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소떼를 북한으로 보내면, 북한 주민이 더 굶주리게 될 수도......

道雨 2012. 1. 12. 12:31

 

 

 

 

"북한 주민 굶겨 죽이려면 소떼를 北으로 보내라!"

[박상표 칼럼] 이명박發 '암소 도살' 사태의 진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어라!"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당시 떠돌았다는 얘기가 21세기 한국에서 나오고 있다. 소 값 폭락 대책으로 정부가 암소를 도살하여 사육 두수를 줄이는 정책을 내놓자 소떼를 북한으로 보내자는 제안이 나왔다. 자본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문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경색된 남북 관계도 풀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북한 주민을 돕자는 것이다. (☞관련 기사 : 지금 소떼가 휴전선을 건너야 한다)

이러한 방안은 그야말로 선의의 순진한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식량 문제축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한 상상이다. 소떼가 휴전선을 넘게 되면 더욱 더 많은 북한 주민이 굶어죽게 되는 비참한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해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brioche)를 먹어라"고 말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브리오슈의 자리에 '케이크', '과자', '고기' 등의 단어가 들어가기도 한다. 18세기 말, 브리오슈는 서민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값비싼 음식이었다. 브리오슈는 물 대신 우유, 버터, 설탕 등으로 반죽하는데, 당시 이 재료는 소수 특권층이나 구입할 수 있는 귀한 재료였다.

훗날 역사학자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런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장자크 루소가 <참회록>(1866년경 집필, 1878년 발표)에서 이 말을 처음 기록했는데, 집필 시기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에 오르기도 전이었다는 것이다. 루소는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얘기를 들은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 테레즈가 "빵이 없다면 파이 껍질이라도 가져다주라"는 발언을 인용한 것이라 한다.

 

쇠고기 1킬로그램 생산에 곡물 8킬로그램 필요


북한으로 40만 두의 암소를 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 대사를 빌려보자.

"야 안 돼~! 소 40만 마리를 북한으로 보내면 축사는 누가 지어 주냐. 어? 또 소 사료는 누가 대주냐? 안 돼, 안 된다니깐. 일단 북한에서 암소를 받았다 치자, 그러면 암소가 송아지를 낳을 거 아냐, 그럼 소는 누가 키워? 연료난도 극심한데 축사 난방은 또 어떻게 해. 안 돼, 안 된다니깐."

흔히 현대 사회에서 사람, 가축, 자동차는 곡물을 놓고 서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얘기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식량을 가축과 자동차가 먹어치우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식량, 가축의 사료, 자동차 연료로 쓰이는 이른바 '바이오 연료'는 모두 곡물이다.

세계적으로 1년에 약 20억 톤의 곡물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곡물 생산량 중에서 교역에 사용되는 물량은 생산량의 13퍼센트인 2.5억 톤에 불과하다. 게다가 옥수수(35.1퍼센트), 밀(30퍼센트), 쌀(20.5퍼센트) 등 3대 곡물이 전체 곡물 생산량의 8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곡물 교역량의 90퍼센트(옥수수 33.9퍼센트, 밀 44.3퍼센트, 쌀 11.7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가축들은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물의 70퍼센트 가량을 소비하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3분의 1을 먹어치우고 있다.

우리가 쇠고기를 즐기려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12월령이 된 비육우는 체중이 400~600킬로그램이 될 때까지 3~5개월 동안 하루에 2~3회 곡물 사료를 먹여서 살을 찌운다. 이 기간 동안 비육우는 하루에 몸무게가 무려 1.5킬로그램씩이나 늘어난다. 체중 1킬로그램 증가에 약 8킬로그램의 사료가 필요하므로, 비육우 한 마리가 매일 12킬로그램의 곡물 사료를 먹어 치우는 셈이다.

또 쇠고기 단백질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은 곡물 단백질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물의 열다섯 배가 더 들어간다. 소를 사육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석유, 약품, 살충제 등도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쇠고기 소비에는 환경 비용도 뒤따른다. 소 한 마리는 하루에 21.3킬로그램의 분뇨를 배출한다. 1만 마리의 소를 사육하고 있는 비육장에서 배출되는 유기 노폐물은 인구가 11만 명인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양과 맞먹는 양이다.

