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고 김홍영 검사에 대한 예의

道雨 2020. 11. 5. 11:37

고 김홍영 검사에 대한 예의

 

이것은 검찰개혁 같은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같은 뻔한 이야기도 아니다. 죽은 자에 대해서 갖춰야 할 예의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던 때를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에 임관했을 때라고 말한다. 임관식에서 아들은 “깡패 잡는 검사가 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아버지는 “야, 무시무시하다”고 말했지만 내심 든든하기도 했다. 아들의 초임지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었고,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다.

 

2016년 5월19일 목요일 오전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아버지는 전화를 받는다. “김홍영 검사가 연락이 안 되는데, 오피스텔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아서요. 아버지 동의가 필요합니다.” 아들 동료 검사의 전화였다. 아버지는 다급하게 소리쳤고, 어머니는 부산에서 서울로 오열하며 달려갔다.

아들 상사였다는 부장검사가 병원에 도착한 어머니에게 아들의 유서 두장을 건네주었다. 33살 2년차 검사 김홍영, 자살.아버지는 의심했다. 연락 한두 시간 안 된다고 부산에 있는 부모에게 전화를 해 경찰을 불러 문을 열겠다고 하는 게 일반적인가? 이전부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서에 적힌 ‘업무 스트레스’가 자살의 모든 이유일까? 아무도 답변해주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는 검사들이 정작 자신들의 문제에는 침묵했다.

 

장례 직후, 아버지는 남부지검과 대검찰청,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묵묵부답. 김홍영의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하자, 겨우 감찰이 시작됐다. 김홍영 직속상관이었던 김대현 부장검사가 김홍영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을 가했음이 확인되었다. 김홍영 사망 3개월 만인 2016년 8월, 김대현에 대한 해임 처분이 이루어졌다.

 

검찰은 이때 설명했어야 했다. 유족을 만나 당신의 자식에게 조직 내에서 부당한 행위가 어떻게 계속되었는지, 왜 막지 못했는지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게 예의였다. ‘사과’나 ‘책임’ 전에, 진실부터 정중히 전달했어야 했다. 그런 일은 없었다. 검찰의 그 어떤 책임 있는 주체도 유족을 만나 설명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김대현 부장검사에 대한 감찰보고서를 보고 싶다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가해자는 해임되었다지만, 유족에게는 그 어떤 설명이나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 3년 넘게 계속되었던 2019년 11월, 대한변호사협회는 김대현 전 부장검사의 변호사 등록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김대현을 폭행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징계만 받았을 뿐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았고, 유가족의 용서를 구하는 사과 내지 진정한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고발 이유였다.

 

이때가 검찰에는 두번째 기회였다. 대한변협의 고발은 검찰의 무책임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대현을 신속하게 조사하고 기소했어야 했다. 그리고 범죄 피해자인 김홍영의 유족에게 기소 내용을 전하고, 그동안의 침묵과 방관에 대해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검찰은 고발장을 접수하고 10개월 동안 피고발인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피고발인이 전직 검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노골적 깔아뭉개기. 참다못한 유족은 2020년 9월 수사가 이유 없이 지연되는 것을 사유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다음달 김대현은 비로소 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김홍영 검사가 자살한 뒤 4년5개월 만의 일이다.

 

1년 전쯤 고 김홍영 검사의 아버지를 직접 뵐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은 뒤 관련 기사와 자료 등을 모아놓으셨다. 아무도 진실을 명확히 말해주지 않으니, 자신이라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만들기 시작한 서류뭉치 두께가 한뼘이었다. 자식 죽음을 다루는 기사를 모으는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이 기록이 어떻게 끝나길 원하시느냐고 여쭈었다. 아버지는 사건 진상 규명과 책임자들의 사과로 끝을 맺고 싶다고 하셨다. 꼭 ‘서면’으로 받아서 서류뭉치 가장 마지막에 묶이길 바라셨다.

김대현에 대한 형사재판이 시작되고, 유족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검찰이 법원 판결 뒤에 숨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죽은 자와 유족에 대한 예의를 갖추길 바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유족에게 김홍영의 유서를 전달한 부장검사가 바로 김대현이었다. 전달받은 유서도 이상했다. 두장의 유서는 다른 필기구로 작성되어 있었고, 페이지 표시도 없는 별개의 내용이었다. 다른 날짜에 쓰였다고 볼 여지도 컸다. 그렇다면 혹시 다른 내용의 유서가 추가로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왜 하필 부장검사 김대현이 유족에게 유서를 전달하였을까? 유족에게는 평생 의심과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사건 관련자가 수사에 관여했다면 그 자체가 중대한 위법이다. 검찰이 유족에게 전달하는 서면에는,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임재성 ㅣ 변호사·사회학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8522.html?_fr=mt0#csidx320f7b5719118599995929fb66abf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