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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조작사건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단초 세 가지, 대한민국 ‘군사전문가’분들께 드리는 글

道雨 2020. 6. 20. 11:45

대한민국 ‘군사전문가’분들께 드리는 글

천안함 조작사건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단초 세 가지

 

· 천안함 조작사건 해결 없이 남북대화 가능하겠습니까?
· 천안함 조작사건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단초 세 가지

 

저는 예비역 해군 중위입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도 아닙니다. 한국해양대학 항해학과 전공 4년 동안 해군 ROTC 교육을 받고 해군 소위로 임관하였습니다.

처음 배치받은 곳은 한국함대(진해) 배속 전남함 행정관이었습니다. 전남함은 초계함과 구축함의 중간급인 호위함입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공문수발신 업무와 정훈업무를 수행한 다음 이동 발령난 곳이 인천 5해역사 소속 상륙함인 대초함(LSM-651)의 항해 및 갑판사관겸 포술장이었습니다.

 

LSM(Landing Ship Medium)은 대형상륙함인 LST(Landing Ship Tank)보다는 작은 규모의 함선으로 당시 서해 5개 도서인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순회하며 차량, 탱크, 보급품 수송 혹은 병력수송이 주임무였으며 때때로 서해 경비작전에 투입되기도 하였습니다.

제게 주어진 임무는 항해장교로서 수행해야 할 항해당직사관 업무 외에 갑판관련(계류, 정비, 화물적재)업무와 포술관련(함포사격, 탄약 및 무기관리)업무 그리고 정훈에 관한 업무였는데 특히 수송과 갑판에 관련된 일들은 일반상선과 다르지 않아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업무 중 특기할만한 것은 LSM에서 수송화물을 싣고 내리기 위한 접·이안(接·移岸) 과정으로 저에겐 참으로 운명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인위적 좌초(坐礁)가 주 업무인 유일한 함선

 

해군에 그런 배가 있습니다. 제가 탔던 LSM이 바로 그 배입니다. 주 된 임무가 ‘인위적 좌초’입니다. 그래서 저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해변을 향해 숱하게 ‘인위적 좌초’를 감행하였습니다.

LSM이 해안에 접안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물이 높은 시간(高潮)에 전속력으로 해변을 향해 달려갑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미쪽에서 앵커를 바다에 투하한 후 함선이 정지할 때까지 모래사장을 파고 들어갑니다. 완전히 정지하면 앞 램프를 열고 화물(차량, 탱크)을 육지로 상륙시킵니다. 빠져나가는 과정은 역순입니다. 역시 물이 높은 시간을 기다렸다가 함미쪽 앵커를 감아서 함선을 뒤로 빼는 것이지요. 그래서 LSM 선저하부는 늘 돌과 자갈에 긁혀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자료사진은 월남전 참전 당시 LSM-611함)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제가 천안함 사건의 조사위원이 되어(저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돌, 자갈, 조개껍데기에 긁힌 선저하부 손상을 놓고 재판까지 벌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10년씩이나 말이지요.

 

신조선 감독 - 벌크캐리어 3척 컨테이너선 10척

 

저는 해군 중위 제대 후 대한선주(KS-LINE)에 항해사로 입사하였습니다. 이 회사는 우리 해운의 모태인 대한해운공사로 출범하여 민영화 과정으로 주인이 바뀜에 따라 대한선주-대한상선-한진해운으로 회사명이 바뀌다가 몇 해 전 해운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태평양 정기항로 컨테이너선 항해사로 근무하던 중 본사의 인사발령으로 간 곳이 거제 삼성조선소 신조감독이었습니다. 당시 해운시장의 호황으로 많은 선박이 필요했고 전 세계로부터 선박을 발주 받은 우리나라 조선3사(현대, 대우, 삼성)는 그 기간 세계 최강 조선산업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저는 거제 삼성조선소를 비롯하여 신조선 감독으로 근무한 8년여 기간 동안 136,000톤급 광탄선(벌크캐리어) 3척과 25,000톤급 컨테이너선 10척을 건조하였으며 제가 맡았던 감독업무는 선체, 선장, 선실, 도장, 항통장비 등이었습니다. 기관파트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였던 셈입니다.

