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간만에 쓰는 이 칼럼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품으로 알려진 ‘바람이 분다’를 주제로 삼으려 했다. 마침 소녀시대 티파니 양은 동 감독의 88년 작품인 ‘이웃집 토토로’ 캐릭터를 사랑해왔던 터라 좋은(?) 소재가 되겠다 싶었다. 그녀가 최근 강아지 ‘프린스’를 키우며 애착을 갖기 전까지는. 그러나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메가박스 상영이 중단되었고, 이에 대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의 강도 높은 성명이 나오고, 영화계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조차 큰 관심을 보이면서 이 영화에 관객들이 몰리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주제를 바꾸게 되었음을 밝힌다. 태평양전쟁에 사용된 일본군 제로센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일본감독의 애니메이션 보다는 천안함 사건을 둘러싸고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우리사회 문제가 사회문화적으로 훨씬 중요하니 말이다. 우선 필자는 잠수함 영화에 대해 광적인 덕후임을 밝힌다. 아동문학으로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접한 이후 45년 이상 노틸러스 호와 네모 함장의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일영화 ‘특전 U보트’, 헐리웃 영화 ‘크림슨 타이드’, ‘붉은 10월’, ‘U571’, ‘K19’, ‘팬텀-라스트 커맨더’ 등을 섭렵하고 있는데 우리영화라고는 ‘유령’ 뿐 잠수함 영화작품 자체가 희소하다 보니 꼬리를 물고 선박영화, 해적영화, 해상재난영화를 비롯하여 통칭 ‘해양영화’ 장르에 도착증세가 있는 영화광쯤으로 보시면 되겠다. 공군으로 복무하며 전투기를 정비하고 비행시킬 때에도 항공기 또한 액체가 아닌 기체 속을 항해하는 일종의 함선으로 여겼고, SF 우주영화 속 우주선들도 ‘선(船)’이라는 표현 자체가 우주공간을 여행하는 ‘배’에 다름 아니라고 확장해서 생각하고 있다. ▲ 영화 ‘특전 U보트’ⓒ영화 스틸컷 아, 천안함이 잠수함이 아니지 않느냐고? 예리한 지적이다. 그건 맞다. 대사건의 주인공 ‘천안함’은 PCC-772 포항급 초계함으로 잠수함이 아니라 잠수함을 잡는 전투함이다. 그런데 아직 못 보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매우 중요한 스포일러를 유포하자면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에는 잠수함이 등장한다. 나아가 잠수함이 핵심 주인공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영화를 잠수함 영화 장르에 당연히 포함하겠다. 다만, 이 영화는 극영화가 아니고 팩션(faction)조차 아니다. 철저히 사실을 다루는 논픽션이고 다큐멘터리이다. 물론 배우들이 재연연기를 하는 일부 대목들은 존재한다. 백문이불여일견, 무조건 보시라 ▲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민중의소리 이제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하겠지. 한마디로 요약 드리겠다. 보시라. 극장을 가시는 것이 제일 좋고, 심지어 몇 안 되는 상영관에선 제작자 정지영 감독과 연출 백승우 감독이 직접 대화에 나서 심심찮게 토론도 할 수 있다. 귀차니스트들은 이미 IPTV에도 깔렸으니 집에서 편안하게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보시라.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라면 짬을 내서 굿 다운로더가 되어 PC, 태블릿,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보셔도 좋겠다. 백문이불여일견. 일단 보시라. 영화 내용은 이렇게 생략한다. 칼럼 하나 읽고 얍삽하게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이러니저러니 논평하려는 프리라이더는 사절이다. 굳이 정리하자면 이 영화는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국가적, 사회적, 기술적, 철학적 논쟁의 핵심요점정리에 불과하다. 국방부가 상영금지를 요청할 정도의 확장된 해석이나 음모론, 치열한 문제제기도 담고 있지 않다. 벌어진 일의 핵심적 줄기 일부에 대해 추리고 추려서 매우 건조하고 담백하게 정리하여 제시할 뿐이다. 필자는 이를 천안함 논란에 대해 요약된 75분짜리 영상 프레젠테이션이라고 느꼈다. 우리를 대신하여 사건에 더 깊숙이 접근할 수 있었던 두 전문가와 법정공방에 참여한 법조인이 사건의 개요를 담담하게 진술하며 영화제작에 협조할 턱이 없어 보이는 해군 관계자들의 법정진술을 연기자들이 기록에 따라 재연하고 있을 뿐이다. 천안함 침몰에 대해서 단 세 가지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첫째, 국방부 측 주장으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천안함 피격설’이다. 이를 흔히 ‘천안함 폭침’이라고 부른다. 이 가설에서 적은 북한이다. 두 번째, ‘천안함 좌초설’이다.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이를 기술적이지만 알기 쉽게 담담히 설명한다. 세 번째, ‘천안함 충돌 후 좌초설’이다. ‘천안함은 좌초입니다’의 저자이기도 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우연찮게 한국해양대 항해학과 출신으로 민관합동조사단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영화 속에서 천안함이 국적불명의 잠수함과 충돌 후 반토막이 나 좌초했을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기한다. 