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관련

세월호 안에 있던 차량 블랙박스, 사고 당시의 블랙박스 영상, 소리 분석

道雨 2018. 4. 20. 15:37




세월호 블랙박스

   ① 사고 전 선체는 기울고 있었다        





"블랙박스가 단서될 것"

지난 1월 파업 중이던 기자들이 모여 꾸려진 KBS 세월호 특별취재팀에게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관계자가 던진 말입니다. 사고 당시의 장면을 담은 유일한 기록이니 거기에 단서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선조위도 당시 한창 분석 중이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미 다른 언론을 통해 일부 공개되기도 했지만, 더욱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연관기사][취재후] 세월호 블랙박스② 사고 직후 17초간 알 수 없는 ‘선내 방송’

■모두 제각각인 표시시각을 맞춰라

KBS는 지난 2월 19일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을 통해서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두 건의 블랙박스까지 입수하면서 본격적인 분석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기존의 보도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아간, 보다 정확한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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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층 C데크에서 복원된 영상들은 선수와 선체 가운데, 선미와 트윈데크까지, 화물칸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복원된 블랙박스 7개 가운데 4개는 후방 카메라도 있어서 모두 11개의 영상이 C데크의 상황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시작은 제각각인 블랙박스의 시점을 하나로 묶는, 이른바 동기화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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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화의 첫 번째 기준은 움직임이었습니다. 같은 대상의 같은 움직임을 기준으로 줄을 맞춰 세웠습니다. 별개의 블랙박스에 빨간색 특수 중장비의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고, 화면 구석에 같은 차량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 잡히기도 했습니다. 7대의 차량은 움직임을 통해서 조각조각으로 뭉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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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으로 묶이지 않는 영상들은 소리를 활용했습니다. KBS의 음향장비를 활용해 분리돼 있던 동기화 그룹 속 영상들에서 같은 소리를 찾아냈습니다. 음역과 소리의 길이, 소리와 소리 사이의 간격 등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영상이 한 그룹으로 묶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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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데 묶인 영상의 시간을 확정하는 작업만 남았습니다. 단서는 사고 전날 오전 인천항으로 향하던 경차의 블랙박스 영상에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라디오 시각고지 멘트였습니다. KBS 라디오의 시각고지 멘트가 나오고 정시를 알리는 알림이 울리는 시점의 화면 표시시각은 10시 11분 3초. 시간 오차는 -11분 3초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이 영상의 표시시간 오차를 바로잡으면서 한데 묶인 나머지 영상들의 잘못된 시간들도 표준시각으로 묶어낼 수 있었습니다.
(동기화, 표준시각화 기법은 선체조사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모두 선조위에 전달됐고, 기존에 선조위가 했던 동기화 오류도 대부분 바로잡았다고 합니다.)

'쇠사슬 영상'의 비밀...급격히 기울었다

동기화 자료를 토대로 2차 분석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영상 속 사소한 움직임에서 선체의 상태를 확인할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단서는 이른바 '쇠사슬 영상'에 있었습니다. 2층 화물칸 앞쪽에 주차된 수입 SUV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나온 선체 천장에 붙은 쇠사슬이 바로 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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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전날 찍힌 영상에선 쇠사슬이 수직으로 바닥을 향하는데, 사고 직전 영상에서는 이미 왼쪽으로 기울었던 상태였습니다. 쇠사슬이 기운만큼 배도 기울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전문 감정 업체에 맡겨 분석해 봤습니다. 분석 결과 영상이 시작되는 오전 8시 49분 35초의 쇠사슬 각도는 18도. 5초 정도 이 각도를 유지하던 쇠사슬은 8시 49분 40초부터 시작해 단 8초 만에 50도까지 꺾였습니다. 선체도 그만큼 빨리 기울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사람이 튕겨 나갔다'는 당시 생존자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고 전, 이미 선체는 기울고 있었다

영상들을 정밀 분석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움직임도 발견됐습니다. 바로 트윈데크에 있던 경차 블랙박스의 영상이었습니다.

차량이 급격히 쏠리는 시점으로부터 50초쯤 전인 8시 48분 50초. 언뜻 보기엔 미동조차 없어 보이지만, 영상의 재생 속도를 인위적으로 높여봤더니 차들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인 겁니다. 이 역시 기울기 변화를 들여다봤습니다. 다만, 차량 서스펜션의 영향을 감안해 기울기의 추이만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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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결과 화면이 미세하게 기울다 잠시 그 상태를 유지하더니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왼쪽으로 쏠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상적으로 운항하는 상황이었다면 배가 다시 중심을 잡았어야 할 시점부터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 겁니다. 세월호는 직접 사고 시점에 앞서 50초 동안이나 계속해서 기울고 있었다는 게 새롭게 밝혀진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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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전문가에게 자문했더니 배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답변을 돌아왔습니다. 조타기가 서서히 오른쪽으로 돌고 있었는데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거나, 기계 자체에 결함으로 방향타가 계속 돌아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기울기가 회복되는 걸 방해하는 어떤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 시점에 대해서 정밀 조사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겁니다.

공은 다시 넘어갔다

블랙박스 기계가 회수됐을 때, 선조위 내부에선 복원 시도를 할지 말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유가족 중 한 분은 "억만금을 줘도 그때로 돌아갈 순 없지만, 블랙박스 영상이 복원되면서 그게 가능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중요한 자료가 자칫 빛을 보지 못 할 뻔했던 겁니다.

