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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이 흔들리는 정치적 이유

道雨 2021. 12. 15. 09:23

K-방역이 흔들리는 정치적 이유

 

 

‘케이(K)-방역’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한때 코로나 시대의 3관왕이었다.

첫째, 인구 대비 누적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가장 적은 국가군에 속했으며, 둘째, 선진국 중에서 경제성장의 손실이 가장 적었던 나라였고, 셋째, 방역 규제의 최대 강도가 가장 약하고 봉쇄 기간도 가장 짧은 나라였다.

세계에서 방역, 경제, 자유의 균형을 이만큼 달성한 나라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다. 국민적 자부심의 이유가 될 만하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케이-방역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들이 우리 앞에 있다. 하루 1만명 확진자에 접근하고 있고, 의료현장과 방역행정에는 과부하가 걸렸고, 입원 대기 중 사망 환자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경고하며 비상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백신 괴담, 가짜뉴스, 음모론, 코로나의 정치쟁점화 등, 그동안 서구 나라들을 파국으로 이끌었던 전형적인 현상들이 뒤늦게 한국에서 창궐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이 왜 생긴 것일까?

보건의료상의 여러 요인도 있겠지만, 정치적 요인이 매우 중요하다.

케이-방역 모델의 두가지 강점과 두가지 약점이 있었다.

강점은 정부의 신속한 결단과 시행, 시민의 자발적 자기규제였다. 반면 약점은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공공의료 문제였다. 이 지점에서 발생한 변화가 문제의 열쇠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의 특징은 그 강도가 아니라 타이밍과 집행력이었다. 옥스퍼드대 블러바트닉 정부학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감염 확산 이전에 빠르게 대응했다가 확산이 저지되면 완화한 데 반해, 미국·영국 등 서구 많은 나라는 감염이 확산된 후 대응 강도를 높였기 때문에 훨씬 강하게 봉쇄해야 했다.

 

정부 대응보다 중요한 한국의 성공 비결은 시민들의 자기규제였다. 시민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거나 정부에 순종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먼저’ 반응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선 감염이 확산되기 시작하면 시민들이 먼저 이동량을 줄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부 규제에 협조하는 패턴이 지속됐다.

 

지금은 어떠한가?

최근의 감염 폭증은 정부의 ‘위드 코로나’ 정책에서 시작됐다. 케이-방역의 한쪽 기둥이 변한 것이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이 정책의 섣부른 도입은 감염의 대유행을 허용하여 더 강한 봉쇄와 더 큰 경제 타격을 초래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 결정을 서두른 배경이 뭘까? 방역 규제로 피해를 입는 계층의 소득을 보장할 제도와 재정의 한계였으리라 본다. 케이-방역의 약점이 강점을 눌렀다.

 

시민들의 자기규제에도 변화가 생겼다. 문제는 방역 피로감 같은 모호한 심리 요인이 아니라, 대통령·여당에 대한 신뢰 하락이라는 구체적 변수다. 오현진 고려대 정부학연구소 박사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대통령과 정당들에 대한 지지 성향이 정부 방역정책과 백신 신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강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커지면서, 거리두기, 백신접종 등에 대한 저항도 커졌다. 케이-방역의 시민 쪽 기둥에도 균열이 났다.

 

이렇게 케이-방역의 두 강점이 퇴색하면서 확진자가 급증했는데, 최종적으로 그것이 병상과 의료진 과부하, 재택치료 지원인력 한계로 이어지게 된 원인은, 케이-방역의 두번째 약점인 공공의료 인프라의 결여에 있다. 케이-방역의 약점들이 가시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의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가장 긴급한 것은 시민들이 정견의 차이를 넘어 코로나 대응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관해 대통령과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질병관리청 등 기관이 아무리 설득해도 케이-방역의 강력한 축인 ‘시민의 방패’가 다시 단단해질 수 없다. 백신패스 등 외적 규제보다 시민의 신뢰가 근본이다. 이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다.

둘째, 케이-방역의 또 하나의 축인 ‘국가의 방패’가 지속가능하려면, ‘추적하고, 검사하고, 치료하는 3티(T)’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분명해졌다. 기본적인 소득 보장 없이 합리적 방역이 불가능하며, 공공의료 확충 없이 재난 대응이 어렵다는 진실을 우리는 깨닫고 있다. 보편적 사회보장을 제도화하고 비영리 공공영역을 확대해야만, 우리는 향후 반복되는 감염병 위기에도 정상적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요구되는 것은 정치적 추진력이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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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3255.html?_fr=mt0#csidx43014632d62d2d8b2fb1fb07dd80a7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