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노동절과 노동귀족

道雨 2011. 5. 2. 15:35

 

 

 

              노동절과 노동귀족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121돌 세계 노동절(메이데이)을 맞아 어제 양대 노총이 각각 기념대회를 열었다.

 

노동절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유래한다.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에서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벌이다가 경찰의 발포로 여섯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5월4일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렸다.

집회가 끝나갈 무렵 의문의 폭발물이 터져 노동자, 경찰관 등 다수의 사상자가 생겼다.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던 자본가, 정치인, 보수언론은 이를 노동운동 탄압의 기회로 삼았다. 이들은 평소 눈엣가시와 같이 여기던 시카고 노동운동 지도자들에게 살인 혐의를 씌우고, 심지어 집회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까지 엮어 넣었다.

 

각계의 탄원, 구명 운동도 소용이 없이 네 명의 노동운동가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사형수 중의 한 명인 앨버트 파슨스는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 전날 밤 아내를 위한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남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전국을 쫓아다니며 전력을 다했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가 큰 목소리로 부른 노래는 ‘애니 로리’였다.

7년 뒤 자료를 검토한 일리노이 주지사는 헤이마켓 사건의 죄수들이 모두 무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때까지 감옥에 남아 있던 죄수들을 석방했다.

 

 

억울하게 사형당한 네 명의 노동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해 1890년 5월1일 열린 대규모 집회가 메이데이의 효시이며, 그 뒤 각국은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메이데이의 원산지 미국에는 메이데이가 없다. 1893년부터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Labor Day)로 정해 하루 놀 뿐이지 메이데이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노동자들이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메이데이를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은 1958년 노동절 날짜를 어용적 대한노총 탄생일인 3월10일로 바꾸었고, 박정희 정권은 이름조차 ‘근로자의 날’로 바꿔버렸다.

지금의 5월1일 노동절을 되찾은 것도 민주화 이후 비로소 가능해진 일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노조는 장기근무한 정규직의 자녀에게 채용 특혜를 주는 단체협약안을 마련했다.

이는 고용 세습이요, 세습은 귀족주의의 특징이다.

귀족주의, 특권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하자는 게 노조의 본령일진대 세습 규정은 노조가 스스로의 임무를 망각하고 노동귀족임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동안 한국 노조는 여러 가지 건설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적대적 환경 속에서 노동귀족이라는 둥 경제를 망친다는 둥 각종 음해에 시달려 왔다.

 

아뿔싸! 이번 현대차 노조의 세습 선언으로 앞으로는 노조 반대자들이 노동귀족이라 공격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진정 노조가 할 일은 회사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19세기 말 미국 노동운동가들이 그랬듯이.

 

< 이정우 : 경북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