 

조선소에서 선박의 건조 감독과정은 선박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입니다. 포스코에서 가져온 평평한 철판을 자르는 것을 시작으로 완성된 배가 바다를 향해 나갈 때까지 모든 과정을 감독하고 승인합니다. 선박 한 척이 대략 250개의 Block으로 구성되는데 매 블록마다 대략 열 번의 제조·도장 검사를 마쳐야 블록 하나가 완성됩니다.

마찬가지로 13개의 프로펠러를 주물단계부터 제작하여 부착·작동하기까지 각각 대여섯 번의 검사를 거치게 됩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천안함 함미의 찌그러진 프로펠러를 조사하고 원인을 밝히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셈입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검찰과 군 당국은 저의 석·박사 학위 없음을 지적하며 합조단에 우호적이던 국방연구소와 과학자들의 석·박사 학위와 비교하곤 했습니다.

 

‘구두 뒤축’과도 같은 일

 

저처럼 항해사로 선박을 운항하고 조선소에서 십 수척의 선박을 건조 감독한 경험 정도가 아니어도, 배를 좀 몰아 본 사람들에게 ‘좌초(坐礁)’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구두 뒤축’과도 같은 일입니다.

구두를 신어 본 사람이라면 왜 구두 뒤축이 닳는지 알게 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굳이 석·박사 과정이 필요하거나 전문서적을 뒤적일 필요도 없이, 그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일이란 얘깁니다. 저는 그 수준의 일로 10년째 법정에서 다투고 있습니다.

 

증거(Evidence)에는 Hard Evidence와 Soft Evidence가 있습니다. Hard Evidence란 확실하고 구체적인 증거나 물증 혹은 흔적을 뜻하며 소위 ‘설명이 필요없는 확고한 증거’를 말합니다.

 

선저하부의 스크래치는 좌초(坐礁)의 Hard Evidence입니다. 그리고 폭발(爆發)의 Hard Evidence는 고열, 화염, 그을음 등이며 인체에 미치는 고막손상, 장파열 등도 포괄합니다. 저는 좌초를 말하는 Hard Evidence는 무수히 많이 발견하였지만, 폭발을 보여주는 Hard Evidence는 단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결론이며 판단입니다.

 

MB정권의 국방부는 소위 스모킹건(Smoking Gun)이라며 ‘1번을 쓴 어뢰’을 등장시켰습니다. Smoking Gun은 Hard Evidence와 같은 의미입니다. 국방부는 ‘어뢰야말로 가장 유력한 Hard Evidence’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Smoking Gu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뢰의 추진축에서 발견된 스테인레스 클립밴드의 녹슨 자국과 옆에 놓여진 클립밴드, 추진축을 칭칭 감고 있는 철사뭉치로 인해 Smoking Gun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스터빈 등이 해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 인해, 쌍끌이어선으로 어뢰를 인양하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결국 국방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뢰는 어디서 가져온 가짜’라는 사실만을 입증하는 Hard Evidence가 되어버렸습니다.



선박전문인 제가 군사전문가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

 

저는 군사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렇게 주장한 적도 없고 그렇게 평가되기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제가 익히고 경험했던 일을 통해 선박전문가로 불릴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선박과 관련하여 저만큼 독특하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제가 오늘 특별히 군사전문가 분들께 작심하고 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 군 당국이 <선박사고>를 <군사작전>으로 둔갑시켜 버린 것에 대해, 지난 10년 간 어떻게 군사전문가라는 분들이 이토록 침묵과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따져 묻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천안함이 군함이라는 이유만으로 항해 중 해난사고를 당해도 군사작전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과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며, 정치적 의도나 기타 불순한 목적이 깔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특히 ‘폭침을 믿으라’며 강요하는 행위는 사이비 종교나 하는 짓 입니다.

