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경찰, 서울시장 보선 때 ‘나경원 비선캠프’처럼 활동
MB청와대 보고 문건 입수
박원순 공격 ‘색깔론’ 제안하고
보수언론 활용한 ‘여론전’ 조언
강·약점 분석 ‘맞춤 컨설팅’까지…
토론서 종북공세, 문건과 판박이
박원순 공격 ‘색깔론’ 제안하고
보수언론 활용한 ‘여론전’ 조언
강·약점 분석 ‘맞춤 컨설팅’까지…
토론서 종북공세, 문건과 판박이
2011년 10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나경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정보경찰’이 여당이던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비선 캠프’ 역할을 자임한 경찰 내부문건이 드러났다.
야당 후보 동향 파악, 야권 시민단체 사찰, 선거 판세 분석, ‘나경원 귀족 이미지’ 희석 방안, 선거 전후 청와대의 국정 운영 방안까지 담고 있다.
‘정책정보’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이뤄진 경찰의 선거개입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에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치경찰’이 된 정보경찰 기능의 축소 또는 폐지가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선거 50일 전-“이념 공세로 보수층 결집을”
2011년 10·26 보궐선거는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찬반투표 패배로 물러나며 치러졌다. 청와대와 여당으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였지만, 그해 9월6일 ‘박원순-안철수’ 단일화가 이뤄지며 선거 판세가 급격히 요동쳤다.
1일 <한겨레>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당시 정보경찰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들을 확보했다. 이 문건 내용은 당시 이명박 청와대를 거쳐 한나라당 지도부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
후보 단일화 바로 다음 날 정보경찰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좌파 결집 가속화’ 문건(9월7일)을 보면, 정보경찰은 “박원순 변호사가 낮은 지지율과 종북좌파 이미지에도 불구, 단일화 성공으로 서울시장 보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며 “천안함 폭침에 대한 참여연대의 유엔 서한문 발송 등 박 변호사의 이념적 성향과 관련된 공세를 강화해 보수층 결집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색깔론’ 활용 제안은 한달 뒤 나경원 후보의 입을 통해 현실화했다. 선거를 보름 앞둔 10월10일 나 후보는 관훈토론회에서 “박 후보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느냐”고 따졌다.
박 후보가 “그렇다”고 했지만, 나 후보는 “박 후보의 선거 캠프에 참여연대 인사가 많은데, 참여연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서한을 유엔에 보냈다”고 공격했다.
같은 문건에는 “보수단체·언론을 활용해 박원순 변호사를 지원하는 측근 인사들의 그간 불법 행위를 재조명, 좌파 진영에 대한 경계심을 조성”해야 한다는 네거티브 공세도 제시됐다.
■ 선거 직전-“나경원 귀족적 이미지…확장성에 한계” 분석
공식선거운동 기간을 앞두고 나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정보경찰은 ‘맞춤형 정치컨설팅’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망’ 문건(10월7일)에서 정보경찰은 나 후보에 대해 “외모, 판사 출신으로서의 청렴성, 무상급식 주민투표 과정에서 보여준 보수 가치 수호 의지 등”이 강점이라면서도 “‘학원 재벌의 딸’ ‘온실 속 화초’ 등 귀족적 이미지가 강해 서민층으로의 표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신망이 있고 경륜을 갖춘 인물을 정무부지사 등으로 사전 내정, 러닝메이트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치 고려사항’을 제시했다.
“당이 전면에 나서는 대신, 확실한 자료를 갖고 보수언론·단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설득력·신뢰성 면에서 유리”하다는 제안도 했다.
실제 그즈음 보수단체 연합체인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나경원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박원순 후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 선거 직후-MB, 정보경찰 조언대로 라디오연설 진행
서울시장 선거가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끝나자, 정보경찰의 보고는 ‘청와대 책임론 차단’과 ‘보수단체를 통한 박원순 공격’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선거 당일 작성된 ‘서울시장 보선 결과 관련 고려사항’ 문건(10월26일)에는 “내년 총선 전 마지막 선거였던 만큼, (대통령은) 일상적 언급보다는 라디오연설 등을 통해 진정성 있는 대국민 메시지를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젊은층의 높은 정치 참여 의식이 확인”됐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문건 작성 5일 뒤인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연설에서 “지난주 재보궐선거에서 변화를 바라는 젊은이들의 갈망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학력보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정보경찰은 노골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격할 포인트를 짚어주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 시정운영 관련 평가’ 문건(11월21일)에는 “박 시장이 소통 행보에 힘입어 전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며 “서울시정이 반향을 일으키며 긍정 평가를 받을 경우, 국정운영 및 선거에 부담이 예상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보경찰은 대책(조치 고려사항)으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등 보수 시민단체의 감시 활동을 통해 서울시정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야권에 대한 기대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선거관련 문건 작성 수십년 관행”이라는 정보경찰
지난 30일 서울중앙지법은 2016년 4월 총선에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를 받는 정창배 중앙경찰학교장(치안감)과 박기호 경찰인재개발원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정 치안감은 “선거 관련 문건 작성은 수십년간 계속된 관행이다. 정무직 공무원은 청와대를 보필하러 갔으니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치안감과 정 치안감은 박근혜 정부 당시 각각 경찰청 정보국 정보심의관과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며, 청와대와 정보경찰 사이 연락창구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치러진 선거 때마다 정보경찰이 노골적으로 선거에 관여하고, 관련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진박(진실한 친박근혜계) 공천’이 극심했던 2016년 4월 총선 때는 호남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구에서 정보경찰이 선거 동향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개혁위원회 정보경찰소위 위원이었던 양홍석 변호사는 “전국적으로 3천명에 이르는 정보경찰이 정부 여당의 승리를 위해 선거에 동원된 것으로,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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