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의 터널을 뚫고 춘삼월을 지나니 다시 4월이다. 계절은 단 한 번도 사람을 속이는 법이 없다. 온 산하는
봄을 맞아 비로소 기지개를 켰다. 봄비 소식에 이어 들녘에는 푸른 새싹이 돋고 꽃나무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만발했다. 머잖아 종달새도 높이 떠
봄을 노래할 것이다. 봄은 생명이 용솟음치는 환희의 계절이요, 새희망이 싹트는 꿈의 계절이다. 만물이 추운 긴 겨울을 견뎌내는 힘은 봄의 환희와
열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에게 이 봄이 그리 기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4월은 어느 시인의 싯구만큼이나 ‘잔인한
달’이다.
엊그제 지나간 ‘제주 4.3사건’의 생채기로 남도는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60년 4월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일어난 4.19 학생혁명으로 수많은 청춘이 피를 뿌렸으며, 박정희 정권 시절인 75년 4월에는 반독재 민주항쟁을 벌이던 8명의 인혁당 인사들이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했다.
여기에 비극 하나를 더 보태야 할 듯 싶다. 바로 세월호 참사다. 300명이 넘는 생목숨이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연하게 수장됐다.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엄연히 발생했다.
대통령은 사고 발생
직후 7시간 동안 행적이 묘연하나, 여태 그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다. 청와대 등 권력집단은 ‘박근혜 7시간’을 규명하려는 사람(혹은 매체)들을
마치 죄인 취급하듯 하고 있다.
뭣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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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2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보상안에
반대하며 집단삭발하고 있다 |
잘못된 것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사고 직후 구조작업이나 사후 처리에서 보인 정부의 무능, 무성의는 차치하고라도,
희생자나 유족들에 대한 당국의 태도는 치를 떨게 한다.
지난해 연말 어렵게 여야 합의로 통과된 특별법을 근거로 구성된 ‘세월호 특위’는 이름뿐인
껍데기로 둔갑했다.
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당초 원안보다 인원이나 예산 규모에서 대폭 축소돼, 당국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나 사후
수습에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국은 유족들이 원치도 않는 배·보상 문제를 앞세우며 물타기를 하고 있다. 남의 집 상가에서
조의금 자랑을 하는 꼴이다.
지난 2일 오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열흘 여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집단으로 삭발을 했다. 이날
삭발식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 가족뿐 아니라 실종자 가족, 생존학생 가족, 희생일반인 가족, 화물피해기사 등 52명이 동참했다.
가족들은 앞서 지난달 30일부터 광화문에서 정부 시행령 폐기 등을 요구하며 ‘416시간 집중 노숙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가족들이 갑자기 단체 삭발까지 하게 된 데는, 지난 1일 정부의 배·보상 기준 발표 때문이다. 이후로 언론은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학생들이 보상금으로 1인당 8억 2000만 원을 받는다는 보도를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연일 쏟아냈다. ‘기레기 언론’은 세월호 가족들을 두 번
죽이고 있는 셈이다.
고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 씨는 삭발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누군가는 삭발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걸
상징한다고 하더라. 현실이 바뀔 수만 있다면 삭발은 어렵지 않다. 부모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섬뜩하다. 오죽하면 엄마들까지 나서서
삭발을 하겠는가.
정부가 참사 1주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은 배·보상이 아니다. 이제라도 선체 인양을 통한 9명의 실종자 수습과 철저한
진상규명임을 말해 무엇하랴.
참으로 슬프고도 억울한 4월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