선체조사위원회가 조만간 이 영상들을 공개한다고 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분석을 해 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궁금증을 품고 4년째 세월호만 바라보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머지않아 속 시원한 답이 들리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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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블랙박스


② 사고 직후 17초간 알 수 없는 ‘선내 방송’





세월호에 실린 차량에 있던 27대의 블랙박스 중 사고 순간을 담고 있는 것은 모두 7대입니다. 영상에서 나타난 움직임에 따라 동기화를 마친 취재진은 이번엔 소리에 집중했습니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소리도 중요한 단서라고 판단했습니다. 차들이 급격하게 쏠리기 약 20초 전, 영상에선 보이지 않지만, 충격음이 들렸고, 차량이 쏠리고 난 직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선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긴박했던 그 순간, 배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일까요?

[연관기사][취재후] 세월호 블랙박스① 사고 전 선체는 기울고 있었다

사고 직후..17초 간의 알 수 없는‘선내 방송’

취재진이 분석한 시간대를 토대로 보면 차들이 쏠린 시점은 8시 49분 40초 무렵입니다. 이때부터 약 2분 20초 뒤, 미동도 없던 선내에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약 17초간 이어지는 이 방송은 음질이 현저히 나빠 무슨 말인지 알아듣긴 힘들지만, 성인 남성이라는 점과 긴박한 상황이라는 점은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음성은 2층 화물칸에 있는 3대의 차량에 각각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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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취재해본 결과, 이 음성은 5층 조타실에 있는 방송장비를 통해 선내에 나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선내 방송은 객실구역과 선원구역을 별도로 방송할 수 있게 되어있는데 이 방송은 화물칸과 기관실 등 선원들이 오가는 구역을 대상으로만 방송이 나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배가 쓰러진 긴급한 상황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방송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렸다는 의미입니다.

취재진은 선조위가 녹취분석연구소를 통해 분석한 내용을 입수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여보세요. 나오자마자 꺾어. 좌측하단 정반대로 꺾으란 말이야! 영덕, 영덕, 영덕은 좀 있다 나오세요. 조타수!"라고 해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역시 정확한 의미는 알기 어렵지만, 선조위 관계자는 "좌측하단 정반대로 꺾으란 말이야!"라는 말로 볼 때, 한쪽으로 돌아가있는 조타기를 반대방향으로 꺾으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KBS도 이를 바탕으로 음향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디지털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 "기관장, 나오자마자 꺾어. 좌측하단 차단하라고 좌측하단. 기관장, 기관장, 나머지는 다 나오세요."라고 분석됐습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꺾으라는 말은 비슷하게 해석됐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탈출하라는 말로 의심되는 소리도 포착했는데, 이 방송이 나가고 있을 8시 52분은 선내에서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자리에서 가만히 대기하라는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을 때입니다.

누가 말했는지 아직 특정할 순 없지만, 분석 내용에 나온 '기관장'이라는 말에 주목해본다면, 이렇게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선장이나 일등 항해사 정도로 한정됩니다.

이 알아듣기 힘든 짧은 음성이 중요한 이유는 사고가 벌어진 직후 선원들이 어떤 조치를 했을지 유추할 수 있는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조타수의 실수부터 조타기 기기 고장, 외부 충격까지 아직 가능성이 모두 열려있는 상황에서 선원들이 당시 어떤 조치를 했느냐에 따라 사고 원인의 진실에 한 발 더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선원들이 진술한 내용과 비교해서 조사해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선조위는 현재 선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사고 직전...20초 간의 알 수 없는 ‘충격음’


이번엔 사고 직전 상황으로 돌아가 봅니다. 차들이 일제히 쏠리기 약 20초 전인 8시 49분 20초 무렵, 조용하던 선내에 작은 충격음이 포착됐습니다. 그리고 이후 충격음은 차들이 쏠리기 전 20초간 지속하는데 어느 블랙박스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진 않아 어떤 소리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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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나는 무슨 소리일까요. 얼핏 듣기엔 화물이 떨어지는 소리로 추정되는데 선조위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김성훈 선조위 기획팀장은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에 대해서는 특정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는 (D데크 등에서의) 화물 이동일 것으로 가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월호 화물은 1층 D데크와 2층 C데크에 거의 실려있었습니다. D데크는 중장비 위주로, C데크는 자동차가 실려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고 순간을 비추는 블랙박스는 아쉽게도 모두 2층 C데크에 실려있던 차량들입니다. 만약 이 충격음들이 D데크에 있던 화물들이 떨어진 소리라면 배가 쓰러지는데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타기의 작동에 의해 배가 20도까지 기울고, 이후 화물의 이동으로 30도까지 기울었다는 과거 검찰의 사고 원인 결과를 입증해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즉, 화물이 움직이면서 배가 급격하게 기운 것인지, 배가 기울면서 화물이 기운 것인지, 화물의 영향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지점입니다.

물론, 충격음의 정체가 화물을 고정하는 줄이 끊어지는 소리거나, 배 밖에서 무언가 부딪쳐서 나는 소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결국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데 핵심은 D데크에 있던 차들의 블랙박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D데크에서 건져 올린 9대의 블랙박스는 복원에 실패한 상황입니다. 그대로 냉동 보관 중인데, 하루빨리 복원이 돼서 그 날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합니다.


  • 이세중 기자
  • center@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