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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해임·징계 제도가 의미하는 것

道雨 2020. 12. 31. 11:32

검찰총장 해임·징계 제도가 의미하는 것

 

 

“내 위에 있는 건 신뿐이다.”(전 검찰총장 이반 타타르셰프)

“나는 신의 도구다.”(현 검찰총장 이반 게셰프)

불가리아의 전현직 검찰총장이 이런 말을 하는 배경에는, 막강한 권한과 견제장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모든 수사를 직접 지휘할 수 있고, 아무에게도 통제받지 않으며, 검찰총장의 위법행위를 수사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이반 게셰프 검찰총장이 임명된 직후인 올해 1월, 불가리아 검찰은 루멘 라데프 대통령의 권한남용 혐의를 암시하는 감청 내용을 공개했다. 게셰프 총리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상 대통령의 면책특권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행위는 의회 다수당과 직선 대통령의 대립 속에, 게셰프 총장이 다수당 편에서 대통령을 겁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에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도발이 이어지자, 국내에선 총장 퇴진 시위가 일어났고,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검찰총장의 무소불위 권한에 통제장치를 마련하라는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유레카] ‘언터처블 검찰총장’에 대한 EU의 권고’ 참조)

임기 7년의 불가리아 검찰총장은 임기 중 해임·정직이 이론상 가능하다. 하지만 제도에 맹점이 있다. 해임은 최고사법평의회 25명 중 17명의 찬성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평의회는 이미 확인된 검찰총장의 위법행위를 근거로 의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총장의 위법행위를 입증하는 절차는 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정직은 최고사법평의회의 검사 징계절차에 따르는데, 징계를 청구할 권한은 검찰총장만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 전통이 오래된 나라들의 제도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검찰총장과 연방수사국장 모두 대통령이 언제든 ‘특별한 사유 없이’ 해임할 수 있다. 해임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도록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의회에서 거부됐다. 카터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검찰총장 해임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라고 지시하자, 그리핀 벨 검찰총장이 그런 법은 위헌이라며 거부했다는 일화도 있다. 미국에는 법집행에 정치적 간섭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법집행 기관들이 정치적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캐나다는 2006년 법무부와 검찰을 분리했다. 법무장관은 서면으로만 검찰을 지휘할 수 있게 하는 등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했지만, 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은 여전히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7년의 임기로 임명되는 검찰총장은 사유가 있으면 언제든 의회의 결의를 바탕으로 총독이 해임할 수 있다.

독일도 법무장관이 총리의 재가를 얻어 검찰총장을 해임할 수 있다. 실제 장관의 수사지휘를 거부한 검찰총장을 즉시 해임한 사례가 있다.(‘[유레카] 독일 검찰총장 해임 사건과 수사지휘권’ 참조)

프랑스에서는 법관과 검사 모두 사법관의 지위를 누리지만, 법관은 해임할 수 없고 최고사법평의회가 인사를 주관하는 반면, 검사의 인사·징계권은 법무장관이 최고사법평의회에 구속받지 않고 행사한다. 프랑스 검찰에는 검찰총장이 따로 없고, 장관이 고등검사장들을 직접 지휘하는 체계다. 검찰이 여권 인사를 봐주는 스캔들이 터지면서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축소하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인사권을 제한하는 법안은 부결됐다. 검사들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주어지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권력의 통제를 충분히 받지 않게 된다는 이유였다.

 

각 나라가 검찰총장의 지위와 민주적 통제에 관한 제도를 형성해온 데는 저마다의 역사적 경험과 민주주의·법치주의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을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처분이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현 제도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진지한 논쟁과 제도적 해결이 필요한 사안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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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6590.html#csidx17fb50ff985c2218808263d72d9bd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