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국 보수의 극우 변방정치

道雨 2022. 1. 12. 09:35

한국 보수의 극우 변방정치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이준석 당대표와 다시 손잡고 심기일전 하여 첫 번째로 내놓은 메시지가 달랑 이 두 단어다. 안티페미니스트들이 환호했다. 그런데 정말 폐지 입장인지는 불확실하단다. 원희룡 정책본부장도 나는 모르는 일이란다. 그냥 치고 빠지는 반여성 혐오 놀이였다.

 

‘멸공’.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과 함께 에스엔에스에 올린 단어다. 윤석열 후보는 다음날 신세계 이마트를 방문하여 장을 봤다. ‘윤석열 공약위키’는 이날 장을 본 품목을 ‘달걀, 파, 멸치, 콩. 달파멸콩’으로 요약해줬다. 이어 나경원, 김진태 전 의원 등이 ‘달파멸콩! 멸공! 자유!’ 릴레이를 이어갔다.

설명도, 논리도, 서사도 없다. 그러나 이 외연상의 맥락 없음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메시지의 발신자와 특정 수용자 집단이 그들끼리의 맥락에서 이미 공유하고 있는 어떤 의미가 여기서 재확인되고, 그것을 통해 공동의 정체성이 강고해진다. 철없는 놀이 같아 보이지만, 실은 특정 유권자층을 정확히 겨냥한 결집 전략이다.

 

그런데 여기 진짜 위험이 있다. 생각 없는 행동, 시대착오적 색깔론이 문제가 아니다. 청년 남성들의 다양한 고민과 욕구 중에 ‘반페미니즘’이라는 불씨를 증오의 산불로 키우고, ‘멸공’을 모토로 노년층 일부의 극우 정서와 청년층 일부의 반중 정서를 절멸의 언어로 극단화하는 일을, 지금 지극히 전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 도발적 주장을 대중 앞에 던지고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은연중에 사회 내 증오 세력을 규합해가는 이런 전략은 극단주의 연구자에게 낯설지 않다. 사회 변화의 주류에서 소외된 주변부 정치세력들이 극단적 사고를 가진 폭민들을 동원하여 자기 지대를 다지는 기술이다. 그 짓을 이 나라 제1야당이 하고 있다.

 

지금 목도하는 이런 광경에서 우리는 한국 보수 정치가 경제, 일자리, 부동산, 외교안보 등 사회 핵심 부문에서 건강한 비전을 제시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증거를 보고 있다. 보수 정치는 국민과 국가로부터 탄핵을 당한 후에도 아무런 성찰도 혁신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지금 보수에 남은 것이 이런 잔챙이 셈법이다.

보수는 탄핵 이후의 몇 년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데 다 썼다. 그런 가운데 자신들의 문제와 싸우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보수를 이끌 새로운 사고도, 새로운 지도자도, 새로운 세력도 생겨나지 않았다. 탈진보 유권자들이 비보수로 남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겠는가?

 

지금 보수 정치엔 가치가 없다. 탄핵 후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미래통합당으로,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몇 차례나 바꿨다. 그러나 보수 정치의 시대인식과 지향, 노선, 정책을 두고 제대로 된 성찰과 논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지금 국민의힘이 지향하는 미래 한국 사회를 정의하는 개념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보수에는 리더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최재형, 김동연 같은 인물이 모두 보수의 유력 대선 후보로 등장했고, 그 중 한 명이 결국 제1야당 후보가 되었다. 어찌 보면 문 대통령이 떠날 사람을 등용한 인사 실패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이제 보수 정당 지도자도 민주당에서 나오는 셈이다.

 

지금 보수 정치는 우리 사회의 경제인, 중산층, 노동자 등 상식적인 다수를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지도 않다. 보수의 전략적 거점은 비주류 극단 세력에 있다. 고령층 태극기부대와 청년층 안티페미니스트, 이것이 세대포위론, 세대결합론의 실체 아닌가.

이는 국민 다수는커녕 노인과 청년 다수에게도 가장 중심의 이슈가 아니다. 국민 대다수는 계층격차와 일자리 안정, 안전한 노동, 주거와 노후,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가 가장 긴급한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실망한 사람들이 있다면 무엇보다 이 지점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면 바로 여기서 민주당은 반성과 혁신을, 보수는 더 나은 가능성을 보여주려 경쟁하는 게 상식이다.

 

지금 한국 보수 정치에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이런 난제들에 대해 어떠한 능력과 자질, 진중함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 무능을 가리고 극단의 지지층을 다독이려 벌이고 있는 선동 정치가 참으로 위태롭다.

보수는 이대로 갈 것인가? 선거 전략이 아니라 보수의 양심에 대해 묻는 것이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6818.html#csidx3d39a45916ba4ee8226d5c6a7335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