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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에 채식을 권하면 안 되는 이유

道雨 2021. 10. 23. 09:35

반려동물에 채식을 권하면 안 되는 이유

 

지난 4월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총 638만 가구이며 반려견과 반려묘의 수는 860만 마리에 달했다. 반려견은 521만 가구에서 602만 마리를, 반려묘는 182만 가구에서 258만 마리를 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사료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공장식 사육, 환경오염 등에 반발해 채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본인들이 키우는 반려동물도 채식(초식)으로 키우려는 사람도 등장했다. 실제로 반려동물 식품매장에서 일명 비건 사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양이의 채식은 영양 불균형을 넘어 학대에 가깝다. 사자, 호랑이처럼 반드시 고기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는 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는 어떤 형태로든 고기를 먹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실제로 고양이의 위장은 육식동물 특유의 고단백, 고지방 음식을 소화할 소화력을 갖췄지만, 개와 비교했을 때 탄수화물 소화력과 대사 능력이 훨씬 떨어진다.

수의사 출신으로 사료를 연구, 개발하고 있는 조우재 제일사료 수의영양연구소장은 “고양이는 절대적인 육식동물이며, 건강을 위해 충분한 아미노산 섭취가 필요하다”며 “아미노산이 부족하면 각종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양이를 비건으로 만드는 것은 초식동물에게 육식을 권하는 꼴”이라며 “육식동물에게 채식을 강요하는 것은 엄청난 폭력”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사료협회(AAFCO)는 건조 물질(DM·Dry Matter)을 기준으로 사료의 영양성분 비율을 정하는데, DM이란 수분이 0%인 완전 건조 상태의 영양소를 뜻한다. DM 기준으로 고양이가 하루에 섭취해야 할 단백질 최소요구량은 대략 26%이다. 반면 고양이에게 탄수화물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과도한 탄수화물은 오히려 고양이 비만과 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다. doi: 10.3390/vetsci4040055 

사람을 포함해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혈당이 높아졌을 때 포도당을 분해하기 위해 간에서 포도당인산화효소가 활성화된다. 그런데 고양이는 혈당이 높아져도 포도당인산화효소가 증가하지 않는다. 그 결과 혈당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져 탄수화물을 섭취한 뒤 높은 혈당을 유지하게 되고, 고혈당과 비만 등의 질병을 유발한다. 결국, 고양이는 지방과 단백질 함량이 매우 높고, 탄수화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저탄고단’의 식단이 필요한 동물인 셈이다. 

2013년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수의학과팀은 들고양이의 평소 식단과 영양성분의 비율을 분석했다. 야생에 사는 들고양이는 주로 야생 설치류나 작은 새를 잡아먹는다. 연구팀이 쥐, 두더지, 새 등의 체수분, 조단백질, 조지방 등을 분석해보니 평균 수분 67%, 조단백질 62%, 조지방 11%를 함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체수분을 제외한 영양성분은 DM기준으로 계산됐다. 물론 집에서 키우는 반려묘와 들고양이는 차이가 있으나 집고양이가 먹는 일반 사료에 들어있는 단백질 비율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doi: 10.2527/jas.2011-4503 

이뿐만이 아니다. 고양이는 타우린, 메티오닌 등 몸속에서 합성할 수 없는 필수아미노산이 11종 있다. 아라키돈산과 같은 지방산도 합성하지 못한다. 이를 고기와 생선으로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경우 각종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한다. 

예를 들어 필수아미노산 중 타우린이 부족해지면, 눈 뒤쪽 망막 수용기 세포에 문제가 생겨 시력이 저하되고, 급기야 실명에 이른다. 미국 동물학대방지협회(ASPCA)에 따르면 타우린 부족은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는 심장 질환도 일으킨다. 심장 근육이 가늘고 약해져 혈액 펌프질이 약해지는 질병으로, 몸 전체에 산소를 담은 혈액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타우린 결핍은 새끼 고양이의 발달 문제, 면역 체계 억제, 혈전 발생 위험도 높인다. 

 

아르기닌이 부족해도 치명적이다. 고양이는 육식동물인 만큼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는데, 이때 몸속에서 질소가 많이 생성된다. 질소를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는 아르기닌이 부족하면 요소와 암모니아가 몸에 축적돼 각종 장기에 이상을 일으킨다. 

조 소장은 “인간의 잣대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동물 학대”라며 “육식동물인 동물에게 인간처럼 채식을 권하는 것은 ‘종족의 우상’ 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종족의 우상은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 주장한 개념으로, 자연이나 세상을 인간의 입장에서 판단하며 겪는 오류와 편견을 뜻한다. 

