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280

조선은 불과 ‘30년’ 만에 망했다, 쇠말뚝 때문이 아니다

조선은 불과 ‘30년’ 만에 망했다, 쇠말뚝 때문이 아니다 길윤형의 조선의 갈림길 _01 “혹시 내가 행복해 보인다면, (정말)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훌륭한, 훌륭한 회담이었습니다.” 그날 미국 대통령의 여름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엔 부드러운 여름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난 조촐한 오솔길을 따라 한·미·일 세 나라의 지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동부 시간으로 2023년 8월18일 오후 3시14분, 한국 시각으로는 이튿날 새벽 5시14분이었다. 가운데 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느린 발걸음으로 연단에 올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기 위해 역사적 장소에서 만났다”면서 “한·미·일 파트너십의 새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 상황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 상황 진주성은 말 그대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다. 10만 명이나 되는 왜적이 진주성을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었고, 명군도 조선군도 도와주지 않았다. 홀로 싸워야 하는 호남 의병들. 어두운 그림자가 진주성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러면 1593년 6월 21일부터 6월 29일까지 9일간의 싸움을 살펴보자. 6월 21일 왜군 선봉대 기병 200명이 척후활동을 시작했다. 척후병은 마현 봉우리 위에서 활동하더니, 조금 뒤에 10여만 명의 왜군이 성을 세 겹으로 포위했다. 그런데 왜군은 탄알 한 발 쏘지 않고 위세를 보인 뒤에 물러갔다. 6월 22일 왜군의 첫 공격이 시작됐다. 아침 10시부터 왜군 10만 명이 일제히 밀려왔다. 개경원 산 중턱에 진을 친 가토가 이끄는 1진과 향교 앞길에 ..

퇴계 이황 선생 자찬 묘지명 : 退溪自銘(퇴계자명) / 퇴계자찬묘지명

退溪自銘(퇴계자명) / 퇴계자찬묘지명 退溪自銘(퇴계자명)/퇴계자찬묘지명 ​ 生而大癡 壯而多疾(생이대치 장이다질) ​ 中何嗜學 晩何叨爵(중하기학 만하도작) ​ 學求猶邈 爵辭愈嬰(학구유막 작사유영) ​ 進行之跲 退藏之貞(진행지겁 퇴장지정) ​ 深慙國恩 亶畏聖言(심참국은 단외성언) ​ 有山嶷嶷 有水源源(유산억억 유수원원) ​ 婆娑初服 脫略衆訕(파사초복 탈약중산) ​ 我思古人 實獲我心(아사고인 실획아심) ​ 寧知來世 不獲今兮(영지래세 부획금혜) ​ 憂中有樂 樂中有憂(우중유락 락중유우) ​ 乘化歸盡 復何求兮(승화귀진 복하구혜) ​ ​ ​ 나는 태어나서는 매우 어리석었고, 크면서 병도 많았네 ​ 중년에는 어쩌다 학문을 즐겨 했는데, 만년에는 어찌 벼슬을 받았던고 ​ 학문은 구할수록 아득하고, 벼슬은 사양할수록 몸에..

오늘(11월 30일)의 역사 인물 : 충정공 민영환

* 아래의 글은 '나무위키'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 역사적으로 볼 때, 1905년 11월 30일은, 을사늑약(1905년 11월 17일 체결됨)에 반대한 민영환(당시 고종의 시종무관)이 자결한 날입니다. 충정공 민영환 1. 개요 조선 말기의 관료. 시호 충정(忠正)을 따서 충정공(忠正公) 또는 민충정공(閔忠正公)으로도 많이 불린다. 고종의 어머니 여흥부대부인의 남동생 민겸호의 장남이자 민겸호의 형 민태호의 양자이다. 대한제국 성립 후 육군부장(현재의 중장에 상당)의 지위에 올랐으나 본래는 과거에 급제해 관료가 된 문신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직후 자결함으로써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2. 가계 민영환의 가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흥 민씨 척족으로서 몇몇 자료들에 그의 가족 관계를 설명하는..