선박전문가인 제가 <이것은 ‘선박사고’이고 ‘해난사고’의 결과>라고 밝혀 선박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했듯이, 군사전문가들께서는 <이것은 ‘군사작전’이 아니고 ‘어뢰공격’의 결과가 아니다>라고 밝혀낼 수 있어야 군사전문가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 아니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군사전문가 분들께 드리는 리트머스시험지

 

천안함 사건은 2천 년대 들어 발생한 군 관련 사고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이라는 데에 이견을 달 분은 없을 것입니다. 46명의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함선이 반토막 나 침몰한 초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중으로 가라앉은 함선에서 단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한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사건은 군사전문가 분들의 치열한 분석과 해석이 요구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감히 리트머스시험지를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10년간 조작의 세력들이 종북과 빨갱이를 감별하는 잣대로 천안함 사건을 이용한 것과 조금은 오버랩이 되어 좀 그렇긴 합니다만 분명 의미는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군사전문가 분들을 평가할 만큼 지식을 쌓은 사람도 아니고 관련 학위나 논문 하나 없지만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보았을 때, 대한민국 군사전문가라고 한다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 가운데 적어도 하나 정도는 해당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 천안함 침몰사건을 조작한 군 수뇌 세력 가운데 누군가와는 연결 혹은 인맥이 닿아 있거나 최소한 그러한 핵심 사안에 긴밀히 닿아 있는 군 관계자로부터 사건의 전모와 조작의 매커니즘, 그리고 미국과의 연결고리 등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함.(최소한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함)

 

둘째, 실체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없고, 인맥도 없고, 알려줄 사람도 없고, 쥐뿔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군사전문적 능력으로 이미 드러난 사실들을 분석하여, 군 당국이 천안함 사건을 조작하였다는 사실을 밝혀낼 정도의 능력은 있어야 함.(최소한 조작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가져야 함)

 

셋째, 이것도 저것도 그마저도 없다면 전문가적 시각으로 볼 때, 군 주도하에 졸속으로 결론 내린 것은 분명 잘못되었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기준에 미흡하고, 납득되지 않는 점들이 너무나 많으니,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의 용기 정도는 있어야 함.(최소한 조작의 심증은 가져야 함)

 

자신의 명함에 군사전문가, 군사관련 연구소, 군사전문 기자, 군사관련 칼럼니스트 등을 인쇄하여 갖고 다니시는 분 중에서 위 세 가지 가운데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분들은 명함에서 군사 관련 내용을 화이트로 뭉개버리시기를 권합니다. 부끄러운 줄 아시라는 얘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자신감입니다. 그것도 지난 10년의 세월을 침묵하고 인내하며 지금까지 우리 군사전문가 분들을 지켜 본 끝에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변명이나 해명하고 싶으신 말들은 많겠지만, 당신들은 이미 자격을 상실하였습니다.

 

어느 진보정당 군사전문가의 고백

 

야당의원 가운데 그것도 진보정당 가운데 군사전문가의 타이틀로 뱃지를 다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밀할 기회는 갖지 못했지만, 이런 저런 자리에서 스치기도 하고, 한번은 토론 패널 끝자리에서 뵙기도 했던 분인데, 천안함과 관련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안함 진실이 뭐냐는 질문만 한 1000번은 들어봤다”며 “그때마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논쟁도 못한 채 답을 해야 하니 군사전문가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오래 기다릴 자신은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새로운 지식을 누가 가져다 주길 바라고, 그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군사전문가께서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군사전문가인 그를 믿고 답을 구한 천 명의 질문자들에게 그는 스스로 자격 미달임을 고백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천안함의 진실은 논쟁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과학적 진실규명 또한 사과나무 밑에서 마냥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서 해결될 일은 더더욱 아닌 것입니다. 야당가운데 유일하게 국방개혁기획단을 꾸렸던 진보정당의 위상에 걸맞게 주도면밀하게 파고 들었어야 했던 일입니다.

