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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

道雨 2023. 1. 10. 09:04

거꾸로 가는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국가는 사라져도 시장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민간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겠다는 기조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실제로 정부의 2023년 경제정책방향은 위기 극복과 경제 재도약을 위해 민간과 기업 중심의 경제운용을 강조한다. 거시정책에서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내로 억제하는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주택시장 규제완화를 추진하며, 세제와 금융 인센티브로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2023년 예산안에서도 이러한 방향이 드러난다. 2023년 예산 총액은 638조7천억원으로 2022년 본예산보다 5.2% 증가했다. 지난 정부 때와 비교하면 증가율이 낮아졌고, 지난해 추경예산까지 포함하면 오히려 감소했다.

특히 정부는 법인세 인하를 추진해 여야 협의로 법인세 세율이 1%포인트씩 낮아졌고, 종합부동산세도 인하됐다.

법인세와 종부세 감세로 인한 향후 5년간 누적 감세액은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심각한 경기둔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세금을 깎고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줄이는 방향이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2.7%로 낮춰 전망하고, 전세계 나라 가운데 3분의 1은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 예측한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1.6%로 다른 기관들보다도 낮게 전망하는데, 이는 1960년 이후 다섯번째로 낮은 성장률이다.

 

밀려오는 충격에 대응해 다른 선진국들은 재정확장을 통해 거시경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시민들의 삶을 지원하며, 증세를 추진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공공투자와 증세를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과시켰고, 일본도 에너지요금 보조와 임금인상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의 인플레이션 종합대책을 도입했다. 독일은 수차례에 걸쳐 에너지보조금을 도입하고 전기와 가스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며, 지난해 12월에는 가정 에너지 요금을 정부가 대신 내주기로 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도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해 재정을 통해 시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높은 수익을 올린 에너지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긴축적인 통화정책과 확장적인 재정정책이 함께 도입되는 이러한 현실을 거시경제정책의 레짐체인지(체제변화)라 부른다. 이는 최근 크게 변화한 거시경제학의 흐름을 반영한다.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해 불황의 상처가 깊어지면, 장기적으로 생산성 상승과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새로운 이해에 기초해 ‘큰 정부’가 귀환한 것이다.

 

실제 코로나19에 대응해 선진국들은 평균적으로 지디피의 약 17%에 해당하는 대규모 재정지출을 시행했다. 한국 정부는 그 비율이 4.5%에 불과했고, 올해 재정정책도 긴축적이다.

경기변동으로 인한 효과를 통제해 재정정책이 확장적인지 아닌지 보여주는 구조적 재정수지는 올해 지디피 대비 0.3% 흑자로 전망된다.

반면에 다른 선진국들은 대폭 적자가 전망되어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건전화와 감세를 함께 추진하면 다른 재정지출의 억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23년 예산에서도 복지지출이 증가했지만 상당 부분이 고령층 확대 등으로 인한 자연증가분이며, 경기둔화로 힘들어질 저소득층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10% 줄어들어 정부의 경기대응 역할도 우려스럽다.

 

세계 경제의 전환은 거시경제정책만이 아니다. 라나 포루하가 최근 저작 <홈커밍>에서 지적하듯, 이제 시장만능주의 대신 정부의 역할 강화, 효율성 대신 회복, 자본과 이윤 대신 노동과 소득, 개방과 세계화 대신 보호와 지역화라는 흐름이 뚜렷하다.

바이든 정부의 경기부양책인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계획이나 기시다 정부의 새로운 자본주의, 그리고 유럽 국가들의 재정확장 등, 각국은 임금을 올리고 소득재분배를 강화하며, 정부가 주도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만 이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대통령은 젊은 시절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사상은 감세와 민영화 등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적 경제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는 40년 전의 일이고 지금은 2023년이다.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