당포해전의 경과와 승리 요인

당포해전의 경과와 승리 요인 [이봉수 칼럼] 1592년 5월 30일(이하 음력) 거북선을 앞세운 이순신함대는,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후, 모자랑포(사천군 용현면 주문리)에서 1박 하고, 사량(통영시 사량면 진촌리)으로 향하였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왼쪽 어깨에 적탄을 맞고 큰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6월 2일 오전 8시경 사량 해상에서 휴식 중이던 이순신 함대는, 적선이 당포(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선창에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순신은 바로 출발하여 10시경 당포 앞바다에 도착했다. ​ 당시 당포에 머물고 있던 적병은 약 300 명이었다. 이들은 당포성 안에서 노략질을 하며 민가를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당포 선창에는 21척의 적선이 정박하고 있었으며, 이순신함대가 접근하자, 성 밖..

그리스 지배를 위한 패권 다툼,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 지배를 위한 패권 다툼, 펠로폰네소스 전쟁 * 발생 : 기원전 431년 * 종결 : 기원전 404년 목차 그리스 제국을 꿈꾼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동맹, 드디어 반기를 들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작-아르키다모스 전쟁(기원전 431~기원전 421년) 시칠리아에서 다시 맞서다 아이고스포타미 전투로 막을 내리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차이 그리스 제국을 꿈꾼 아테네 페르시아는 비록 페르시아 전쟁에서 패했지만, 여전히 그리스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 탓에 페르시아가 다시 쳐들어올까 두려워하던 소아시아(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흑해, 에게 해, 지중해에 둘러싸인 반도)의 폴리스들과 에게 해의 섬에 있는 폴리스들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동맹을 맺었다. 기원전 478년에 결성된 ..

매국노가 낳은 애국자 :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들지 않았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들지 않았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6일 방송된 '매국노가 낳은 애국자'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최영준, 브라운아이드걸스 제아, 가수 라이머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한국에 보내달라는 일본 과학자 때는 1950년 1월.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한 수용소야. 이 수용소가 어떤 곳..

같은 시대 다른 삶 : 신채호 & 최남선, 마틴 루터 킹 & 말콤 X

같은 시대 다른 삶을 살다 간 사람들… 신채호 & 최남선…마틴 루터 킹 & 말콤 X 역사에 나타난 인물 중 참 대조적인 인물이 많다. 신채호와 최남선… 이들은 신숙주와 최영의 후손이다. 신숙주는 세종 때 성삼문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세조의 각별한 지우를 얻어 병조판서로 지냈지만 변절자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아 있다. 난세가 부른 영웅 최영장군은 고려 말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공민왕을 시해하려던 흥왕사의 난, 최유의 모반 등을 평정하기도 하고, 요동 정벌에 나섰으나 이성계 일파의 위화도회군으로 참수를 당한 고려의 충신이다. 충신과 역사는 시대가 만드는 것일까? 이들의 후손 신채호와 최남선은 반대의 삶을 살다 떠났다. 같은 시대 다른 삶은 살다 간 사람은 ..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이복남 장군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 이복남 장군 이복남(李福男, 1555년[1] ~ 1597년 9월 26일(음력 8월 16일)[2])은 조선시대 중기의 무신, 군인이며, 본관은 우계(羽溪)로 자(字)는 수보(綏甫),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무과 급제후 선전관에 초임된 뒤, 절충장군 전라도병마절도사(折衝將軍 全羅道兵馬節度使)에 이르렀다. 1588년(선조 21년) 무과 식년시(武科 式年試)에 병과로 급제, 선전관, 별장을 거쳐 1592년(선조 25) 나주 판관(羅州判官)이 되고, 그해 7월 나주판관 재직 중 임진왜란(壬辰倭亂)이 터지자, 겸 도복병장에 임명되어 전주 웅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승전의 공으로 그해 12월 당상관에 승진했다. 1593년(선조 26) 전라조방장, 전라방어사(全羅防禦使)를 거쳐 충청조방장..

임진왜란 공신 목록

임진왜란 공신 목록 공신명 등위(인원수) 공식명칭 성명 호성공신 (扈聖功臣) 1등(2명) 충근정량갈성효절협력호성공신忠勤貞亮竭誠效節協力扈聖功臣 이항복, 정곤수 2등(31명)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 (忠勤貞亮効節協策扈聖功臣) 유성룡, 이원익, 윤두수, 윤근수, 김응남 외 3등(53명) 충근정량호성공신 (忠勤貞亮扈聖功臣) 정탁 외 선무공신 (宣武功臣) 1등(3명)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效忠仗義迪毅協力宣武功臣) 이순신, 권율, 원균 2등(5명) 효충장의협력선무공신 (效忠仗義協力宣武功臣) 신점, 권응수, 김시민, 이정암, 이억기 3등(10명) 효충장의선무공신 (效忠仗義宣武功臣) 정기원(鄭期遠)·권협(權悏)· 유사원(柳思瑗)·고언백(高彦伯)·이광악(李光岳)·조경(趙儆)· 권준(權俊)·이순신(李純信)· 기효근(奇..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꾼 전적지 웅치와 이치

