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국민연금이 당신을 지켜주려면

道雨 2011. 5. 4. 16:49

 

 

 

     국민연금이 당신을 지켜주려면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직장 상사에게 호되게 당했다. 당장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뛰쳐나가고 싶다.

책상 서랍 속의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는 순간, 문득 노후가 불안하다.

여기서 계속 버티면, 내게는 무엇이 남게 될까?

 

그리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웹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현재 소득을 계속 유지하면서 정년까지만 버티면 만 65살 이후 최소 생활비는 나온단다.

또 한번 참는다.

서성대다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직장인의 흔한 일상이다.

국민연금은 이렇게 우리 국민 곁으로 왔다. ‘노후 생활비’라는 간판을 걸고.

 

그런데 그 직장 상사는 왜 내게 모진 말을 던졌을까?

틀림없이 실적, 그것도 이번 분기나 이번달 실적 때문이다. 분명 사장님에게 크게 당하고 왔을 것이다. 사장님은 납품 대기업의 젊은 대리에게 쓴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그 대리 위에는 다시 부장과 임원과, 실적 나쁘면 바로 쫓겨날 형편인 사장이 있다.

모두가 쫓기는 게임, 그 마지막에는 누가 있을까?

 

그 끝에는 ‘어떻게든 비용을 더 줄이고 매출을 늘려라’라고 호통치는 ‘주주’가 있다.

국민연금은 그 ‘주주’의 자리에 있다. 그것도 거대한 주주다. 삼성전자의 5%, 현대자동차의 5.95%, 포스코의 5.43%를 보유하고 있다.

이 정도면, 투자자로서 당장 배당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기업이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 미래 생활비를 맡아 관리하는 기관이 동시에 나의 현재를 압박할 수 있는 모양새다.

국민연금이 단기 수익률을 높이는 데만 급급하면, 정작 우리 삶의 안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좀더 나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집속탄’은 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지역에 수많은 불발탄으로 남아, 민간인을 살상하고 장애인을 양산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제사회의 금지 요구가 거세다.

한국에서는 한화와 풍산이 집속탄을 생산한다는 지목을 받고 있다. 둘 다 상장기업이다. 국민연금은 이 두 기업의 지분을 각각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당신의 노후 자금 일부는, 당신의 가치관과는 전혀 상관없이, 인명살상용 폭탄 제조기업에 투자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다. 연금은 담배회사에도 공해산업에도 투자되어 있다.

우리는 미래 생활비를 마련한다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수명을 단축하는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역사가 오랜 유럽 연기금들은 이미 ‘사회책임투자’라는 답을 제시하고 있다.

장기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띤 연기금이 투자할 때는 기업의 지배구조, 환경, 사회를 고려해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대기업 경영에 개입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재계의 반발이 나왔다.

단견이다.

투명경영, 사회책임경영을 추구하는 경영자라면 오히려 환영해야 옳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환영한다’고 답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문제제기는 좋은 첫걸음이다.

그러나 자칫 기업한테 단기 이윤을 극대화하라는 압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경영 개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사회책임경영과 기업가정신을 함께 살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 국책사업에 연금이 사용될 위험이 있다지적도 있다.

정당한 문제제기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산운용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국민연금의 자산운용 조직을 별도 법인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주목된다.

 

여기서 결국 독립성과 사회책임성을 동시에 구현해야 한다.

그러려면 금융전문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금 가입자를 대표하는 사회 이해관계자가 고르게 결정권을 갖는 슬기로운 지배구조가 필요하다.

 

당신의 미래를 지키겠다는 국민연금이, 당신의 현재를 파괴하는 투자를 한다면, 그건 코미디다. 빨리 끝내야 하는 슬픈 코미디다.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 timelas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