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판 ‘공산당이 싫어요’
애국소년단의 녹음 모습. ‘다음 뉴스펀딩’ 화면 갈무리 |
[김선주 칼럼]
입만 열면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고, 애국을 전매특허인 양 부르짖는 사람들을 신용해본 적이 없다. 애국팔이가 그들의 밥벌이 수단이라는 것을 평생 보아왔기 때문이다.
포털 ‘다음’ 화면에 ‘애국소년단’이라는 단어가 맨 위에 올라와 있다. 드디어 이 정부가 히틀러유겐트 같은 소년단을 조직하여 애국몰이를 시작하는구나 싶었다.
누르고 들어가니 애국소년 1호 주진우, 2호 김제동으로 나와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들으면서 웃음보다 눈물이 났다. 이 사회에서 뭔가 작심하고 발언을 하려면 우선 ‘나 종북 아니에요’ ‘난 공산당이 싫어요’에서 ‘김정은 개새끼’까지의 신상발언으로 서두를 떼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아직도 살고 있구나 싶은 처절함 때문이었다.
45년 전 아홉살의 이승복 소년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울부짖은 탓에 공산당에 의해 가족이 살해되었다는 전설을 듣고 자란 세대들이 만든 2015년판 ‘공산당이 싫어요’는 이렇게 신파인지 블랙코미디인지 알 수 없는 자학성 애국증명 멘트로 시작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은 김제동과 주진우의 이름과 행적을 알고 있겠지만, 그동안 이 두 사람이 얼마나 종북몰이에 시달려왔는지 좌절을 겪었는지 짐작이 갔다.
‘좋다 애국? 그렇다면 우리도 애국팔이다. 어디 붙어보자. 누가, 뭐가, 진짜 애국인지 정말 맞짱 한번 떠볼래?’라는 결기가 느껴졌다. 그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 사회의 최고 갑질인 애국과 종북몰이 세력을 향해 웃음을 입힌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 우리는 세상을 보듯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듯 세상을 본다. 달리 말하면 영화는 보이는 세상이고, 세상은 보이지 않는 영화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이 최근에 펴낸 <보이지 않는 영화>의 머리말에 나오는 글이다. 따라서 이 책은 보이지 않는 영화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애국소년단. ‘다음 뉴스펀딩’ 화면 갈무리 |
현실이 까마득하게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 지 오래되었다.
영화를 볼 때는 격정이나 울분 등에 곧바로 감정이입이 되고 깊은 동질감에 휩싸이면서도, 현실에서는 어느 구석을 보아도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고 어디가 울어야 할 지점인지 흥분해야 할 지점인지 감정선이 도무지 잡히지 않는다.
인터넷과 온갖 영상미디어를 통해 현실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엔 조금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거구나 싶었다.
정말 영화는 보이는데 현실은,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4월부터 세월호 참사를 겪은 국민들이 이 영화가 결론 없이 지루하게 상영되고 있다고 느낄 즈음 정윤회 영화가 나왔다. 그 영화는 시놉시스만 나왔을 뿐 예고편도 상영되지 못하고 끝났다.
주연배우로 정윤회와 박지만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블록버스터급 영화 ‘땅콩 회항 사건’이 상영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새 영화로 옮아갔다.
국정원은 하도 자주 나와서 완전히 식상해 버렸다.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어도 되풀이되는 주제는 지루하다. 국정원의 존재는 선거에서 여론몰이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옥죄고 있는 현실이지만, 아무도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못하고 스쳐보낸다.
보이지 않는 영화는 마지막에 검찰이 등장해서 예고편 상영할지 본영화 상영해도 괜찮은지를 판단하고 재빨리 끝나버린다.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현실에서 항상 일어나니까.
영화는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 한국의 재벌이 사무장 하나를 달랑 내려놓기 위해 비행기를 돌리는 영화가 나왔다고 치자. 저런 황당무계한 설정이 어디 있느냐고 모두 비웃었을 것이다.
과거 나쁜 짓을 했던 인물이 몇년의 공백이 지나 다시 등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인물은 자기가 과거에 악역을 한 배우였던 것처럼 태연하게 새 분장을 하고 현실 속으로 들어온다. 사람들도 그냥 영화 보듯 악역 배우 보듯 한다.
애국소년단의 2015년판 ‘공산당이 싫어요’는 재미있다. 블록버스터에 다 들어 있는 로맨스도 활극도 이 세상의 현실 같지 않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웃음으로 버무려서, 보이지 않는 영화인 세상을 좀 보게 해주면 좋겠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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