개와 고양이는 유전학적으로 엄연히 거리가 먼 동물이다. 개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늑대의 후손이고, 고양이는 홀로 돌아다니는 아프리카 들고양이의 후손이다. 집고양이는 약 1만 년 전에 최초로 출현했으나, 개는 4만 년 동안 인간 곁에 살면서 인간이 주는 음식을 먹고 살았다.

개의 조상인 늑대는 주로 고기를 먹지만 동물의 알, 야생 과일, 풀도 함께 섭취해 부족한 영양분을 채운다. 늑대의 후손답게 개 또한 잡식성 동물로 식물을 소화할 수 있다. 단백질 최소요구량과 필수아미노산만 충족하면 채식을 해도 적어도 단백질 측면에선 문제가 없다.

개도 고양이처럼 아르기닌, 히스티딘, 이소류신, 류신, 라이신, 메티오닌, 페닌알라닌, 트레오닌, 트림토판, 발린 등 10개의 필수아미노산을 몸속에서 스스로 합성하지 못해 외부에서 섭취해야 한다. 이 아미노산은 식물성 원료에도 존재한다. 이론적으로 콩, 대두 등 특정 식물성 단백질로 필수 단백질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식물의 단백질 함량에서 문제가 생긴다. AAFCO의 기준에 따르면 개의 단백질 최소요구량은 대략 22%다. 그런데 식물은 단백질 수치가 낮고 탄수화물 수치가 높다. 단백질이 20% 이상 함유된 식물이 거의 없다. 최소요구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다량을 섭취해야 한다. 단백질 외에 비타민D, 비타민B1 등 식물에 없는 성분도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 고양이보다 조금 낫지만 개도 비건이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뜻이다.

 

                      *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조 소장은 “개를 위한 비건 식량을 만들 수 있으나 영양학적으로 균형 있는 사료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조 소장은 “시중 비건 사료도 엄밀히 말해 채식주의자들이 원하는 완전한 채식 사료는 아닌 ‘유사 비건 사료’”라며 “식물성 원료에 없는 영양소를 맞추기 위해 타우린 등 아미노산을 첨가하는데, 이는 성분표에 육류로만 표기되지 않을 뿐 결국 동물성 원료”라고 말했다.

인간은 대개 음식을 맛보기 전에 시각 정보에 의존한다. 그러나 고양이와 개는 인간과 달리 색맹에 가깝다. 그 결과 시각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반려견, 반려묘의 사료가 대부분 비슷한 색깔, 비슷한 모양인 이유다. 고양이가 물고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물고기 모양의 사료를 만든다거나, 색소를 넣어 알록달록한 사료를 만드는 일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반려동물에게도 더 맛있는 사료는 있다. 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음식의 냄새다. 개와 고양이는 특히 후각이 매우 예민하다. 사람은 후각세포가 200만~1000만 개뿐인데, 개는 8000만~2억 2000만 개, 고양이는 6000만~7000만 개다.

조 소장은 “고양이는 감각에 매우 예민한 동물로 냄새에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다”며 “이런 이유로 고양이 전문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화장품이나 향수도 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냄새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나는 생선 내장 썩은 냄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반려동물 사료 회사는 사료를 만들 때 인간은 싫어하지만, 동물들이 좋아하는 화학물질을 쓴다. 단백질이 분해될 때 자연적으로 생기는 무색 화학물질 푸트레신과 카다베린이 대표적이다. 동물 조직이 부패할 때 나는 악취와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동물을 학대한다는 비판에도 환경오염과 공장식 도축 등 동물 학대를 막기 위해 반려동물에게 절대 기존의 사료를 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 하나 있다. 곤충 사료다. 

곤충 사료는 일반 사료보다 4배가량 비싸지만, 단백질 함량이 높고 필수아미노산을 모두 제공할 수 있어 영양학적으로 유리하다. 특히 귀뚜라미는 최대 65%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고, 불포화 지방, 식이 섬유, 비타민, 미네랄 등이 모두 풍부하다.

김선영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 농업연구사는 “갈색거저리 유충, 아메리카왕거저리 유충 등 곤충 사료 분야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다”며 “곤충 사료가 일반 동물사료보다 단백질 함량이 더 높은 것은 당연하고, 반려견의 알레르기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곤충 사료는 환경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소(육우)는 단백질 1g을 생산하기 위해 8g의 사료가 필요하다. 반면 곤충은 단 2g만 있으면 된다. 곤충은 온실가스인 메탄을 방출하지도 않는다. 분뇨 등을 관리하기 수월하고 물도 적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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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인 기자 heyn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