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문제’에는 답이 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의혹 관련 시비가 일자, 문재인 대통령은 입시 전반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부 수립 이후, 아니 민주화 이후에도 거의 수십번 입시제도가 변경되었고, 그때마다 큰 사회적 논란이 있었으나, 평가의 공정성 확보, 고교교육 정상화나 사교육 억제 등 목표를 성취한 예는 없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제도를 없애고 수능시험 한번으로 단순화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최선의 입시제도를 찾자는 논의 자체가 핀트가 빗나간 것이거나 핵심을 회피하는 접근이다. 전국의 모든 교육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안을 만들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입시는 교육(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부의 획득, 지위의 상속 문제이며, 일종의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입시열병은 재산 다음 중요한, 문화자본이라는 보조 재산을 상속하려는 것이자, 일종의 투자다. 자산과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녀의 일류대학 입학만큼의 투자, 상속의 효과가 확실하게 발휘되는 곳이 없다는 경험적 진실을 신앙처럼 지니고 있고, 나머지 온 국민은 학력이라는 ‘보험’ 없이 자녀를 이 세상에 살아가게 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입시의 대열에 서게 된다.
투자에는 자본 규모가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그 어떤 입시제도도 ‘금수저’들에게 유리하게 변형된다. 그래서 사교육을 불법화하고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의 교육의 질을 평준화하지 않는 한, 입시의 공정성 확보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다.
과거나 지금이나 큰 부자들은 자녀 학력, 학벌에 목매지 않는다. 권력과 부의 문턱에 있는 상위 20% 정도가 학력, 학벌에 사활을 건다. 엘리트 충원 제도나 관행, 그리고 고학력 중상위 계층의 머릿속에 박힌 학력주의의 신화를 하루아침에 깰 수 없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 문제가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리고 잘못 건드리면 표만 잃는다는 두려움 때문에 핵심을 회피하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수업시간에 듣지 않고 잠을 자거나 특성화고 등에 진학하는 하위 80%의 학생들은 입시전쟁의 들러리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학부모들도 이 대결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학, 특히 좋은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자녀들을 김용균이나 구의역 청년처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고졸, 전문대졸 청년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우를 높이지 않고서는, 학력보험 구매 열망을 완화시킬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고, 제조업 비중이 현저히 축소된 지금 시점에, 이들 청소년을 숙련기술자로 육성해서 좋은 대우를 해주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변화된 산업구조, 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숙련체계, 보상체계 수립을 전제로 하는 노동·복지·교육 연계 정책을 수립해서, 고졸·전문대졸자의 채용을 우대하고 이들을 인간대접 해주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상위 20%의 학벌자본 투자 열기와 지위 상속 열망을 냉각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속과 투자의 열망은 대체 투자의 부재, 대학의 수직서열 구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 패자부활의 어려움, 사회적 평가체제의 부재 등도 이 문제의 원인일 것이다.
사회의 권력배분과 보상체계 개혁은 한두 정권이 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정부는 최소한 이러한 구조를 악화시키는 쪽으로 가지는 말아야 하지만, 실제는 상위권 대학에 대한 특혜를 강화함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는 정책을 펴왔다.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사립대 보조금 4조원의 반이 상위 사립대 10곳에 집중되어 있고, 스카이(SKY)에 집행된 예산이 전국 모든 국립대 지출의 70%를 넘고, 이 세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나머지 모든 대학 평균의 4배가 넘는다.
이것은 우수한 학생을 더 키워 이들의 경쟁력으로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로 보이나, 지위 세습에 목을 맨 사적 동기의 투자자들에게 국가 자원을 몰아주는 일이다. 95% 학생들을 버리는 ‘반교육’ 정책이다.
정부는 자녀를 무조건 서울의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시키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입시를 공정하게 하겠다는 공허한 이야기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대입은 상속, 투자, 보험 구매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적’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입시가 아니라 교육의 본령에, 더 나아가 지위 세습구조 개혁을 위한 여러 정책을 장기 전망 속에서 하나씩 손봐야 한다.
교육부는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와 손을 잡고, 통합사회적 문제로서 ‘입시병’을 마주해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0738.html#csidx733ae33006770949ba2980854a5a8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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