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모든 진실한 것들은…식상하다

道雨 2022. 3. 2. 09:49

모든 진실한 것들은…식상하다

 

 

                              *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속표지에 있는 친필 메시지.

 

 

내가 쓰는 글이나 하는 말에 대해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평가 중 하나는 “식상하다”는 것이다. 수십년 전부터 해온 얘기들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힐난이 스며 있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모든 진실한 것들은 식상하다.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자신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속표지에 친필로 쓴 내용을 우리는 대부분 익숙하게 알고 있다.

“200년 전에 노예 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당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다.

강의 끝 무렵에 그 글을 가끔 인용한다.

“그 사회에서 누군가는 200년 동안, 100년 동안, 50년 동안 계속 활동했다는 뜻인데, 누구였겠는가? 바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었다”라고 격려하며 스스로 다짐한다.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도 가끔 인용한다. 구고신 노동상담소장이 하는 말이다.

“1800년대 유럽에서 노동자 두명이 술집에 모이는 것도 불법이던 시절, 일곱살짜리에게 하루 열네시간 일을 시켜도 그것이 ‘고용의 자유’이던 시절, 그런 시절부터 피 흘려 만든 법이야, 노동법이… 누가? 당신 같은 사람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못 하고 주면 주는 대로 못 받는 인간들. 세상의 걸림돌 같은 인간들.”

노동운동 하는 우리가 비록 사람들 눈에 걸림돌처럼 보일지라도, 그런 걸림돌들이 세상을 바꿔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죽지 말자는 뜻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내뱉은 말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실천하며 살자’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한다.

며칠 전, ‘무노조 경영’의 상징처럼 여겨져온 대기업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는 소수의 노동자들을 만나 같은 내용으로 강의를 마무리했을 때, 한 청년이 그 장하준 교수의 책 속표지를 다시 보여달라고 했다. 받아 적겠노라고…. 이미 컴퓨터를 끈 다음이어서 “인터넷 검색해보시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라고 답했는데, 그 청년이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 지금도 미안하다. 혹시라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걸 모르고 있느냐’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막심하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식상할 정도로 익숙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역사학자 박준성 선생이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노동운동사 강의 중에 이런 얘기를 했다.

“원산 총파업 당시, 항구에 정박해 있던 일본 상선의 일본인 선원들이, ‘조선 노동자들 파업 승리 만세!’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는 장면을 김학철의 <격정시대>에서 읽은 뒤로, 저는 ‘일본 놈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무렵 일본 산켄전기가 100퍼센트 투자한 한국 기업 한국산연이 폐업을 한 뒤, 한국 노동자들이 폐업 철회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300일 넘게 하고 있었고, 그 투쟁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소식을 들었다. 일본 본사 앞에 찾아가 “위장폐업을 용서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한국의 노동자들이 올 수 없으니, 일본에서 우리가 대신 싸워야 한다”, “한국산연노조 힘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여는 일본 사람들을 보면서 “만국의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야욕”, “세력 균형과 민족 분쟁” 등 보는 관점이 제각각이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총을 드는 시민이나, 러시아에서 연행될 것을 각오하고 전쟁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억압적 지배에 반대하며 진실이 통하는 사회를 원하는 것이지, ‘친서방’과 ‘친러’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볼 일은 아니다.

1931년 5월31일 <조선신문>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 고공농성 노동자’로 불리는 ‘을밀대 체공녀 강주룡’이 아버님에게 남긴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불초여식은 소원이 성취되면 다시 뵙겠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훗날 땅속에서 뵙겠습니다.”

그 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동자들이 비슷한 유언을 남기며 산화했다. 그 유언들을 식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강주룡’ 김진숙씨가 해고된 지 37년 만에 복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훗날 땅속에서라도 만나겠다”는 그런 다짐 때문이었거늘….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