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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군 힘 빌릴 수밖에”…갑오개혁 문 연 ‘일본당’의 선택

길윤형의 조선의 갈림길 _11“외국군 힘 빌릴 수밖에”…갑오개혁 문 연 ‘일본당’의 선택   * 청일전쟁이 시작될 무렵인 1894년 6월 초 오토리 게이스케(1833~1911) 주조선 일본공사는 일본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귀임 명령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서울에 입성한 직후인 11일엔 청·일 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일본이 군대를 증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본국 정부가 청과 개전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엔 조선 정부를 윽박지르며 개전의 명분을 찾으려 애썼다. 일본국립국회도서관 제공   일본군이 조선 정부의 저항을 꺾고 서울에 입성한 지 열흘이 지난 1894년 6월20일, 한 남자가 남산 기슭에 자리한 일본 공사관의 문을 두드렸다.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민영준이 잠시 초대 주일공..

리차드 위트컴 장군과 한묘숙 여사

리차드 위트컴 장군과 한묘숙 여사   리차드 위트컴 장군(Richard S. Whitcomb)과 그의 부인 한묘숙 여사에 대한 이야기다. ​캔자스주 토피카에서 태어났고, 와이오밍 대학교 ROTC 출신으로, 육군 소위에 임관해 1차대전에 참가했다. 2차대전 당시 소령으로 아이슬란드에 있다가, 영국, 프랑스에서 복무했다. 6.25 전쟁 당시 준장이였으며, 제2군수사령관으로 1953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미지출처:조선일보​​1953년 11월 27일. 부산 중구 영주동 판자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였지만,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됐고, 언덕을 내려와 부산역까지 화마가 내려왔다. 일명 부산역전 대화재로 인해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6천여 세대 무려 3만여 명의 피..

130년 전 ‘농민전쟁’의 의미를 다시 새긴다

130년 전 ‘농민전쟁’의 의미를 다시 새긴다   내일, 5월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1894년의 대대적인 농민항쟁을 기리는 기념식을 비로소 5년 전부터 정부 주관으로 거행해오고 있다. 19세기 들어 조선은 역사적 한계에 다다랐고, 백성들은 가혹한 탐학으로 연명하기조차 어려웠다. 내내 혼란이 이어졌지만, 지배층은 이를 수습하고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급기야 전국적으로 수많은 고을의 농민들은 민란이라 일컬어진 항쟁을 벌이다가, 마침내 1894년에 대대적인 반정부 봉기에 나선 것이다.이른바 ‘농민전쟁’이며, 중세 봉건사회 해체를 추동하는 역사변혁 운동이었다. 또 이 농민전쟁은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사에 영향을 미친 일대 사변이었다. 그동안 학계의 연구 성과가 미흡한 상태에서, 이 농민봉기를..

4·29의거와 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 만남

4·29의거와 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 만남         * 1946년 7월6일 서울 효창원에서 열린 삼의사 장례식. 매헌윤봉길전집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는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삼의사의 묘가 있다.이들은 고향도 나이도 다르고, 서로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나란히 누워 있게 되었을까. 모든 일은 이봉창으로부터 시작되었다.서울 출신인 이봉창은 일본에 건너가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일본인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했고, 한국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그는 일본을 떠나 중국 상하이로 갔고, 임시정부의 김구를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도쿄로 가서 일왕을 죽일 수 있다며 이 일을 맡겨달라고 했다.김구는 그를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키고, 수류탄 두개를 구하여 넘겨주었다.이봉창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

