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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시한폭탄' 비격진천뢰, 고창 무장읍성 땅속서 '우르르'

道雨 2018. 11. 15. 11:42




조선 최초 '시한폭탄' 비격진천뢰, 고창 땅속서 '우르르'




고창 무장현 옛 읍성터 발굴조사 성과
조선 최초의 시한폭탄 비격진천뢰 11점 발굴
살상력 높아 임진왜란 때 큰 수훈 세워
현전해온 비격진천뢰 유물은 6점 불과해


전북 고창 무장현 읍성 군사시설 터의 구덩이(수혈) 안에서 발견된 비격진천뢰 유물들. 역대 최대규모인 11점이 무더기로 나왔다.



포탄이 툭 떨어진 뒤 조금 지나고 나서야 무서운 굉음을 내며 폭발한다. 화약만 터지는게 아니라, 탄 속에 잔뜩 든 날카로운 철조각들이 사방에 섬광과 같이 흩어진다.

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조선시대의 ‘시한포탄(혹은 폭탄)’이 바로 500여년전 임진왜란 시기 신무기로 나온 비격진천뢰다.


비격진천뢰는 오늘날 한국인에게도 비교적 익숙하다. 오래 전부터 티브이 다큐물이나 드라마에도 조선을 대표하는 무기로 많이 소개됐다. 포구가 확 벌어진 대완구 소완구란 화포로 발사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살상력 등의 성능이 강력하고 섬광 등의 이미지 효과도 강렬하다.


임진왜란 등에서도 큰 전공을 세운 것으로 이름난 조선의 첫 ‘시한폭탄’ 비격진천뢰가, 최근 남도의 고창 땅속에서 줄줄이 세상에 나왔다.


호남문화재연구원은 전북 고창 무장현 옛 조선시대 관아와 읍성터를 최근 발굴조사한 성과를 15일 발표했다. 최근 조사과정에서는 군사 훈련장 터와 무기창고 건물터들, 수혈(구덩이), 도로시설 등이 잇따라 드러났다. 특히 수혈 안팎에서 국내 최초의 시한폭탄으로 꼽히는 알 모양의 비격진천뢰가 역대 최대규모인 11점이나 발견됐다.


무더기로 나온 비격진천뢰들은 모두 무쇠로 만들어졌다. 한점의 지름이 21㎝, 무게는 17∼18㎏에 달한다. 안에 빈 공간을 파서 화약과 철 조각, 대나무통에 심지줄을 묶어 불을 붙이는 신관(발화 장치)을 넣는 얼개로 되어있다.


또, 수혈 옆에는 비격진천뢰를 쐈던 걸로 추정하는 지름 170㎝ 정도의 원형 포대시설 터도 드러났다. 기존에 전해져온 비격진천뢰 실물은, 국가보물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을 비롯해 ,하동군 고현성지, 진주성지 등에서 출토된 6점에 불과하다. 포탄 11점이 포대시설의 흔적과 함께 한꺼번에 확인된 건 이번 발굴이 유일한 사례다.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 직전인 선조 24년(1591)에 화포장인 이장손이 발명했다고 전해지는 조선 특유의 신무기다. 중완구라는 화포에서 발사돼, 표적지에 날아간 뒤 시간이 지나서 터지는 일종의 작렬 시한폭탄으로 분류된다. 섬광, 굉음과 함께 수많은 철파편을 사방에 흩날리는게 특징이다.

강력한 살상력을 갖고있어, 임진왜란 당시 경주성 탈환전, 진주성·남원성 싸움 등 실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고 <조선왕조실록> 등의 사서에 전해진다.


무장 관아와 읍성은 태종 17년(1417)에 왜구를 막기위해 쌓은 이래, 오랫동안 지역의 행정 군사 요충지 구실을 했다.