 

만약 그분들께서 그런 의지와 노력이 깃털만큼이라도 있었다면, 저는 제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들을 싸들고 달려가 펼쳐놓고 도움을 청했을 겁니다,

실망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작금 전단살포 사태로부터 개성공단 연락사무소 폭파에 이르자, 우리 진보정당이 보이는 조급함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혹여 종북으로 몰릴까 지레 손사레 치는 것 같아 무척 실망스럽습니다. 우리 진보정당조차 이번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단 얘깁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우리 정부의 약속 불이행>입니다. 당 대표께서 “북, 화난다고 밥상 엎으면 누가 이해하나?”라고 하셨는데, 제가 그 뿐께 “밥상 위에 무엇이 올려져 있었는지 관심이나 가져봤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단초 세 가지

 

이 글을 보시는 군사전문가분들께서 마음이 그리 편치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신 분이라면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잘못인 것이지요.

 

덧붙여 군 당국이 소위 결정적증거(Smoking Gun)이라고 등장시킨 ‘1번 쓴 어뢰’와 관련한 것에 국한하여, 세 가지만 초간단 요약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소한 이 세 가지만이라도 사려 깊게 살펴봐 주시고, 군사전문가적 견해를 밝혀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입니다.

 

1. 쌍끌이어선 - 어뢰 인양 자체가 불가능

 

군 당국은 2010. 5. 15 쌍끌이어선으로 어뢰를 인양했다고 발표하며 관련 동영상을 공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개한 영상을 보면, 정작 어뢰 인양 장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물은 진흙이나 모래가 전혀 묻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구석에 그물로 덮인 어뢰추진체와 모터 역시 해저 뻘밭에서 건졌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깨끗한 상태였으며, 각각 용도를 의심케 하는 수십m 주황색 끈에 묶여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뢰가 발견된 위치입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現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천안함 특위 위원이었으며, 박 의원께서 국회 대정부 질의를 통해 당시 박정이 합조단 군측단장에게 질의하여 받은 답변 가운데 가장 특기할만한 것은, 사고지점 KNTDS좌표와 가스터빈 위치좌표와 동일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합조단은 최종결과보고서를 통해,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의 발견위치>를 ‘폭발원점주변’으로 명시하였으며, 좌표 또한 <사고지점 KNTDS 좌표>, <가스터빈실 좌표>와 동일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군 당국은 <사고지점 좌표=가스터빈실 좌표=어뢰발견 좌표>라고 확정. 공식 발표하였으며, 최종결과보고서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가스터빈 인양일은 5/19, 어뢰 인양은 그 나흘 전인 5/15일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즉 소위 쌍끌이어선으로 어뢰를 인양했다고 하는 당일, 해당 지점에는 11m×8.7m의 대형구조물(가스터빈실)이 인양되지 않은 채 해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쌍끌이 두 척이 그물을 끌어 대형구조물인 가스터빈실을 피해 불과 1.2m짜리 어뢰 추진체와 33cm짜리 모터만을, 그것도 동시에, 주변의 다른 지꺼기들 하나 그물 속에 넣지 않고 낚시하듯 인양해 올리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군사전문가의 영역으로 남겨놓겠습니다.

군 당국은 쌍끌이어선을 동원하여 해당 수역을 수십 차례 오고 가며 훑었다고 보고서에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료들은 해당 수역에서 쌍끌이 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을 입증해 줄 뿐이었습니다.

군 당국의 조작을 보면 너무나도 허술하여, 명민하신 군사전문가 분들께서 금방 그 허점들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수산회사 관계자 분들에게 쌍끌이어업의 원리에 대해 물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요.

 

2. 어뢰 샤프트에서 발견된 철사뭉치와 스테인레스 클립밴드

 

(1) 철사뭉치의 정체

 

2018년 7월 19일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은 국방부로부터 받은 CD 한 장을 재판부에 제출하였습니다. 당시 새로이 교체된 재판부의 ‘1번 어뢰’실물 검증(2018. 9. 13)을 앞두고, 현재 ‘1번 어뢰’의 상태가 어떠한지 ‘사진’이라도 제출할 것을 변호인단이 요청한 결과로 제출받은 CD였습니다.

