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신시키는 국가보안법 공안몰이
방북 경험을 전하는 ‘통일 토크콘서트’를 열었다는 이유로, 재미동포 신은미씨가 강제출국 당하고,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이 구속되는가 하면, 이 행사에서 인사말을 한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소환 통보를 받았다.
검경이 벌이는 이 ‘공안몰이’의 법적 근거는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다. 이 조항은 처벌 대상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혀왔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그랬듯이, 집권자가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거나 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최근의 상황만 봐도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통일 토크콘서트에 대해 종편 등 보수매체들이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등 허위사실을 동원해가며 ‘종북몰이’를 하자, 검경이 기다렸다는 듯이 강경대응에 나서고, 야당 의원까지 수사선상에 올렸다.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다.
젠 사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9일 “일부 경우에서 보듯이, 그 법(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접근을 제한하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해마다 발간하는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통해 국가보안법의 남용 가능성을 지적해왔지만, 이번처럼 특정 사건과 관련해 바로 공식 언급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 언론들도 “기이한 사건”이라거나 “박근혜 정부 집권 이후 그런 남용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지적에 대해 12일 기자회견에서 “각 나라마다 사정이 똑같을 수 없다. 남북이 대치하는 특수한 사정에서 우리나라의 안전을 지키고자 필요한 최소한의 법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말끝마다 국제기준에 맞는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면서, 우리한테는 특수사정 운운한다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미국과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는 국가보안법 제7조의 폐지를 줄곧 권고해왔다.
그것이 우리의 안보를 포기하라는 요구가 아니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반도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인류 보편의 가치에 비춰 용인될 수 없는 법이라는 얘기다.
사실과 의견의 자유로운 흐름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임을 박 대통령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폐지해야 마땅한 국가보안법 제7조가 오히려 다시 기승을 부리는 지금의 현실은 민주주의의 후퇴이자 나라 망신이다.
[ 2015. 1. 14 한겨레 사설 ]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무성 수첩 속 ‘K.Y’ 누군가 보니 ‘막장 드라마’. 비박계, '김무성 수첩' 파동에 총궐기 (0) | 2015.01.14 |
---|---|
역사를 되돌리지 말라 (0) | 2015.01.14 |
국민 떠나 자신에 갇힌 대통령의 기자회견. 국민이 못 믿겠다는 검찰 수사에 발 딛고 서다 (0) | 2015.01.13 |
‘기레기’를 믿은 박근혜, 태연히 ‘재탕 기자회견’. 2015년 대통령 기자회견은 2014년의 재탕 (0) | 2015.01.13 |
정윤회 문건, 朴 치부 찌른 결정적 요인. 싱크홀 추락 자청한 정윤회 문건 해프닝 (0) | 2015.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