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가 왜 촬영을 거부하는가… 4년전부터 스스로 노동자 각성
연예인 절반이 실업자 … 출연료 미지급 쌓여 ‘폭발’
▷연기자들 카메라를 거부하고 왜 싸우나
=지난 12일부터 일제히 KBS에 대한 촬영거부에 돌입한 방송연기자노조는 단기적인 목표가 KBS 드라마 5개 작품 미지급 출연료 12억7400만 원을 지급받는 것이며, 이렇게 출연료가 떼이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 출연료 지연지급, 초과방송분 출연료 지급 등 KBS와 체결한 단체협약상 위반 사례를 시정토록 하는 것 등이다.
<도망자>(4억5000만 원) <프레지던트>(5억4000만 원) <국가가 부른다> <공주가 돌아왔다>(이상 2억5000만 원) <정글피쉬>(3400만 원) 등 지난 2009~2011년 방송된 5개 드라마 출연료 12억7400만 원은 여전히 미지급 상태로 남아있다. 이 출연료를 받지 못한 연기자들은 연기자노조 소속 조합원만 해도 150~200명 정도에 달한다. 비조합원 포함하면 미지급액과 연기자 수가 더 늘어난다. 연기자 당 적게는 10만 원 대에서부터 수천만 원, 수억 원에 이른다. 가수출신 연기자 ‘비’의 경우도 2억 원 가량을 못 받았다고 연기자노조는 전했다.
이순재(앞쪽 왼쪽에서 세번째)·송재호·최명수·이영후·김영철 등 원로 스타급 연기자들이 20일 연기자노조의 촬영거부 투쟁을 지지한다며 KBS에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한국방송연기자노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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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잘 지켜지지 않지만 ‘선계약 후촬영’이라는 원칙이 확립되기 훨씬 전에는 출연료를 떼이는 일들이 빈번했다고들 한다. 연기자 김여진씨는 연기자노조의 촬영거부 투쟁에 대해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저를 포함 대다수 연기자는 일하고도 돈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합니다”라고 올렸다. 연기자들이 이렇게 모여서 장기간 집단행동에 나선 데에는 단지 출연료 ‘체불’ 문제를 넘어서는 연기자들의 사회경제적 삶과 정체성에 대한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 연기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이들(당시 한예조·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조)은 지난 2008년 5월 MBC를 상대로 출연료 협상결렬로 파업에 돌입해 단 8시간 만에 승리한 적이 있다. 그 당시부터 스스로가 예술가, 연예인이 아닌 노동자로서 의식을 갖게 됐다고 연기자노조는 보고 있다.
문제갑 연기자노조 정책위의장은 “20일 노조가 생긴지 20년 만인 당시 파업을 통해서야 조합원들이 비로소 예술이라는 외피에 둘러싸인 채 노동자 지위 획득을 위한 노력 없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될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며 “지난 2010년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의식조사를 해보니 스스로를 노동자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70%나 나왔다”고 전했다.
▷연간소득 1000만원이하 70%
=스포츠분야와 함께 경제적으로 내부의 빈부격차가 가장 극심한 곳이 연기종사자라는 점도 이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각성하게 된 이유다. 문제갑 의장은 “최근 자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방송 소득으로 연간 1억 원 이상 올리는 사람이 전체 대상(조합원 5000명)의 5~8% 수준이며, 1000만 원 이하가 69~70%에 달한다”며 “전체의 50% 이상은 방송 소득이 한 푼도 없다”고 전했다. 방송소득이란 방송에 출연하거나 방송 일을 통해 얻은 수익을 말한다. 특히 방송소득이 줄면 비방송소득도 줄어드는 등 비례관계에 있다는 것. 잘 나가야 행사도 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절반 이상이 1년에 소득이 없는 사실상의 산업예비군 또는 실업자군에 속하는데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도 없다. 고용보험(실업수당), 건강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해 방송 캐스팅이 끊어지면 생존권 위협에 처한다.
출연기회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극소수에만 돌아가 상당수가 이런 현실적 위협에 처해있다고 연기자노조는 우려하고 있다. 평소 연기자의 꿈을 꾸며 발을 들여놓은 이들의 경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캐스팅 기회를 기다리며 스스로 전직조차 하지 않는다. 문제갑 의장은 “캐스팅은 달콤하지만 대부분의 연기자들은 캐스팅에 소외돼 더 큰 절망감에 산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미캐스팅 연기자들은 우울증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고 개탄했다.
문 의장은 “이 뿐 아니라 많은 연기자들은 묘한 자존심이 있다”며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 연기자이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데, 신비감이 없는 연기자로 평가되는 순간 생활인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의 구차한 삶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이 점 때문에 방송사와 연기자 간 불합리함과 차별이 더 고착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조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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