그는 현재 국방부와 법정공방 중인데 특이하게도 원고 측인 해군이 사실규명에서 진술이 엇갈리고 모순되며 피고 측에 대한 유죄입증에 소극적으로 그려진다. 질문 원천봉쇄, 천안함은 ‘영구미제’가 되나 자,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답을 주지 않는다. 영화의 결론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일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 ‘의심’은 ‘소통’의 시작이라는 철학자의 이야기로 맺어진다. 합리적인 이야기다. 의심은 질문이 되고, 질문은 답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추리와 논리, 이성과 지식의 진화가 얻어진다. 또한 어떤 문제의 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요즘 기업체 광고를 보면 똑같은 이야기를 떼돈을 들여 보여주고 알려준다. 심지어 SK 같은 대기업이 자신들의 이노베이션은 그룹명 앞에 ‘A’를 붙여 ASK를 통한 이노베이션이라고 강조한다. 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아닌가? 현 정부는 이를 ‘창조경제’의 기반으로 강조한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창조적 발상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자고 국민들을 계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국방부의 천안함 관련 발표내용이 부실하고 앞뒤 모순되며, 더 상세하고 논리적 과학적으로 규명해야 할 것이 많다, 고 의심하고 질문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따지고 찾아보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건만, 돌아오는 저들의 답변은 “여러분, 종북이세요?“일 따름이니 답답한 노릇. 차라리 창조경제 운운하지 말던가. 천안함 사고가 속보로 보도되던 2010년 3월 말, 필자는 친분 있는 기자들과 저녁 술자리에서 언론사 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보들을 묻고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가장 많이 알고 있던 메이저 신문의 후배기자는 “이 사건은 아마 영구미제가 될 것 같아요.”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렇다. 이 사건은 참으로 뱅뱅 돌고 꼬이고 꼬여 원점으로 돌아왔는데, 그 어떤 합리적 의심에 대한 답 보다 시대적․정치적 문제들 때문에 ‘무한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 되어버렸다. 천안함은 80년대 국내에서 건조된 ‘국산’ 전함인데, 결국 21세기 초 국가 간 이해관계 때문에 ‘미제’가 되어야 하다니 억울하지 않은가? 70년대까지나 도깨비 시장에서 ‘미제’ 좋아했던 것이지. ▲ 2010년 4월 24일 반파된 천안함이 인양되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국가가 봉쇄한 질문, 국민이 직접 나선 진실규명 천안함은 그저 천안함 사건 단발로 그치지 않는다. 과정이 깔끔하지 않은 선거, 정체 모를 해킹,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재난, 모호한 내란음모,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특정인의 혼외관계와 아이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귀신이 곡할 사건들 마다 한쪽 방향의 머리만 짱구를 만들어 놓는 답변이 들여온다. 누구로부터? 국가로부터. 신의 복음인가? 현대사회는 종교적 신앙조차도 합리적 자기판단을 거쳐 받아들이는 것인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에서 궁금했던 것은, 왜 영화제목에 ‘프로젝트’를 붙였는가 이다. 어쩌면 워낙 뜨거운 감자인 사건을 영화화 하려니 제작진 측에서 어려운 과제라는 의미로 붙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대자본 상영관에서 모호한 이유로 퇴출된 이 영화에 대중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예술영화 상영관으로 몰리고 있다. 따라서 제작 연출자가 의도했든 안했든 이 ‘프로젝트’는 심해로 침몰해 가던 천안함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여 진실이 요구되는 여론의 법정으로 소환시키는, 천안함 ‘진실규명을 위한 국민’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이 시작되었다. 국가를 칭하는 정부가 속 시원한 진실을 알려주지 못한다면, 궁금한 국민들은 내막이 다 이해될 때까지 요구하고 추정하고 퍼즐을 맞추고 알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특정 정파, 이념적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필자도 군복무를 했건만, 내 동생, 내 후배, 우리아이들인 해군장병 40명의 사망자와 6명의 실종자의 한을 푸는 일인데 한 세기가 걸린들 우리가 멈출쏘냐.
천안함-의문을 침몰시킨 국가, 진실을 인양하는 국민
[민중의소리] 천안함-국가가 봉쇄한 질문, 국민이 직접 나선 진실규명
편집부 | 등록:2013-09-16 09:56:15 | 최종:2013-09-16 10:12:10
2013-09-15 최영일 공공소통전략연구소대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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