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제11차 공판에서 최원일 천안함 함장이 증인석에 서자 모든 언론의 관심이 최 함장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런 탓에 정작 천안함 사건의 마스터키에 해당할만큼 중요한 증언을 하였던 유가족 이용기 씨의 증언내용이 묻혀 버린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실마리 - 해군 작전상황도
천안함 사고 발생 이후 일반적인 정황분석과 컬럼 게재 수준에 머물던 제가 완전한 확신을 갖게 된 단초가 바로 '해군 작전상황도가 담긴 아시아경제 기사'의 발견이었고 그 날이 천안함 사고 후 20일이 지난 2010년 4월 15일이었습니다.
그 전에 분명히 기사와 작전상황도를 보긴 보았는데 그 안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지 못한 채 지나치고 있다가 그날 비로소 자세히 들여다보고 '경악'하게 된 것이지요. 고조, 저조, 평균수면이라는 해양전문 용어와 함께 사고지점을 표기한 '별표(☆)' 그리고 결정적으로 '최초좌초'라는 문구는 저를 얼어 붙게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여 저는 칼럼(☜ 보러가기)으로 올렸고, KBS 추적60분에서 집중취재 보도(☜ 보러가기)함으로써 '천안함 좌초'라는 화두는 이슈의 중심에 섰고 이후 많은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다뤄 천안함 진실공방이 본 궤도에 오르는 계기가 됩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아래 <프레시안> 기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례는 언론의 위력(언론이 다룬다는 것), 그 중 영향력 있는 매체의 위력(잘 알려진 매체의 영향력)과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누를 수 있는 공중파 방송의 막강한 위력을 여실히 보여 준 사례라 할 것입니다.
천안함 공판이 11차례에 걸쳐 진행되어 오고 있는 가운데, 국방부와 합조단의 거짓과 왜곡 등 중요한 사실들이 법정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음에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데에는 영향력있는 매체 가운데 오로지 <미디어오늘>만이 진실을 알리고 있을 뿐 모든 매체가 외면하고 있고 특히 공중파 방송들이 다루지 않는 탓이 크다 할 것입니다.
법정 공방의 원인을 제공한 '해군작전상황도'
제가 해군작전상황도에 적힌 내용을 공개하고, KBS '추적60분'이 방송하고, 언론들이 집중 보도하기 시작하자 국방부는 당황을 하며 횡설수설합니다. 그래서 저는 2010년 5월 17일 해군작전상황도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법정으로 가야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자, 바로 그 다음날(5월 18일) 합조단이 먼저 서울중앙지검에 저를 고소합니다.
1년 여의 준비기일과 11차례의 공판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법정공방은 바로 그 '해군작전상황도' 진실공방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해군작전상황도 안에 진실이 담겨있다고 주장했고, 군은 저의 주장이 허위라며 고소를 한 것이지요. 바로 그에 대한 진실 여부가 지난 11차 공판에서 유가족인 이용기씨의 증언을 통해 밝혀진 것입니다.
유가족 이용기씨의 증언이 천안함 사건의 핵심인 이유
이용기 씨는 해군작전상황도에 나오는 손의 주인공입니다. 그의 손가락은 백령도 서안 모래톱 위에 그려진 별표(☆)지점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최초좌초'라고 선명하게 쓰여 있습니다.
해군 부사관 출신으로 백령도 인근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보유한 이용기 씨는 "그 지역은 초계함이 들어갈 수 없다"며 강력하게 항의를 하면서 해군작전상황도를 빼앗아 들고 그것을 기자와 희생자들 앞에서 설명하였습니다.
해군의 주장은 "이용기씨가 군으로부터 작전상황도를 빼앗아 '임의로' 메모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여기서 '임의로'라는 말은 '해군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이용기 씨가 일방적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용기씨가 '임의로' 기록하였는지 여부>는 해군작전상황도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사항이며, 그에 따라 밝혀지게 될 <'최초좌초'를 기록하게 된 배경>과 <그 정보를 누구로부터 취득했는지 여부>는 천안함 사고의 최초원인을 밝힐 열쇠인 셈입니다.
