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메이지유신과 영리병원

道雨 2011. 8. 2. 12:58

 

 

 

              메이지유신과 영리병원 

 

한국과 일본의 대다수 병원은 어떻게 개인의 소유가 되었나
사실 메이지의 ‘발명품’이었다

 

 

» 김용익 서울대 교수· 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
기나긴 내전 끝에 1868년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일본의 새 천황 정부는 서구 문물을 배우기 위해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한다. 1871년의 일이다.

거의 2년에 걸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은 일본을 근대국가로 만들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중 하나가 서양의학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1874년에 공포된 ‘의제’(醫制)는 의료행정, 의학교육, 의료시설과 의료인의 자격 등 전반에 걸쳐 일본 근대 의료제도의 기초를 놓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서양의학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새로운 서양식 의학교에서 교육받고 시험을 통과해야 의사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전통 한의학은 서양의학에 흡수통합되었다. 의와 약을 분리하되, 즉 의약분업 제도를 도입하되 시행은 유보했다.

 

메이지의 ‘의제’는 나중에 식민지가 된 조선에도 적용되어 우리나라의 근대 의료제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본과 비슷하게 억압되었던 한의학은 1951년 국민의료법을 제정하면서야 부활되었고, 일본과 같이 유보되었던 의약분업은 다시 반세기가 지난 2000년에야 시행되었다. 일본은 지금도 의약분업을 유보하고 있는 상태이다.

 

 

메이지의 유산 중 지금도 한국의 의료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중요한 제도가 하나 더 있다. ‘의사가 병원을 설립’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제도가 사실은 서양식 제도가 아니라 메이지의 ‘발명품’이다.

 

서양에서도 작은 규모의 의원은 의사가 설립해 운영하지만 병원은 다르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설립한다. 민간이라도 법인으로만 설립이 가능하다. 의사나 어느 개인은 병원을 소유도, 경영도, 지배도 하지 않는다.

민간 법인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은 ‘이사회’이다. 이사장도 이사진도 임기를 마치면 당연히 바뀐다.

메이지유신의 이 ‘왜곡’으로 인해 일본, 한국, 대만에서 병원의 대다수는 개인 소유이자 의사의 소유가 되었다. 동시에 강한 영리적인 성격도 갖게 되었다.

 

1973년에 병원의 개인 소유를 억제하기 위해서 의료법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는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외에 병원의 법인화를 촉진하기 위해 의료법에 규정한 의료분야만의 특별한 법인이다.

그러나 의료법인에서도 개인 소유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의료법인에서 설립자는 곧 소유자이고 경영권자이다. 당연한 것처럼 매매도 된다. 서양의 법인병원이 운영되는 방식과는 대조적인 차이가 있다.

 

 

병원의 개인 소유로 인해 동아시아 3국의 의사들은 의학전문가이자 의료자본가로서 의료경영인으로서의 독특한 사회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일본에서 ‘의제’가 실시된 이후 의사 개인 소유의 병의원들이 정착하자, 일본의 의사들은 곧바로 “의료는 민간 위주로 하고 공공은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금 한국의 의사들에게서 가장 강하게 들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이 세 나라에서 모두
공공병원이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공공병원이 가장 취약하다. 일본이 26.5%, 대만이 약 36.5%인 반면 한국은 14.2%라는 최악의 비율을 가지고 있다.

 

‘영리병원’을 만들자는 방안이 10년 넘게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 왜 안 되지? 병원은 원래 돈을 버는 곳이잖아?”라는 것이었다.

병원은 돈 버는 곳이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곳이다.

 

137년 전 메이지유신은 병원을 ‘돈 버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고, 지금 한국에서 영리병원의 비옥한 토양이 되어 있다. 제국주의 일본은 아직도 살아 있다.

 


< 김용익 서울대 교수· 한국미래발전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