그런데 재판장님께서 프롬프트를 통해 보여주신 수십 장의 영상 가운데 특이한 사진 한 장이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평택2함대의 합조단 요원이 ‘1번 어뢰’ 샤프트에 칭칭 감겨있던 철사줄을 펜치로 끊는 장면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대평 11호 갑판 구석에 놓여 있던 어뢰 추진체 샤프트와 주변에서 웬 ‘철사뭉치’와 ‘클립밴드’가 나왔는지에 대한 논란과 공방은 2017년 5월 18일 항소심 제5차 공판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만,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번 어뢰’를 덮어 놓은 그물을 젖히자, 해저 뻘 속에 50일간 처박혀 있었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깔끔한 상태의 어뢰추진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계측요원이 줄자를 들고 어뢰추진체의 치수를 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계측요원 1명이 어뢰샤프트에 감긴 철사뭉치를 가리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뢰추진체 샤프트에 ‘철사뭉치’가 칭칭감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철사뭉치’가 도대체 어떻게 ‘1번 어뢰’ 샤프트에 칭칭 감겨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그냥 걸쳐진 정도였다면 해저에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철사뭉치가 걸려 올라왔다는 핑계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넓디넓은 바다에서 부식되지 않을 정도의 철사뭉치가 어뢰에 걸려 올라올 확률은 또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단순히 ‘걸쳐진’ 상태가 아니라, ‘추진체 샤프트에 칭칭 감긴’철사뭉치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합조단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여주는 사진이 2018년 7월 19일 항소심 공판에서 공개된 것입니다. 합조단이 평택에 도착한 어뢰샤프트에 감긴 저 철사뭉치를 ‘펜치로 절단’하는 장면의 사진이 CD에 담겨 제출되었던 것입니다.

그 철사뭉치가 대평11호 갑판위에서 제거되지 않고 평택2함대에 까지 가서야 펜치로 절단해야만 했다는 것은, 대평11호 갑판에서는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고, 2함대에서 펜치를 사용해 철사뭉치를 끊어냈다는 것은 간단하게 손으로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과연 북한이 쏜 최신 버블제트 어뢰가 천안함 하부에서 폭발하였고, 해저에 50일 동안 있다가 막 건져낸 어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렇듯 황당한 ‘철사뭉치’의 존재를 통해 제가 유추하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입니다.

 

■ 천안함 비접촉폭발용 어뢰를 등장시키기로 결심하신 분.
■ 국방부 창고에 낡은 고물어뢰 하나가 있다고 보고한 분.
■ 그 어뢰를 즉시 백령도 현장으로 갖다주라고 지시한 분.
■ 철사, 클립밴드에 얽힌 어뢰를 포장해 백령도로 보낸 분.
■ 백령도에 도착한 어뢰를 대평11호 갑판 위로 이송한 분.
■ 주황색 나일론 끈에 묶어 바닷속으로 담궜다가 꺼낸 분.
■ 갑판위에 올려놓고 치수측정을 하는 척 모션을 취한 분
■ 대평11호에서 평택2함대 합조단으로 어뢰를 이송한 분.

 

이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관련자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에만 충실하느라, 정작 샤프트에 감겨있던 철사뭉치의 존재 이유를 몰랐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어뢰추진체가 얼마나 극비사항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던 터라 조심스러웠던 반면, 철사뭉치를 제거하라는 명령은 받지 못했으니, 제거되지 않은 채 계속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입니다.

 

이 어뢰추진체를 받아 든 평택2함대 합조단 요원들의 업무수행 과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샤프트에 철사뭉치가 칭칭 감겨왔으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 논의를 하였을 것이고, 그것을 제거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손으로 제거하기가 힘들자, 펜치로 끊어내면서 그것도 <수행한 과업>이라고 사진을 찍어 영상으로 남겨놓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던 차에 2018년 9월 13일 어뢰검증을 앞두고, <어뢰의 현재 상태를 사진으로 보내달라>는 변호인단의 요구에 따라 국방부가 보낸 사진들 속에, 평택에서 요원들이 펜치로 철사를 끊는 장면이 포함되어 제출되었던 것입니다.

 

(2) 샤프트에 감겨있었던 ‘클립밴드’의 정체

 

다음은 어뢰 샤프트의 ‘스테인레스 클립밴드 결속 흔적’과 함께 현장에서 발견된 클립밴드에 관한 사항입니다. 클립밴드(Clip Band)는 설비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흔하고 친숙한 부품입니다.

