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이명박 외교와 ‘국익

道雨 2011. 11. 28. 13:09

 

 

 

                   이명박 외교와 ‘국익’
 

 

» 고종석 언론인
이 정권이 어기차게 걸어온 외교 노선은 ‘친미’와 ‘반북’이다.

그것 자체는 흠잡을 일이 아니다.

 

우선 ‘친미’.

미국은 대한민국의 으뜸가는 우방이다. 그리고 한-미 동맹은 대한민국 안보의 초석이다.

미국과의 친선에 금이 간다면, 대한민국의 어떤 외교 활동도 힘을 잃는다. 따라서 한국 외교는 서울-워싱턴 라인을 추축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중국이 유소작위(有所作爲)와 부국강병을 내세우며 ‘국익제일’의 공세적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더욱더 그렇다.

 

참여정부 시절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것이 정권 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과대망상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과거의 영국이 군사적으로 약한 쪽 편을 들거나 소위 ‘명예로운 고립’(Splendid isolation)을 실천하면서 유럽의 세력균형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에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그 시절의 영국이 아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라도, 국가 안보를 위해 전통적 우방인 미국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에 우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좀 달라져야 한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미국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과 민주당 출신 대통령 양쪽 다로부터 찬사를 받은 이는 이명박 대통령뿐인 듯하다.

이 대통령은 조지 부시 2세의 친구이자 버락 오바마의 친구임을 자부한다. 한국을 위해서나 이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나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우정을 ‘대한민국 국익’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개운치 않은 데가 있다.

이 대통령 취임 초의 쇠고기 협상이나 지난주 국회에서 날치기로 비준된 한-미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해묵은 골칫거리인 주한미군 범죄 따위의 문제에서 한국은 미국에 너무 고분고분했다.

 

이 대통령에 대한 미국 대통령들의 ‘우정’은 혹시 이 정권이 포기한 ‘국익’의 대가가 아닐까?

때때로 이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존중’ 받는다기보다 ‘귀염’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돈으로 우정을 사는 것이 기특해 그쪽에서 귀여워하는 느낌.

설령 미국과의 친선에 더러 돈과 우정의 교환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된 중국의 처지나 눈치를 이따금 헤아리는 게 옳다.

 

 

다음 ‘반북’.

지금의 북한 체제나 그 권력층에 호감을 지닌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 나라의 ‘권력 3대 세습’이라는 웃음거리를 떠나서라도, 북한은 정상 국가가 아니다.

중세 유럽의 신성로마제국이 신성하지도 않았고 로마와도 별다른 관계가 없었으며 온전한 의미의 제국도 아니었듯,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주주의 체제도 아니고 인민을 잘 보살피지도 않으며 공화국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북한 체제는 현존하는 최악의 체제 가운데 하나다. 어쩌면 역사상 최악의 체제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인류에 대한 범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북한 체제는 독일 나치체제에 족탈불급이겠으나, 전체주의적 그물망의 촘촘함으로 보면 나치체제를 외려 넘어선다.

전체주의 체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나치체제에도 숨 쉴 구멍은 있었다.

 

예컨대 1930년대 말 전쟁이 터진 뒤에도, 독일에는 ‘에델바이스 해적’이라는 청소년 일탈집단이 있었다. 14살에서 18살 사이의 이 청소년들은 히틀러청소년단이나 게슈타포나 나치사법부에 대해 물리적 공격을 시도해 여기저기서 전체주의의 피륙을 찢어냈다.

오늘날 북한에서 그런 조직적 일탈행위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북한 체제가 그렇게 고약하다 해서, 이 정권의 경직된 상호주의나 무관심(사실 비굴한 물밑 접촉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이 정권이 초래한 남북관계의 파탄은 한반도의 평화 체감도를 숨가쁘게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귀속돼야 마땅했을 경제적 이득이 중국으로 넘어가도록 조장했다.

이 정권은 내치에서 부도덕한 것만큼이나 외교에서 무능한 셈이다.

 

미국은 한국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지만, 이 정권은 친구의 의중을 너무 살피느라 국익을 날렸다.

평양 정권은 가장 나쁜 괴물정권이지만, 이명박 정권은 북한 체제의 ‘관리’를 포기하고 그 혐오스러운 스펙터클의 관중석에 앉음으로써 국익을 날렸다.

이렇게 국익에 무심한 정권이 네 해째 이어지고 있다.

 

고종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