그만큼 이용기 증인은 천안함 재판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고, 지난 제10차 공판(2012. 5. 14)에 증인으로 출석이 요구되었으나 재판부에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지도 않고 참석치 않았던 배경에는 '진실을 말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이 매우 컸을 것으로 저는 이해를 합니다.
그랬던만큼 제11차 공판(2010. 6.11)에 이용기 씨가 증인으로 나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순간, 저는 이용기 씨가 중대한 결심을 하였고 법정에서 진실을 얘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지요. 그리고 참으로 감사하게도 이용기 씨는 법정에서 '최초좌초의 진실'을 담담하게 밝혔습니다.
이용기의 증언 - "22전대장이 좌초를 말했고 작전관이 위치를 찍어 줬다"
검사와 변호인의 신문에 대해 이용기 씨가 답변한 내용의 일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검찰측 증인 신문 (2012. 6.11)
검 사 - 검찰조사 당시 위 작전상황도의 원본을 증인이 보관하고 있다고 했는데 현재도 보관하고 있는가요?
이용기 - 예, 보관중입니다.
검 사 - 증인은 해도에 최초좌초 지점, 고조, 저조, 평균수면 등을 기입한 사실이 있는가요?
이용기 - 예
검 사 - 증인이 항해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고조, 저조, 평균수면을 기재했다고 했는데 군 시절 기억을 되살려 기재한 것인가, 누군가에게 들어서 기재한 것인가요?
이용기 - 조석표는 인터넷 조사로 알아봐서 기재한 것입니다. (추후 변호인의 질문에서 자기 회사 직원에게 전화로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라고 지시하여 기록하였다고 답변)
검 사 - 그 후 천안함 생존자들 중 작전관 등이 왔기에 증인이 '최초 사고지점이 어디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작전관이 백령도 서쪽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서부터 상황이 시작되었다'고 하기에, 증인이 그 부분에 '별표'로 표시하고 그 밑에 바로 '최초좌초'라고 기재하였다고 진술하였는데 맞는가요?
이용기 - 예
검 사 - 증인이 좌초 원인을 물어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용기 - 그곳은 암초가 많은 곳이라 그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데 들어갔기 때문에 물어본 것입니다.
변호인측 증인 신문 (2012. 6.11)
변호인 - 증인이 '최조좌초'를 표기한 것이 맞습니까?
이용기 - 예, 제가 표시한 것이 맞습니다.
변호인 - 왜 '최초좌초'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까?
이용기 - 22전대장이 브리핑하면서 '천안함이 좌초'했다는 설명을 했다.
변호인 - 그러면 별표 위치는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요?
이용기 - 22전대장의 설명을 듣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작전관(박연수 대위)에게 "도대체 어디에서 좌초했다는 것이냐"고 물으며 "손으로 찍어보라"고 하자, 그 지점을 손으로 찍어 주어 표기를 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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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 유족대표 이용기 씨가 천안함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KBS 뉴스화면 캡처 | 지난 제11차 공판에서 이용기씨의 증언으로 '해군작전상황도의 진실'은 밝혀진 셈입니다. 22전대장이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천안함이 좌초했다'라고 브리핑했다는 사실, 천안함 작전관에게 '최초사고 지점이 어디냐'라고 물었다는 시실, 그에 대해 작전관이 '최초좌초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여기서부터 상황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언으로 진실은 밝혀진 것입니다.
자신이 겪었던 진실을 법정에서 흐트러짐없이 또박또박 증언해 준 이용기씨의 용기에 대해 커다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이용기 씨가 다른 어느 증인들 처럼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로 덮어 버렸다면 그만큼 진실을 찾는데 먼 길을 가야했을 것입니다.
지난 11차 공판에서 최원일 천안함 함장은 그 사실에 대해 부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재판(제12차 공판. 2012. 7. 9)에는 사고 당시 항해당직사관이었던 박연수 작전관이 좌우 견시병들과 함께 증언대에 서게 됩니다.
그분들이 진실을 말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만약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저는 부득이 재판부에 이용기 씨와의 1:1 대면 신문을 요구함과 아울러 '위증의 죄'에 대한 법적 조치에 대하여 변호인들과 상의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재판이 늘어나지 않도록 증인석에 서는 분들이 사실과 진실만을 말씀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