 

무언가 결속할 때 플라스틱보다 더 강력하고 오랜 기간 결속해야 할 경우에 사용하는 밴드로 나사식 타이트(tight)가 붙어 있어 드라이버로 강력하게 결속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일반 가정에서 주로 도시가스와 가스렌지를 연결하는 호스 결속용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재질은 ‘스테인레스(stainless)’라 부식에 강한 편이지만, 엄밀히 말해 스테인레스 재질도 수분과 오래 접촉하면 어느 정도 녹이 발생합니다. 부식에 강한 스테인레스 레벨에도 등급이 있어서 ‘SUS304’, ‘SUS316’과 같이 등급을 매겨 부식에 강한 정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 클립밴드가 왜 1번 어뢰에 철사뭉치와 함께 결속되어 있었던 것인지 의문입니다. 어뢰 샤프트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는 클립밴드 결속으로 인한 부식의 흔적은, 클립밴드가 샤프트에 상당기간 결속되어 있었던 것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측사진 붉은 원) 이것은 무거운 추진체를 이동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랫동안 걸어 두었을 것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이후 현장검증에서 군 당국은 프로펠러를 이동시켜 클립밴드로 인한 부식의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조치하였습니다.

 

다시 대평11호 갑판위 계측요원들의 계측현장을 보시겠습니다. 당시 계측요원들이 펜치는 안 가져가서 철사뭉치를 끊어내지는 못하였지만, 드라이버는 가져갔던 것 같습니다. 샤프트에 감겨 있던 클립밴드를 풀어서 추진체 옆에 버젓이 놓여져 있습니다.

 

이것은 확률의 문제입니다. 일반 설비품인 스테인레스 클립밴드가 대평11호 갑판에 존재할 확률과, 당일 1번 어뢰 아래에 깔려서 발견될 확률과, 그에 더해 어뢰 추진체 샤프트에서 클립밴드 결속으로 인한 부식의 흔적이 발견될 수 있는 확률의 상관관계에 관한 문제입니다.

 

저의 분석과 추정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신다면 군사전문가 분들께서 이에 대해 고찰해 주시고 의견을 표명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3. 국과수 검증 결과 어뢰 페인트 하부 부식 발견

 

1번 어뢰의 부식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군 당국은 최종발표 (5/20)후 나흘이 지난 5/24 국과수에 부식에 대해 감정을 의뢰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그들의 기존 발표와 다르자 그 사실을 은폐해 버렸습니다.

 

(1) 국과수 김의수 박사 – 2019. 1. 17 / 2019. 7. 11 2회 증인출석

 

(2) 국방부 조사결과보고서 – 119 page

 

국방부 조사보고서 119쪽에는 국과수 김의수 박사가 육안검사 결과 어뢰의 철부분과 선체 철부분의 부식정도는 유사한 것으로 확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의수 박사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였습니다.

 

(3) 김의수 교수 뉴스타파와의 인터뷰 (2018. 4. 13)

 

[심인보 기자] 천안함 사건의 결정적 증거라는 ‘1번 어뢰’에 대한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조사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소속으로 천안함 1번 어뢰의 부식 검사를 직접 담당했던 한국교통대학교 김의수 교수의 증언이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이 수행했던 부식 검사의 결과가 합조단 보고서에 왜곡돼 실렸다고 말했다.

 

(4) 국과수, 흡착물질 시료 성분분석 과정에 관여했다는 증언

 

2015년 9월 14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근득 박사는 “국과수도 흡착물질 분석에 관여했다”고 증언하였으나, 어떻게 관여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관련 공문을 입수 발표하여 밝혀지게 됩니다.

 

(5) 국방부에서 국과수로 보낸 감정의뢰 공문 (2010. 5. 24)

 

(6) 국과수가 국방부에 보낸 감정서(I) - 2010. 7. 12

 

국과수가 보낸 감정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페인트 하부에 부식층이 존재한다는 분석 결과’(아래 붉은 별표 부분)입니다.

 

페인트 하부에 부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폭발로 인해 생성된 알루미늄산화물이 날아와 붙었다는 기존 군 당국의 발표와 전면 배치됩니다.

