실장이 기뻐하면서 그대로 추진하라고 지시한다.
그 후 송수근 실장은 문체부에 설치되는 '건전 콘텐츠 활성화 TF'의 단장이 된다. 송수근 실장은 매주 1회씩 개최하는 TF 회의를 통해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된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고 이를 김종덕 장관과 청와대 교문수석실에 계속 보고한다.
송수근 실장은 '문예기금' 관련 문화예술분야와 '세종도서' 관련 미디어 분야, 영화진흥위 관련 콘텐츠 분야에 대한 종합 대책을 담았다. 이 종합대책은 실제 그대로 시행된다. 그 결과 2015년도와 2016년도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대상자 선정은 블랙리스트에 따라 결정된다. 출판진흥원에서 진행한 2014년 세종도서 선정과 2015년 세종도서 선정 역시 블랙리스트가 반영되어 결정된다.
▲ 2017년 1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송수근 장관 직무대행 1차관(왼쪽) 등 간부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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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체적 진행과정은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 ②'에서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문제 삼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삭감과 예술영화관에 대한 블랙리스트 적용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영화 <변호인> 등을 배급한 것으로 눈밖에 났던 CJ그룹에 대한 청와대의 괴롭힘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모 ②'에서는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은 문체부 간부들은 2014년 가을에 일시에 경질해버리고 김종덕 장관과 송수근 실장 체제로 개편한 것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 내역에 대해서도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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