조선은 불과 ‘30년’ 만에 망했다, 쇠말뚝 때문이 아니다

조선은 불과 ‘30년’ 만에 망했다, 쇠말뚝 때문이 아니다 길윤형의 조선의 갈림길 _01 “혹시 내가 행복해 보인다면, (정말)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훌륭한, 훌륭한 회담이었습니다.” 그날 미국 대통령의 여름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엔 부드러운 여름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난 조촐한 오솔길을 따라 한·미·일 세 나라의 지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2023년 8월18일 오후 3시14분, 한국 시각으로는 이튿날 새벽 5시14분이었다. 가운데 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느린 발걸음으로 연단에 올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기 위해 역사적 장소에서 만났다”면서 “한·미·일 파트너십의 새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 상황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 상황 진주성은 말 그대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다. 10만 명이나 되는 왜적이 진주성을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었고, 명군도 조선군도 도와주지 않았다. 홀로 싸워야 하는 호남 의병들. 어두운 그림자가 진주성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러면 1593년 6월 21일부터 6월 29일까지 9일간의 싸움을 살펴보자. 6월 21일 왜군 선봉대 기병 200명이 척후활동을 시작했다. 척후병은 마현 봉우리 위에서 활동하더니, 조금 뒤에 10여만 명의 왜군이 성을 세 겹으로 포위했다. 그런데 왜군은 탄알 한 발 쏘지 않고 위세를 보인 뒤에 물러갔다. 6월 22일 왜군의 첫 공격이 시작됐다. 아침 10시부터 왜군 10만 명이 일제히 밀려왔다. 개경원 산 중턱에 진을 친 가토가 이끄는 1진과 향교 앞길에 ..

퇴계 이황 선생 자찬 묘지명 : 退溪自銘(퇴계자명) / 퇴계자찬묘지명

退溪自銘(퇴계자명) / 퇴계자찬묘지명 退溪自銘(퇴계자명)/퇴계자찬묘지명 ​ 生而大癡 壯而多疾(생이대치 장이다질) ​ 中何嗜學 晩何叨爵(중하기학 만하도작) ​ 學求猶邈 爵辭愈嬰(학구유막 작사유영) ​ 進行之跲 退藏之貞(진행지겁 퇴장지정) ​ 深慙國恩 亶畏聖言(심참국은 단외성언) ​ 有山嶷嶷 有水源源(유산억억 유수원원) ​ 婆娑初服 脫略衆訕(파사초복 탈약중산) ​ 我思古人 實獲我心(아사고인 실획아심) ​ 寧知來世 不獲今兮(영지래세 부획금혜) ​ 憂中有樂 樂中有憂(우중유락 락중유우) ​ 乘化歸盡 復何求兮(승화귀진 복하구혜) ​ ​ ​ 나는 태어나서는 매우 어리석었고, 크면서 병도 많았네 ​ 중년에는 어쩌다 학문을 즐겨 했는데, 만년에는 어찌 벼슬을 받았던고 ​ 학문은 구할수록 아득하고, 벼슬은 사양할수록 몸에..

오늘(11월 30일)의 역사 인물 : 충정공 민영환

* 아래의 글은 '나무위키'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 역사적으로 볼 때, 1905년 11월 30일은, 을사늑약(1905년 11월 17일 체결됨)에 반대한 민영환(당시 고종의 시종무관)이 자결한 날입니다. 충정공 민영환 1. 개요 조선 말기의 관료. 시호 충정(忠正)을 따서 충정공(忠正公) 또는 민충정공(閔忠正公)으로도 많이 불린다. 고종의 어머니 여흥부대부인의 남동생 민겸호의 장남이자 민겸호의 형 민태호의 양자이다. 대한제국 성립 후 육군부장(현재의 중장에 상당)의 지위에 올랐으나 본래는 과거에 급제해 관료가 된 문신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자결함으로써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2. 가계 민영환의 가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흥 민씨 척족으로서 몇몇 자료들에 그의 가족 관계를 설명하는..

당포해전의 경과와 승리 요인

당포해전의 경과와 승리 요인 [이봉수 칼럼] 1592년 5월 30일(이하 음력)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함대는,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후, 모자랑포(사천군 용현면 주문리)에서 1박 하고, 사량(통영시 사량면 진촌리)으로 향하였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왼쪽 어깨에 적탄을 맞고 큰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6월 2일 오전 8시경 사량 해상에서 휴식 중이던 이순신 함대는, 적선이 당포(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선창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순신은 바로 출발하여 10시경 당포 앞바다에 도착했다. ​ 당시 당포에 머물고 있던 적병은 약 300 명이었다. 이들은 당포성 안에서 노략질을 하며 민가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당포 선창에는 21척의 적선이 정박하고 있었으며, 이순신함대가 접근하자, 성 밖..