따라서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것은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소수 특권층을 위해 대다수 민중의 삶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재 북한의 식량 사정, 연료 사정, 자연환경 등을 고려했을 때, 남한에서 선의로 보낸 암소 40만 마리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프레시안

 

30년 만에 몸집이 2배로 늘어난 한우


한우는 덩치가 작은 소형종인데다 주로 논이나 밭을 가는 농경 목적으로 사육하였기에 살이 많이 찌지 않았다. 그러나 고기를 얻기 위한 식용으로 사육하기 시작하자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

1974년만 하더라도 거세를 하지 않은 18개월령 한우 수소의 평균 체중은 289.6킬로그램에 불과했으나, 2004년엔 수소의 평균 체중이 무려 542.2킬로그램이나 되었다. 30년 만에 몸집이 커져서 몸무게가 거의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 소에게 풀만 먹일 경우 근육에 지방이 거의 들어차지 않는다. 옥수수나 콩을 원료로 한 곡물 사료를 먹여야만 이른바 '마블링'이 생긴다.

한우가 단기간에 몸집이 두 배로 불어난 것은 육식이 증가함에 따라 쇠고기 산업이 급속하게 상업화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만 하더라도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소비하는 쇠고기는 1.2킬로그램 남짓 되었으나, 2010년에 8.8킬로그램을 먹어 치웠다. 40년 동안 인구가 1.5배 늘어난데 비해, 쇠고기 소비량은 무려 일곱 배나 늘어났다.

한우의 상업화는 미국의 공장식 축산업 방식이 도입된 영향도 크다.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조작 기법을 이용하여 소 성장 호르몬(rBGH, Recombinant bovine growth hormone)을 생산하는 국가는 미국의 몬샌토와 한국의 LG생명과학 두 곳 밖에 없다. 유럽에서는 소 성장 호르몬 사용이 불법이지만, 한국과 미국에서는 합법이다.

2008년 전 세계 유전자 조작 소 성장 호르몬 시장은 약 2억 달러였으며, 몬샌토는 세계 시장의 90퍼센트가량을 점유했다. 2008년 이후로는 엘란코가 세계 시장의 90퍼센트를 몬샌토로부터 넘겨 받았다. LG생명과학은 세계 시장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멕시코, 브라질, 칠레중남미 지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지역 그리고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연간 약 2000만 달러 어치의 소 성장 호르몬 '부스틴'을 수출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국내에서 부스틴의 판매 규모는 2011년 약 54억 원 정도였다는 점이다. 몬샌토가 매각한 엘란코의 '파실락' 국내 판매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2007년 미국 농무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농장의 15.2퍼센트와 젖소의 17.2퍼센트에서 소 성장 호르몬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정확한 통계가 없다. 하지만 LG생명과학에서 '부스틴-250'이라는 상품명으로 한우 및 육우(거세한 젖소 수컷)의 성장 호르몬을 시판했으며, 이 제품의 사용은 합법적으로 권장되었다.

 

경제성과 사료 효율에 따라 결정되는 소의 수명


소의 자연 수명은 25~40년이지만 고깃소는 제명대로 살지 못한다. 현대 사회에서 소의 수명은 경제성과 사료 효율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한우 암소는 15~18개월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번식을 시키고, 두세 번 송아지를 낳은 후 도축시킨다. 따라서 한우 암소의 평균 수명은 4~5년이다. 국내에서 사육되는 젖소는 5~6년령 이후 도태시킨다. 그러나 가축 시장에서 소 값이 오르면 비육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수명이 늘어나게 되고, 소 값이 떨어질 경우 빨리 시장에 내다팔므로 수명이 줄어든다.

국내에서 쇠고기 산업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대략 10년을 주기로 상승-하락-안정-상승을 반복해왔다. 1970년에 14만 원하던 소 값이 1983년 208만 원으로 올랐다. 소 값이 올라 수익이 많이 나자 송아지를 많이 들여왔다. 소 값은 곤두박질 쳐서 1986년엔 103만 원으로 폭락하였다. 3년 만에 50퍼센트나 하락한 것이다.

