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268

삼포왜란

삼포왜란 삼포(三浦) * 조선 전기 일본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가하였던 동남 해안의 세 포구(浦口). - 부산포(釜山浦, 또는 富山浦), 제포(薺浦, 또는 乃而浦), 염포(鹽浦) * 지금의 부산진(釜山鎭)에 해당하는 동래의 부산포(釜山浦, 또는 富山浦),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제덕동(괴정마을)에 해당하는 웅천(熊川)의 제포(薺浦, 또는 乃而浦), 지금의 경상남도 방어진과 장생포 사이에 해당하는 울산(蔚山)의 염포(鹽浦)를 말한다. - 제포(薺浦)와 내이포(乃而浦)는 같은 곳(지금의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괴정마을)으로서, 내이포의 ‘내이’는 냉이를 가리킨다. 냉이를 한약재로 쓸 때 명칭이 제채(薺菜)라서, 내이포(냉이포)를 제포(薺浦)라고도 한 것이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三浦倭..

신라 왕 계보 중 성씨 변경에 관해

신라 왕 계보 중 성씨 변경에 관해 * 유리이사금(박씨)-탈해이사금(석씨)-파사이사금(박씨) - 가계 : 유리는 남해차차웅의 아들. 탈해는 외래계(다파나국 출신)로 남해차차웅의 사위. 파사는 유리의 아들 - 유리와 탈해 사이에 잇금 경쟁. 탈해는 유리의 유언에 의해, 파사는 일성보다 총명해서(?) - 해석 : 탈해 세력(철기)의 일시적 집권 후, 다시 구 세력(박씨)의 회복. * 아달라이사금(박씨)-벌휴이사금(석씨) - 가계 : 아달라는 일성의 아들. 벌휴는 탈해의 손자. 아달라의 왕비(내례부인)가 이매(벌휴의 아들)의 부인이 됨(내해 이사금의 생모) - 아달라와 벌휴의 세력 다툼에서 벌휴가 승리하고, 귀족회의에서 추대됨. * 첨해이사금(석씨)-미추이사금(김씨)-유례이사금(석씨) - 가계 : 첨해는 조분..

김구가 태극기에 남긴 143자... 그 절절한 당부

김구가 태극기에 남긴 143자... 그 절절한 당부 [한국의 유물유적] 보물로 지정된 3점의 태극기... 데니·진관사·김구서명문 태극기 ▲ 현존하는 태극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 고종이 외교 고문이었던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에게 하사한 것이다. 한 나라의 국기(國旗)는 그 나라의 뿌리와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국민의 정신과 주권을 대표하는 표상이다. 따라서 국기에는 국가의 권위와 존엄이 담겨 있고 이를 통해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할 수 있다. 밝음과 평화, 순수를 상징하는 흰색 바탕. 음과 양의 기운이 담긴 파랑과 빨강의 태극 문양. 사방 모서리에 새겨진 하늘·땅·물·불·을 의미하는 건(乾)곤(坤)감(坎)리(離)의 검은색 4괘. 대..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 이사부와 거칠부

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 이사부와 거칠부 이사부(異斯夫) 이사부(異斯夫, 생몰년 미상) 또는 태종(苔宗)은 신라 지증왕 ~ 진흥왕 시대의 장군 · 정치가로, 내물 마립간의 4세손이다. 《일본서기》에는 실제 이름 발음으로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또는 이질부례지나말(伊叱夫禮知奈末)로 소개되어 있다. 《삼국유사》이후에는 풍습에 따라 단성으로 박(朴)씨로 기록되었으며, 이름은 이종(伊宗)이라 나타난다. 박문영이 작곡·작사한 대한민국의 대중 가요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과 〈독도는 우리 땅〉에 등장한다. 독도 인근의 해산인 이사부해산에 그의 이름이 붙었으며 강원도 삼척시의 '이사부길',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의 '독도이사부길'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 이사부(異斯夫) 생애 : 미상 시대 : 신..

신라의 역대 왕비

신라의 역대 왕비 1. 개요 2. 역대 왕비 3. 추존왕의 비 4. 여담 1. 개요 신라의 역대 왕비 목록을 서술하는 문서. 공주이자 왕비였던 경우는 ☆을 표시한다. 2. 역대 왕비 군주 시호·이름 출생 사망 아버지(본관) 어머니(생모) 비고 박씨 이사금조 : 8대 241년[1] 혁거세거서간 赫居世居西干 알영부인 박씨 閼英夫人 B.C. 53 ? 계룡 선도성모 오릉 배향 난생설화 남해 차차웅 南解次次雄 운제부인 雲帝夫人 ? ? - - 유리 이사금, 아효부인의 모후 유리 이사금 儒理尼師今 이리생부인 伊利生夫人 ? ? 일지 갈문왕 - 일성 이사금의 모후 김씨 ? ? 사요왕 - 파사 이사금의 모후 탈해 이사금 脫解尼師今 아효부인 박씨[2] 阿孝夫人☆ ? ? 남해 차차웅 운제부인 파사 이사금 婆娑尼師今 사성부인 ..

