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문

어느 날의 일기 (1989. 5. 30)

道雨 2007. 6. 8. 23:21

 

 

 

                      어느 날의 일기  (1989. 5. 30)


  집사람과 아이들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면, 한편으론 평화스러워 보이면서도, 애처로운(측은한) 마음이 든다.

  아내(이제는 賢淑이라는 이름도 잘 씌여지지가 않는다)의 잠든 얼굴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변덕스럽고 고집(아집이라고 해야겠지)세고, 사회 적응력이 부족한 나를 그래도 남편이라고 정성들여하니 미안하기가 그지없다. 비록 10년 후에 얼마나 나아질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갖은 어려움이 닥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래도 아내는 그런 내색을 않으려 한다. 아마도 또 내가 약한 마음을 먹고 또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을 염려하는 때문이리라. 아내의 거친 손에 비겨 연약한 내 손은 ···

  몸의 괴로움에 허덕이면서, 매정스런 나를 흘겨봄직도 한데 ···

  마음은, 부드럽게 대해주고 손이라도 덜어주고 싶은데, 실제 행동은 그렇지를 못한다. 家父長的인 체면, 그리고 軍 生活에서 익숙해져버린, 결함을 지적하고 큰소리치며 자신은 손도 대지 않고 남에게 시키려만 드는 행동, 그리고 소극적인, 비꼬는 성격 등이 그렇게 만드는가 보다.

  공진이의 종아리는 퍼렇게 멍들어 있다. 며칠 전에 나에게 약간 심하게 맞은 탓이다. 이것도 이 녀석을 좀 부지런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행동을 빠르게 하기 위해)도 있었지만 나의 家父長的인 권위의식 때문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내가 너무 엄하게만 하니까 애가 너무 기가 죽어있기도 해서 애처롭다. 엄격하게 크면서 절제와 예의를 배워야 하겠지만, 그것과 아울러 자유롭게 생각하며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는 창조적인 생각, 발랄함, 순수함 등도 같이 커야만 하는데, 나의 성격 탓에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한다.

  잠든 공진이의 멍든 종아리를 보면서, 다시는(웬만해서는) 회초리를 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올바른 사람으로 키워야겠다고는 하지만, 꼭 회초리가 아니더라고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앞으로는 가급적 손을 대지 말고 여러 가지 면에서 정신교육을 시켜야겠다.

  범진이는 비교적 천진스런 편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겠지만 ···  그전에는 무척 반항적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나아져서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자기의 의사표시는 매우 정확하고, 한 번 들은 것은 잘 기억해내며 또 잘 써먹는다. 여러 가지 잡다한 일에도 잘 참견하며 제가 해보려고 한다. 공진이 보다는 약간 적극적인 스타일이다.

  안정된 자리를 잡고 생활해 나가야 할 시기에 나의 인생행로의 방향전환으로 우리 식구 모두(특히 아내)가 고생스럽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소홀하다고 할까? 사내의 自尊心과 實利와의 싸움이라할까?

  마음은 가끔 혼란스러워 질 때가 있지만, 이제는 내 갈 길을 가야지. 비록 험난하고 고충이 따르는 길이지만 그래도 앞을 보며 가야겠지. 지금까지 이해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믿으며.  

  마음을 다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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