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에 아연 제련소가 있다
아름다운 계곡이 휘감고 있는 산속에 거대한 제련소가 있다.
굴뚝 여기저기서 허연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수증기는 바람을 타고 산자락에 가닿는다. 산은 말라죽은 나무들로 을씨년스럽다. 건너편의 짙푸른 산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경북 봉화에 있는 영풍석포제련소 풍경이다.
대형서점으로 익숙한 영풍이 운영하는 이 제련소는 철제품 도금에 쓰이는 아연괴와 황산 등을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중금속 오염물질이 생기고 하루 수백톤의 폐수가 발생한다.
놀라운 것은 50만㎡가 넘는 규모의 제련소가 낙동강 최상류에 있다는 점이다. 영남 사람 1300만명의 식수원 꼭대기에 거대한 오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50년 가까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최근에야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는 이가 많다.
1970년대 제련소가 들어설 때만 해도 돈벌이가 되는 공장은 업종 가리지 않고 환영받았다. 지금 잣대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물을 쉽게 끌어다 쓰고 흘려보낼 수 있는 강 상류가 좋은 제련소 입지였던 모양이다. 중금속의 유해성을 따질 만한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제련소는 나날이 몸집을 불려 연 매출 1조4천억원, 관련 업계 세계 4위 업체로 성장했다. 제련소의 화려한 성장 뒤에 낙동강의 희생이 뒤따랐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제련소의 환경오염 문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 있다.
최근 환경부 조사에서 제련소 대기오염물질 배출보고서가 지속적으로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3년 동안 무려 1800건이 넘는다. 1급 발암물질인 비소는 기준치의 1400분의 1로 줄여서 기록한 보고서도 있다.
이 건으로 제련소 임원과 측정업체 대표가 구속됐지만, 제련소 쪽은 조직적으로 벌인 일은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금속 폐수 유출로 20일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은 데 이어, 올해도 무허가 지하수 관정 개발과 폐수 처리 등 법 위반으로 120일 조업정지 처분이 예고돼 있다. 대구 민변이 고발에 나서는 등 시민사회가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가운데, 제련소는 법적 대응으로 시간을 끄는 중이다.
앞서 2013년 제련소는 법을 어겨가며 대규모 새 공장을 지었고, 봉화군은 솜방망이 처벌로 눈감아줬다. 공장 규모는 더 커졌고, 그만큼 오염원도 커졌다. 식수원에 불법으로 제련소를 증축하는 일이 1970년대가 아니라 불과 몇년 전에 버젓이 벌어졌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공장조차 불법적으로 지어 운영하는 제련소가 과연 오염물질 배출 규정을 지킬까 하는 의심이 더욱 커졌다. 제련소 정문에 걸린 기록판은 600일 넘게 무재해를 기록 중이라고 알린다. 노동자가 크게 다치지만 않으면 정말 재해가 없는 걸까?
자연도 사람도 제련소에 가까울수록 중금속 오염 정도가 심하다는 사실은 거듭 확인되고 있다. 2016년 환경부가 실시한 제련소 주변 지역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 주민들의 몸속에서 국민 평균을 웃도는 중금속이 나왔다. 당뇨병, 비염 등 만성질환과 호흡기질환 호소율도 인근 마을 주민들과 견줘 높았다. 땅에서도 중금속이 나와 텃밭에 있는 채소를 먹는 것조차 주의하라고 권고한다.
봉화군은 주민들에게 반경 4㎞ 안에는 과일나무도 심지 말라고 했단다. 오염 위험은 인정하면서도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먼 임시방편만 내놓을 뿐이다.
낙동강 수계의 환경·풀뿌리 단체들이 공동대책위를 꾸려 적극적인 감시활동을 벌이며 제련소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제련소는 무방류 시스템 도입 등을 약속하지만, 더는 낙동강을 괴롭히지 말고 떠나라는 것이 공대위의 요구다.
환경과 건강을 걱정하는 지역민들은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제련소 마을 주민들의 생계 문제를 가볍게 여겨 폐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건강하게 사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가 이렇게 물 관리를 등한시하는 나라가 있습니까? 그래서 분개하는 겁니다.”
한 봉화 주민이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영풍석포제련소는 단순히 경북 북부 산골마을의 논란거리가 아니다. 영남 사람 1300만명의 식수 안전 문제가 본질이다.
똑같은 일이 한강에서 벌어진다 해도 이렇게 몇년째 시간을 끌며 버틸 수 있을까. 뻔히 알면서, 억울해하면서, 오늘도 낙동강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여전히 모르고 마시는 이가 더 많다.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6280.html#csidx2204b21023a9f3fb1c51bcbbdf1c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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