 

뉴스타파가 이 중요한 내용을 입수하고도, ‘국방부가 국과수 의뢰와 회신을 비밀에 붙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정작 이 페인트 하부에 부식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만, 국과수 감정결과 페인트 하부에 부식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국과수가 감정서를 통해 밝힌 것은, 국방부가 천안함 사건 전체를 어떻게 조작하였는지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내용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것은 폭발로 산화된 알루미늄 산화물이 날아와서 페인트 위에 붙었다는 국방부의 주장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과학적 감정 결과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국방부가 국과수 감정서 존재 여부를 은폐하고, 국과수측에 외부 유출하지 말도록 요구했던 이유라고 저는 추정합니다.

 

기타 군사전문가 분들께서 참고하시기를 바라는 내용들

 

앞에 세 가지 예를 든 것은, 소위 MB정부의 군 당국이 스모킹건(Smoking Gun)이라며 그것이 마치 Hard Evidence인양 내세웠던 것이 ‘1번 쓴 어뢰’였으므로, 그것을 탄핵하기 위하여 대표적으로 예시하였을 뿐입니다.

 

참고로 그 외 군사전문가분들께서 살펴보시기를 바라는 내용들을 나열하자면 수백 가지에 달합니다만, 몇 가지만 추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천안함 선체 하부 파공의 존재여부와 의미(가스터빈실에 존재)
● 쌍끌이어선의 어업원리 (어선간 간격과 그물의 길이)
● 쌍끌이 그물 하단에 타이어 등으로 1m정도 간격을 두어야 하는 이유
● 2010. 4. 3 쌍끌이어선 금양호가 투입 두시간만에 철수한 이유
● 폭발의 고유 현상인 고열, 화염, 그을음이 천안함에 없는 이유
● 비접촉폭발이면 고열, 화염, 그을음이 없는 것이 사실인지 여부
● 어느 해군 관계자가 9:15 최초상황 일지를 MBC에 제공한 이유
● 천안함 외판에 동그랗게 형성된 고압세척 흔적이 발생한 이유와 시기
● 함수 인양시 故 박○○ 하사의 시신이 자이로실에서 발견된 이유
● KBS 황현택, 최영윤, 이병도 기자들이 취재한 제3의 부표의 진실
● 용트림 바위 앞에 비스듬히 침몰한 길이 60m 대형구조물의 실체
● 함미 인양시 저수심으로 이동하여 5일을 머물러야 했던 이유
● 이스라엘 돌핀급 잠수함이 극동에서 활동하는 범위와 이유
● 이스라엘 대통령이 2010년 6월 방한을 했던 이유와 회담 내용
● 30년 CIA출신 그레그 前 주한미대사의 ‘MB당황’발언의 배경
● 러시아보고서의 ‘북 관련없다’기록내용 및 진위 여부
●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연중계획에 없던 러시아 방문을 감행한 이유
● 생존자 진술서에 폭발견해는 소수인 반면 충격 견해가 다수인 이유
● 절단면 부근 CPO 대다수가 동급함선 충돌과 철판 충격을 증언한 이유
● 이지스함 3척 포함 수십 척 대잠훈련 중 北잠수함 침투 가능한지 여부
● 함미 인양 완료되기도 전 선저하 폭발 타전한 토마스에클스의 행위
● 2년여 극비 수리 후 현역 복귀한 이스라엘 돌핀급 잠수함에 관하여
● 이스라엘의 세컨 스트라이크 전략(2nd Strike Strategy)에 대하여

 

대한민국 군사전문가 분들께 진심으로 告합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님께 긴 글을 드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네 번째 브리핑)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지난 과거의 불행한 사건들을 통해 왜곡되고 조작된 진실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동족의 억울한 누명을 진지하게 바라보시는 용기를 가져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렸던 질문을 이 글을 보시는 군사전문가분들께 동일하게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이웃이 귀하에게 살인범의 누명을 씌운다면, 귀하께서는 그 이웃과 화합과 평화를 논하는 것이 가능하시겠습니까?

 

2020. 6. 20

 

前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
신상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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