그리스 지배를 위한 패권 다툼,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 지배를 위한 패권 다툼, 펠로폰네소스 전쟁 * 발생 : 기원전 431년 * 종결 : 기원전 404년 목차 그리스 제국을 꿈꾼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동맹, 드디어 반기를 들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작-아르키다모스 전쟁(기원전 431~기원전 421년) 시칠리아에서 다시 맞서다 아이고스포타미 전투로 막을 내리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차이 그리스 제국을 꿈꾼 아테네 페르시아는 비록 페르시아 전쟁에서 패했지만, 여전히 그리스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탓에 페르시아가 다시 쳐들어올까 두려워하던 소아시아(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흑해, 에게 해, 지중해에 둘러싸인 반도)의 폴리스들과 에게 해의 섬에 있는 폴리스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동맹을 맺었다. 기원전 478년에 결성된 ..

매국노가 낳은 애국자 :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들지 않았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들지 않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6일 방송된 '매국노가 낳은 애국자'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최영준, 브라운아이드걸스 제아, 가수 라이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한국에 보내달라는 일본 과학자 때는 1950년 1월.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한 수용소야. 이 수용소가 어떤 곳..

같은 시대 다른 삶 : 신채호 & 최남선, 마틴 루터 킹 & 말콤 X

같은 시대 다른 삶을 살다 간 사람들… 신채호 & 최남선…마틴 루터 킹 & 말콤 X 역사에 나타난 인물 중 참 대조적인 인물이 많다. 신채호와 최남선… 이들은 신숙주와 최영의 후손이다. 신숙주는 세종 때 성삼문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세조의 각별한 지우를 얻어 병조판서로 지냈지만 변절자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아 있다. 난세가 부른 영웅 최영장군은 고려 말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공민왕을 시해하려던 흥왕사의 난, 최유의 모반 등을 평정하기도 하고, 요동 정벌에 나섰으나 이성계 일파의 위화도회군으로 참수를 당한 고려의 충신이다. 충신과 역사는 시대가 만드는 것일까? 이들의 후손 신채호와 최남선은 반대의 삶을 살다 떠났다. 같은 시대 다른 삶은 살다 간 사람은 ..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이복남 장군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이복남 장군 이복남(李福男, 1555년[1] ~ 1597년 9월 26일(음력 8월 16일)[2])은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 군인이며, 본관은 우계(羽溪)로 자(字)는 수보(綏甫),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무과 급제후 선전관에 초임된 뒤, 절충장군 전라도병마절도사(折衝將軍 全羅道兵馬節度使)에 이르렀다. 1588년(선조 21년) 무과 식년시(武科 式年試)에 병과로 급제, 선전관, 별장을 거쳐 1592년(선조 25) 나주 판관(羅州判官)이 되고, 그해 7월 나주판관 재직 중 임진왜란(壬辰倭亂)이 터지자, 겸 도복병장에 임명되어 전주 웅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승전의 공으로 그해 12월 당상관에 승진했다. 1593년(선조 26) 전라조방장, 전라방어사(全羅防禦使)를 거쳐 충청조방장..

임진왜란 공신 목록

임진왜란 공신 목록 공신명 등위(인원수) 공식명칭 성명 호성공신 (扈聖功臣) 1등(2명) 충근정량갈성효절협력호성공신忠勤貞亮竭誠效節協力扈聖功臣 이항복, 정곤수 2등(31명)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 (忠勤貞亮効節協策扈聖功臣) 유성룡, 이원익, 윤두수, 윤근수, 김응남 외 3등(53명) 충근정량호성공신 (忠勤貞亮扈聖功臣) 정탁 외 선무공신 (宣武功臣) 1등(3명)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功臣) 이순신, 권율, 원균 2등(5명) 효충장의협력선무공신 (效忠仗義協力宣武功臣) 신점, 권응수, 김시민, 이정암, 이억기 3등(10명) 효충장의선무공신 (效忠仗義宣武功臣) 정기원(鄭期遠)·권협(權悏)· 유사원(柳思瑗)·고언백(高彦伯)·이광악(李光岳)·조경(趙儆)· 권준(權俊)·이순신(李純信)· 기효근(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