신라 왕사 및 왕의 계보

신라 왕사 및 왕의 계보 신라 왕조 新羅王朝 기원전 57년 ~ 935년 신라의 군기 천마총 천마도 국성 밀양 박씨, 경주 석씨, 경주 김씨 창건자 시조 거서간 (BC 57 ~ AD 4) 마지막 군주 경순왕 (927 ~ 936) 국호 사로국, 신라, 계림 (BC 57년 ~ 503년) 신라 (503년 ~ 935년) 군주 직함 거서간 (BC 57 ~ AD 4) 차차웅 (4 ~ 24) 이사금 (24 ~ 356) 마립간 (356 ~ 503) 대왕 (503 ~ 935) 통치 국가 신라 (BC 57 ~ 935) 1. 개요2. 역대 군주 2.1. 추존왕 3. 계보 3.1. 사료의 연대에 대한 여러 견해3.2. 상고 시대3.3. 성골 왕실(중고)3.4. 무열왕계 왕실(중대)3.5. 원성왕계 왕실(하대) 4. 금석문이나 ..

갈문왕, 그리고 천전리 각석과 사부지갈문왕

갈문왕(葛文王) * 허루(許婁)갈문왕 : 파사이사금의 장인. * 마제(摩帝)갈문왕 : 지마이사금의 장인 * 일지(日知)갈문왕 : 일성 이사금의 외조부. * 아도갈문왕 : 파사 이사금의 손자 * 내음(奈音)갈문왕 : 조분이사금의 장인(유례이사금의 외조부) * 골정(骨正)갈문왕(=홀쟁갈문왕)=세신(世神)갈문왕 : 조분이사금과 첨해이사금의 아버지. * 구도갈문왕 : 미추이사금의 아버지 * 이칠(伊柒)갈문왕 : 미추 이사금의 장인 * 파호갈문왕 : 내물 마립간의 차남(복호). 자비 마립간의 장인 중 한 명. * 지도로(至都盧)갈문왕 : 지증왕. 왕(王)이라는 호칭 이전에 사탁부의 수장 자격으로 사용된 듯. * 습보(習寶)갈문왕 : 지증왕의 아버지, 소지마립간의 장인 * 사부지(徙夫智/ 徙夫知)갈문왕 =입종(立宗..

"우리들이 왕비를 죽였다" 日 외교관의 명성황후 암살 고백 서한 발견

"우리들이 왕비를 죽였다" 日 외교관의 명성황후 암살 고백 서한 발견 "생각 외로 너무 쉬워 놀랐다" 감상까지 *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명성황후 암살사건에 가담했던 일본 외교관이, 사건 다음 날 “우리들이 왕비를 죽였다”며, 시해 정황을 자세하게 적어 보낸 서한이 발견됐다고, 아사히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촬영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명성황후 암살사건에 가담했던 일본 외교관이, 사건 다음 날 “우리들이 왕비를 죽였다”며, 시해 정황을 자세하게 밝힌 서한이 발견됐다고, 아사히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역사가들은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밝히는 중요한 1차 사료”라고 평가한다. 보도에 따르면, 서한은 암살 실행 그룹의 일원이었던 현지 영사관보 호리구치 구마이치(堀口九万一·1865~1945)가, 18..

47년 만에 밝혀진, 31살에 사형된 언론사 사장의 진실

47년 만에 밝혀진, 31살에 사형된 언론사 사장의 진실 [과거사 정리, 그 아픔과 성과 ②] 5·16 쿠데타 세력의 사법살해 조용수 사장 지난달 27일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 규명 신청 사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2기 진실화해위에는 지난달 21일 기준 3636건, 7443명의 신청 사건이 접수됐다. 그만큼 한국사회에 과거사와 관련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들에게 과거사는 지난 일이 아닌 현재의 아픔이다. 한국사회에는 2000년대 초반 두 번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과 2009년 제1기 진실화해위 활동이 있었다. 2기 진실화해위의 활동 개시에 맞춰, 1기 진실화해위의 조사 사례를 살폈다. 이를 통해 사건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지만 치유되..

김지정의 난과 혜공왕의 피살

김지정의 난과 혜공왕의 피살 김지정의 난(金志貞-亂)은 선덕왕 1년(780년) 신라의 왕족 김지정(? ~ 780)이 일으킨 반란으로, 신라 후기에 연달아 일어난 왕위쟁탈을 위한 골육상쟁의 하나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어려서 왕위에 오른 혜공왕은 사치와 방탕이 심하여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졌다. 이에 이찬(李飡)이던 김지정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궁궐을 포위하고 왕과 왕비를 죽였으나, 반란은 상대등 김양상(金良相), 이찬 김경신(金敬信) 등의 반격으로 평정되고, 왕위는 김양상이 계승하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나라 안에 큰 난리가 생기고, 혜공왕은 김양상, 김경신에게 살해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김지정의 난이 혜공왕이 아니라 당시 실권을 잡은 상대등 김양상, 이찬 김경신을 겨냥하여 일어났으며, 이 ..