고창군 쪽은 2003년 이후로 연차발굴 조사를 지속하며, 관련 유적들의 복원정비사업을 벌여왔다. 이번에 군사시설터가 나오면서 희귀유물인 비격진천뢰를 무더기 수습했고, 당시 포대의 구체적인 배치 얼개 등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조선시대 군사시설·무기류 등의 배치상황과 사용 내력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실물 자료를 얻은 셈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터의 전경. 성곽으로 둘러싸인 영역 가운데 아래 오른쪽 구석의 누런 맨땅 드러난 구역이 최근 조사된 훈련청과 군기고 추정터 유적이다. 여기서 비격진천뢰 11점이 무더기로 나왔다.
읍성터 안에서 확인된 포대 터. 돌들로 기반을 다진 뒤 중완구 등의 화포와 포를 놓은 거치대를 설치하고 비격진천뢰를 쏘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수습한 비격진천뢰 한점을 측면에서 찍은 모습.
출토된 비격진천뢰 3점을 단층(CT)촬영한 사진이다. 위 왼쪽 유물의 내부에 신관을 넣는 공간이 보인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호남문화재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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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 폭발력 비밀은 겉면에 숨은 무수한 기공




화포에 넣어 발사...중국 '진천뢰'와는 다른 폭탄


창녕 화왕산성에서 나온 비격진천뢰 컴퓨터 단층촬영(CT)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에서 11점이 나온, 조선시대 작렬(炸裂·산산이 흩어짐) 시한폭탄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는 국내 병기사(兵器史)에서 획기적인 유물로 평가된다.


전쟁사를 전공한 박재광 건국대박물관 학예실장은 저서 '화염 조선'에서, 과거에 화포는 대부분 성벽을 부수거나 함선을 격파하는 데 사용했지만, 비격진천뢰는 우리나라 고유 화기 가운데 유일하게 목표물에 날아가 폭발하는 포탄이라고 설명했다.

비격진천뢰를 만든 사람은 화포장(火砲匠) 이장손으로,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이전에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기서인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와 '융원필비'(戎垣必備)에는, 비격진천뢰를 "체형은 박과 같이 둥글고, 부리에는 손잡이 달린 뚜껑이 있다. 완구(碗口·화포)에 실어 발사하되, 불꽃을 막으려면 진천뢰 심지에 불을 붙이고 나서 완구 심지에 불을 붙인다"고 소개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비격진천뢰는 크기가 비슷한데, 지름이 20㎝ 안팎이다. 재질은 무쇠이고, 내부는 비었다. 안쪽에는 화약과 쇳조각, 발화 장치인 죽통(竹筒)을 넣었다. 죽통 속에는 나선형 홈이 있는 목곡(木谷)이 들었고, 목곡에는 폭발 시간을 조절하는 도화선을 감았다.


박 실장은 "빨리 폭발하게 하려면 10번을 감고, 더디게 터지도록 하려면 15번을 감았을 것"이라고 예를 들어 설명한 뒤 "목곡이 원시적 형태의 기폭 장치인 신관(信管) 역할을 대신했다"고 강조했다.


비격진천뢰에는 위쪽과 옆쪽에 각각 구멍이 있다. 죽통을 폭탄 안에 넣고 위쪽 구멍을 막은 뒤, 옆쪽 구멍으로 화약을 주입했다. 이어 죽통에서 나온 심지에 불은 붙이면 일정 시간이 흐른 뒤 폭발했다.

비격진천뢰는 대개 완구에 넣어 발사했다. 완구는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뉘며, 비격진천뢰가 없을 때는 돌을 둥글게 다듬어 쏘기도 했다.

중국에는 비격진천뢰와 유사한 '진천뢰'라는 폭탄이 있다. 도자기나 금속 재질 용기에 화약을 넣는다는 점은 비격진천뢰와 같지만, 기능과 사용법은 차이가 있다.

박 실장은 "진천뢰 내부에는 죽통이 없고, 완구로 발사하지 않아 직접 던져 터뜨려야 한다"며 "비격진천뢰는 폭발 시간을 지연시킴으로써 완구로 날려 보내는 것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육군박물관 비격진천뢰. [연합뉴스 자료사진]



흥미로운 사실은 비격진천뢰를 컴퓨터 단층촬영(CT) 장비로 찍으면, 겉면에 공기 구멍인 기공(氣孔)이 매우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학계에서는 이 기공을 비격진천뢰 폭발력의 비밀로 본다. 창녕 화왕산성에서 나온 비격진천뢰를 보존처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개최한 '쇠·철·강' 특별전 도록에서 "기공은 충격에 약한 주물의 강도를 떨어지게 만들어, 폭탄이 더 쉽게 터지도록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