임진왜란 판을 바꿨다, 영화 '한산'에 나오는 이 고개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9〉 웅치·이치 웅치(熊峙)는 어디인가. 웅치는 725만 관객을 모은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에 나온다. 임진왜란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고개다. ‘육지의 한산대첩’으로 불린다. 웅치는 호남을 지킨 임진왜란의 성지(聖地)다. 원불교 성지도 근처에 품은 웅치는 이제는 트레킹과 라이딩·드라이빙의 성지가 됐다. * 웅치는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을 잇는 고개다. 사진 앞 능선을 가로지로는 고개는 덕봉길로 옛 웅치라고도 부르며, 뒤의 익산-포항고속도로가 보이는 곳에는 현재의 웅치, 즉 곰티재가 있다. 역사학자들은 덕봉길을 임진왜란 웅치전투의 주 전투지로 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 정여립 사건 탓 전북 의병 활동 위축 “어..

삼포왜란

삼포왜란 삼포(三浦) * 조선 전기 일본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가하였던 동남 해안의 세 포구(浦口). - 부산포(釜山浦, 또는 富山浦), 제포(薺浦, 또는 乃而浦), 염포(鹽浦) * 지금의 부산진(釜山鎭)에 해당하는 동래의 부산포(釜山浦, 또는 富山浦),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제덕동(괴정마을)에 해당하는 웅천(熊川)의 제포(薺浦, 또는 乃而浦), 지금의 경상남도 방어진과 장생포 사이에 해당하는 울산(蔚山)의 염포(鹽浦)를 말한다. - 제포(薺浦)와 내이포(乃而浦)는 같은 곳(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괴정마을)으로서, 내이포의 ‘내이’는 냉이를 가리킨다. 냉이를 한약재로 쓸 때 명칭이 제채(薺菜)라서, 내이포(냉이포)를 제포(薺浦)라고도 한 것이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三浦倭..

신라 왕 계보 중 성씨 변경에 관해

신라 왕 계보 중 성씨 변경에 관해 * 유리이사금(박씨)-탈해이사금(석씨)-파사이사금(박씨) - 가계 : 유리는 남해차차웅의 아들. 탈해는 외래계(다파나국 출신)로 남해차차웅의 사위. 파사는 유리의 아들 - 유리와 탈해 사이에 잇금 경쟁. 탈해는 유리의 유언에 의해, 파사는 일성보다 총명해서(?) - 해석 : 탈해 세력(철기)의 일시적 집권 후, 다시 구 세력(박씨)의 회복. * 아달라이사금(박씨)-벌휴이사금(석씨) - 가계 : 아달라는 일성의 아들. 벌휴는 탈해의 손자. 아달라의 왕비(내례부인)가 이매(벌휴의 아들)의 부인이 됨(내해 이사금의 생모) - 아달라와 벌휴의 세력 다툼에서 벌휴가 승리하고, 귀족회의에서 추대됨. * 첨해이사금(석씨)-미추이사금(김씨)-유례이사금(석씨) - 가계 : 첨해는 조분..

김구가 태극기에 남긴 143자... 그 절절한 당부

김구가 태극기에 남긴 143자... 그 절절한 당부 [한국의 유물유적] 보물로 지정된 3점의 태극기... 데니·진관사·김구서명문 태극기 ▲ 현존하는 태극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 고종이 외교 고문이었던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에게 하사한 것이다. 한 나라의 국기(國旗)는 그 나라의 뿌리와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국민의 정신과 주권을 대표하는 표상이다. 따라서 국기에는 국가의 권위와 존엄이 담겨 있고 이를 통해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할 수 있다. 밝음과 평화, 순수를 상징하는 흰색 바탕. 음과 양의 기운이 담긴 파랑과 빨강의 태극 문양. 사방 모서리에 새겨진 하늘·땅·물·불·을 의미하는 건(乾)곤(坤)감(坎)리(離)의 검은색 4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