김주원과 김헌창, 그리고 김헌창의 난

김주원과 김헌창, 그리고 김헌창의 난 김주원(金周元, 생몰년 미상)은 신라의 귀족으로,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의 5세손이다. 유후관(留後官) 김무월(金無月)의 아들. 가계는 무열왕-김인문-불명-불명-김무월로 이어진다. 혜공왕의 10촌 종형제이다. 김주원(金周元)은 태종 무열왕의 아들 김인문 또는 김문왕의 6대손으로, 선덕왕(김양상)이 재위 6년 만에 죽자, 대신들의 추대로 왕위 계승자로 내정되었으나, 금성으로 오기 전 알천 강가의 냇물이 불어서 건너오지 못하자, 이는 곧 하늘의 뜻이라 여겨져,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원성왕의 즉위후, 후환을 두려워한 김주원(金周元)은 하슬라로 피신했고, 2년후에 그곳에서 하서주도독에 임명되면서, 명주군왕(冥州郡王)에 봉해졌다. 하서주는 그의 ..

해상왕 장보고

해상왕 장보고 장보고(張保皐, 787년~846년)는 신라사람으로, 남북국 시대의 통일신라 무장이자 해상 호족이다. 생애 장보고는 정확한 출생과 계통은 알 수 없으나, 780년대 후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였으며, 활과 창을 잘 다루는 무인 기질을 타고 났다. 그의 이름 장보고도 활을 잘 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그의 본명을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라고 적고 있다. 일찍부터 친구 정년과 함께 당의 서주(徐州)로 건너가, 그곳에서 승마와 창술에 특출난 재주를 보이며, 군인으로서 출사해, 무령군중소장(武寧軍中小將)의 직책을 받게 되었다. 흥덕왕 3년(828년) 초에 신라로 돌아온 그는 왕에게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리고 있는 참상을 전하며,..

비담의 난

비담의 난 비담(毗曇, ?~ 647년)은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말기의 진골로 추정되는 귀족이다. 성은 김(金)이며,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했고, 반란을 일으킨 역신(逆臣)이다. 삼국사기 선덕여왕조, 김유신 열전에 등장한다. 생애 출생 연도, 부모 등 출생에 대한 사항 및 업적 등에 대해서는 남은 기록이 거의 없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선덕여왕 재위 말기인 646년 음력 11월 화백회의의 수장좌이자 신라의 최고 벼슬인 상대등에 오른 것으로 나타난다. 상대등 신라 제 27대 국왕인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재위 말기인 645년에 화백회의의 수장인 상대등이 되었다. 선덕여왕 16년인 647년 정월,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여자 군주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女主不能善理)는 기치 하에 반란을 일으켰다. 선..

신라의 최고위 관직, 시중과 상대등

신라의 최고위 관직, 시중과 상대등 상대등(上大等) 상대등(上大等)은 신라의 중앙 관제에서 최고위 관직이다. 법흥왕 18년(531년)에 설치되었는데, 귀족 회의를 주재하고, 의결 사항을 왕에게 아뢰어, 재가(裁可)를 얻어 실행하게 하였다. 실제로 왕권에 대한 제약적 성격을 갖고 있던 것이며, 회의 장소로서는 신라 사영지(四靈地)나 남당(南堂)이 있었고, 회의 양식은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의결되지 않는다는 화백 제도를 취하였다. 상대등은 중대(中代) 이후 왕권의 전제력이 귀족 세력을 압도하자 세력이 약화되었으며, 정치적 실권은 왕의 지배를 받는 행정 계통의 최고 기관인 집사부(중시, 시중)로 넘어갔다. 신라 하대 왕권이 약화되자, 상대등의 권력이 다시 강해지기도 하였다. 역대 상대등 철부(哲夫) (531..

역사속의 라이벌 : 김경신 vs 김주원

역사속의 라이벌 : 김경신 vs 김주원 - 김경신 / 2인자 안주 않고 적극적 행동으로 왕위 차지 - 김주원 / 왕위 계승 눈앞에 두고 정적에게 자리 뺏겨 신라 선덕왕(37대) 때 권력의 제2인자는 김경신이었다. 선덕왕 김양상과 함께 혜공왕을 타도했기 때문이다. 많은 신하와 사병이 그의 휘하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김양상이 거사하기 전 시중직에 있었던 김주원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거사가 없었다면 사실 왕위는 김주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경신은 항상 노심초사했다. 권력의 제 2인자로 만족할 것인가, 김주원을 제치고 다음 왕위를 노릴 것인가. 이것이 당면한 그의 숙제였다. 김경신은 어느날 밤 꿈을 꾸었다. 꿈에 그가 복두(귀족들이 머리에 쓰던 일종의 모자)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열두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