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피해와 고통의 양극화

道雨 2021. 1. 20. 10:19

[김기식 칼럼]

피해와 고통의 양극화

 

고도성장과 사실상의 완전고용 시대를 지나 아이엠에프(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와 진보의 최대 화두는 양극화였다. 아이엠에프 경제위기는 국가 경제와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주었지만, 부담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 과정을 거쳐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가 그 이전에 비해 훨씬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재난적 경제위기가 왔다. 모두가 불편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경제적 피해는 아이엠에프 경제위기에 비해 매우 차별적이고, 취약한 계층과 부문에 집중되고 있다.

 

아이엠에프 때는 재벌조차 구조조정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피해는 산업과 업종에 따라 다르고, 온라인 유통업, 언택트(비대면) 산업 등은 오히려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항공과 여행 산업은 큰 타격을 받은 반면, 현대자동차의 2020년 국내 판매는 전년 대비 6.2% 증가했다. 외국여행을 못 가니 자동차를 바꿨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벌 대기업이나 금융, 공공기관과 해당 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적 피해는 없거나 미미한 반면, 영업금지와 제한으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해당 업종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 자영업 안에서도 피해는 차별적이다. 부동산 등 일부 업종이나, 배달 등 비대면 서비스 전환이 가능한 곳은 급속히 회복한 반면, 헬스장, 노래방 등 영업이 금지되거나 비대면 전환이 어려운 업종, 영세 자영업은 몰락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는 누군가에게는 죽음과 같은 고통이지만, 누군가에는 단지 불편함일 뿐이다.

 

아이엠에프보다 더한 피해와 고통의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아이엠에프 이후보다 더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위기 상황이 1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도 양극화 문제에 대한 진보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3차 재난지원금이 다 지급도 되기 전에, 4차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피해 지원 차원에서나 양극화 대책 차원에서는, 한정된 국가의 재정 지원을, 실제 피해를 받고 있고, 가장 어려운 계층에 집중해야 함은 사실 논쟁의 대상조차 아니다. 국채를 더 발행해서라도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 문제의 논점이 아니다.

 

4인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한 1차 전국민재난지원금 14조3천억은 영업금지 및 제한을 받은 자영업자들에게 해당 기간 월임대료와 최저임금을 지급하고도 남는 규모다. 그 규모를 더 키우면 지원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다.

코로나 경제위기에도 소득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계층에게까지 지원을 하느라, 영업금지로 문을 닫고도 임대료를 내야 하고, 일자리를 잃어버린 분들에게 불과 몇십만원을 지원하는 것은, 고통과 피해의 양극화를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은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 소비 대책 차원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소비 대책 차원에서 불황기에 소비쿠폰을 발행한 국외 사례처럼 전국민에게 지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전반적인 경기침체 상황이 아닌, 피해가 매우 차별적이고 양극화된 지금과 같은 재난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정된 국가 재정을 양극화 대책에 우선해 소비 대책 차원에서 사용할 때냐는 것이다.

두번째는 소비 대책 차원에서도 전국민 지급이 타당하고, 효과적이냐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의 추가 소비 효과가 제한적이고, 특히 중산층 이상의 경우 기존 소비의 대체 효과가 두드러진다는 것은 여러 연구기관의 공통된 분석 결과다. 무엇보다 업종에 따라 차별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지난해 5월 1차 재난지원금 지급 직전 소비는 이미 전년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2차 유행으로 다시 위축되었던 소비도 방역 조치가 완화된 10월경에는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금의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소비 위축은, 경제적 요인이 아닌, 말 그대로 재난적 상황에 따른 것으로, 방역 조치가 완화되면 바로 회복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반면 가장 큰 피해를 본 영업금지 업종엔, 방역 조치가 유지되는 한 재난지원금의 소비 효과는 전혀 없다. 즉 소비의 회복은 코로나 상황에 연동되는 것이지, 재정 투입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재정 투입은 양극화 대책 차원에서는 거의 유일하고 강력한 수단이지만, 소비 대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동기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물론 정치적 고려가 없는 정책이란 없다. 그래도 피해와 고통이 양극화된 현실 속 재정 지원에서 이를 외면하는 것은, 당장 큰 고통을 겪는 분들에 대한 도리도, 책임 있는 정치적 선택도 아니다.

 

김기식 ㅣ 더미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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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79484.html#csidxa946c22153ae7c693881d45400b81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