소 값이 폭락하자 너도나도 암소와 송아지를 내다 팔아서 1990년에 사육 두수가 18퍼센트가량 하락하였다. 소 값은 다시 오르기 시작하여 1995년에 309만 원까지 상승하였다. 축산 농민들은 다시 암소와 송아지를 사들였다. 사육 두수가 늘어난 데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경기가 침체되자 소 값은 다시 189만 원까지 떨어졌다. 이번엔 다시 암소와 송아지를 내다 팔 차례. 사육 두수는 줄어들었고,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수입 금지까지 되자 소 값은 583만 원까지 치솟았다.

또다시 사이클은 반복되었다. 사육 두수가 늘어났고, 2006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었다. 2008년에 이르러 한우 가격은 450만 원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번째 방미 순방 선물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까지 전면적으로 개방한 졸속 협상이라는 변수가 발생했다. 분노한 국민들은 전국적으로 촛불 집회로 저항하였고, 한우 가격은 2009년에 610만 원까지 올랐다. 정부의 잘못으로 인해서 2008년에 가격 하락으로 공급이 조절될 기회를 놓친 것이다.

2008년 이후 세계 경제 위기로 소비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기름과 곡물 값이 올라서 사료 가격이 상승했지만 농가들은 사육 두수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농가들은 암소를 계속 들여왔다. 송아지 가격이 떨어진 만큼 정부가 돈을 대주는 송아지 생산 안정제가 오히려 사육 두수를 늘리는 역효과를 가져온 측면도 있다.

소 값 안정 정책을 세우는 것은 물가를 잡는 정책과 비슷하게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가 모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일이다. 소비 확대를 위한 할인 판매 캠페인, 저능력우 도태, 송아지 생산 안정제, 한우 암소 도태 장려금, 돼지 군납 물량 한우 대체, 송아지 고기 상업화 정책도 '언 발에 오줌 누기' 같은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국가 차원의 농업 및 농민 정책, 생태 및 환경을 고려한 적정 가축 사육 두수, 동물 복지식품 안전을 고려한 가축 사육 방식, 국민 건강에 적합한 육류 섭취량 등을 깊이 고민하고 토론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근본적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송아지 고기로 소 값 폭락을 막겠다고?

정부는 최근 소 값 폭락 대책으로 송아지 고기 상업화를 들고 나왔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송아지 고기용 비육 방식의 실상을 살펴보자.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강제로 격리되어 나무로 만든 0.76평짜리 송아지 사육 상자(veal crate)에 갇히게 된다. 송아지는 아주 비좁고 어두운 상자에서 밖으로 한 번 나와 보지도 못한 채 5개월 남짓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송아지 고기는 빛깔이 연할수록 높은 값을 받기 때문에 철분을 거의 뺀 대용유를 공급한다. 인위적으로 빈혈을 만들어 헤모글로빈 수치를 정상치보다 훨씬 낮게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다.

송아지는 부족한 철분을 보충하려고 나무 상자를 물어뜯거나 자신의 털과 배설물을 핥아 먹으려 한다. 이러한 행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송아지 목에 줄을 묶어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영국은 1990년부터 송아지 사육 상자 방식을 전면적으로 금지했으며, 유럽연합(EU)은 2007년부터 금지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송아지 사육 상자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에서는 송아지 고기 생산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미식가들이 즐겨먹는 송아지 고기는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젖소에서는 "젖소 송아지 사육에 알맞은 환경 조성과 우수한 착유우 육성으로 원유 생산량 극대화 및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앞장서 사육 상자 보급을 실시하고 있다.

2006년 10월 11일자 <제민일보>를 보면, 제주시가 사업비 1250만 원을 투입하여 농가 열 곳에 표준형 젖소 송아지 사육 상자 25개를 보급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표준상자는 높이 1.3미터에 가로 1.2미터, 세로 1.5미터 크기로 제작되었다. 1.9평 정도의 크기로 송아지 고기용 사육 상자보다 2.5배가량 더 크긴 하다.

그러나 갓 태어난 송아지를 어미 소에게서 강제로 떼어내는 사육 방식, 경제적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적인 가치로 고려하는 사육 방식은 공장식 사육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송아지 고기 상업화 정책은 동물 복지나 윤리적 측면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건강과대안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