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선거법 개정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

道雨 2023. 12. 15. 11:33

선거법 개정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

 

 

[박태웅 칼럼] 나눠먹자고 시작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의회는 대표성이 철저하게 무너진 조직이다.

국회의원의 80%가 남자다. 평균연령이 57세를 넘는다. (환경 문제가 국회에서 소홀히 다뤄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30%가 법조인 출신이다. 2023년 8월 기준 대한민국의 법조인 수는 3만 4061명, 인구비례로 0.066%다. 이들이 대한민국 의회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500배 이상 과잉대표다. 여기에 속칭 스카이 출신이 또 1/3이다.

이뿐이 아니다.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에선 절반이 사표가 된다.

20대 총선을 보자.

민주당은 강원도에서 25만 5423표를 얻었고, 국힘당(당시 새누리당)은 34만 5158표를 얻었다. 유효투표수는 72만 4271. 민주당은 유효투표수의 35.3%, 국힘당은 47.7%를 받았지만, 결과는 8석 중 국힘당이 7석, 전체의 87.5%를 가져갔다. 47.7이 87.5를 가져갔다. 영남에서도 호남에서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대의기구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을 대신해 정치적 결정을 내려달라고 위임을 받은 기관이다. 대표성이 이처럼 무너져 있는데 이것을 대의제라 부르기는 어렵다.

비례대표제는 이런 무너진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지역구는 돈이 있고 세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지역구에선 나오기 힘든, 그러나 꼭 필요한 정치적 약자와 소수자들, 직능별 전문가의 정치 충원을 위해 비례대표제가 있다.

연동형과 병립형 어느 것을 택하는게 옳은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딱한 것은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민주당과 국힘당간의 유불리만을 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의 고질인 전형적인 경마중계다. 어느 말이 더 잘 달리나. “민주당과 국힘당이 제각기 35%씩 득표를 한다고 하자”로 시작하는 셈법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안 만들고 국힘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민주당이 십여 석을 손해본다는 결론으로 이 계산은 끝이 난다. 그러니 민주당은 ‘현실적으로’ 병립형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감안해’ 병립형을 주장하는 이들은, 연동형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이상주의자’라 부르기도 한다.

병립형 계산이 현실성이 없다

2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우리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왜 하기로 했던 거지? 라는 물음이다. 연동형을 해야 했던 그 많은 이유들은 어디로 갔나?

게다가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국민통합 정치개혁 결의문'을 발표하면서 연동형 비례제를 약속하기도 했다.

정치는 신뢰자본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매번 약속을 어기고도 정치를 계속할 수 있나? 자칭 수권정당이 그래도 되나?

두 번째, 이 계산은 언뜻 현실적인 외양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계산은 실제로는 나올 수 없는 결과를 가정한다.

지난 21대 총선결과를 보자.

민주당(더불어민주당)은 49.91%, 국힘당(미래통합당)은 41.46%의 득표율을 올렸다. 민주당이 8.45% 포인트 더 높다.

의석 수는?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163석, 국힘당이 84석을 가졌다. 차이는 79석, 무려 94%나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이번 총선은 어떨까?

민주당 지도부에게도 전해졌다는 내부 자료를 보자. 민주당은 우세지역 81, 경합우세 37, 경합 49, 경합열세가 14, 열세가 72석이다. 경합지역의 절반을 국힘에게 뺏긴다 해도 민주당은 142석, 국힘은 111석을 차지해 과반을 넘긴다. 민주당 내부 분석에서도 이렇다. 그러니까 적어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평균만 해도 이번 총선에선 크게 이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여론추이는 어떨까?

13일 공개한 여론조사꽃의 결과를 보자.

정당지지도에서 민주당은 42.6%, 국힘당은 32.5%를 거뒀다. 10.1% 포인트 차이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다. 최근의 흐름은 일관된다.

지역별로는 어떨까?

서울에서 12.9% 포인트, 가장 큰 인천경기에서 무려 17% 포인트, 대전/세종/충청에서는 뒤져서 -4.6% 포인트, 광주전라에서 58.4% 포인트, 대구경북에서 -27.9% 포인트, 부산/울산/경남에서는 바짝 붙은 -1.9% 포인트, 강원/제주에서는 3% 포인트 앞서고 있다. 최근 몇 달간 계속해서 이어진 추세다.

이것을 지역구에 대비해 보면 어떨까?

지난 21대 총선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유리할 수 있는 지형임을 알 수 있다.

양당이 똑같이 35%씩 지지율을 받는다는 가정과, 최근 몇달간 꾸준히 이어진 이 추세를 감안하는 것 둘 중에 어느 편이 더 현실에 가까울까? 민주당의 내부 보고서도 후자를 가리킨다.

굳이 사실을 외면하며 근거가 없는 숫자를 들이대고, 그걸 이유로 약속을 어기고 명분이 부족한 일을 하려는건 ‘공포 마케팅’에 더 가깝다.

병립형 쪽의 계산의 헛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연동형에서 민주당이 비례대표를 내면 거의 전부 ‘사표’가 된다는 말도 이치가 닿지 않는다.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받은 상태에서 비례대표 표를 받아봐야 죄다 사표가 된다는 걸 아는데, 굳이 왜 비례대표를 내야 하지?

민주당은 비례후보를 내는 대신 범진보진영의 정당들과 연합정치를 펼 수 있다. 유시민 작가는 이것을 ‘자매정당’ 노선이라고 부른다. 그의 칼럼이 연동형비례대표제에 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노회찬의 화양연화

지난해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인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탈당을 했다.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의 법사위 의결을 위해서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소위에서 합의가 안되면 여야가 3명씩 동수로 안건조정위를 설치하며, 여섯 명 중에 넷이 찬성해야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야당 몫 3명이 결사반대를 하면 소위를 통과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 야당 몫 한명을 늘리기 위해 민 의원이 탈당을 해 무소속이 돼야 했던 것이다. 꼼수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노회찬 전 의원의 정의당이 원내 교섭단체의 지위를 획득했던 2018년 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때로 꼽는다. 노 전 의원과 함께 2대 1로 국힘당을 상대하는 기분이 굉장했다는 거다. 민주당은 그 행복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굳이 탈당의 꼼수를 쓸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이렇게 하면 민주당이 지난 3년 동안 그렇게나 두려워했던 ‘다수당의 횡포’라는 비난, ‘역풍’을 우려할 필요도 없다. 범민주진영이 손을 잡고 일을 해나가면 된다.

사실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답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180석을 가지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또 과반의석을 달라고 하는 겁니까?”

지난 대선에서의 패배로 좌절한 시민들은 민주당으로부터 이 답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하려고 또 표를 달라는 겁니까?”

민주당은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은 ‘기술’을 쓸 때가 아니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