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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보다 더 혹독한 '경제 겨울'이 덮쳐온다

道雨 2022. 7. 2. 12:15

외환위기보다 더 혹독한 '경제 겨울'이 덮쳐온다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으로 IMF 사태·글로벌 금융위기 전조 비견
"국민 숨 넘어가" 정부 비상 대책 가동에도 상황 악화일로

 

여름 휴가철을 맞은 시민들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다. '한파' '살얼음판' 등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 오히려 요즘을 잘 대변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비견되는 경제난 때문이다. 앞선 두 차례의 대위기를 능가하는 '경제적 빙하기'가 엄습하는 중이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속속 들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재계의 레토릭(수사법)은 전에 없이 심각하다. "국민의 숨이 넘어간다"(윤석열 대통령, 6월20일),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이 밀려올 수 있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 6월23일), "곧 6%대 물가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다"(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6월27일), "현재의 사업모델이나 영역에 국한해 기업가치를 분석해서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최태원 SK그룹 회장, 6월17일), "목숨 걸고 하는 거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5월25일)라는 등, 전시(戰時)를 방불케 하는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퇴출 중인 것 아닌가"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IMF 사태와 같은 위기가 다시 닥치면 정말 끝장이니, 모든 기업이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라며 "물가나 금리, 환율, 주가 등의 요인으로 인해 개별 대기업과 국가경제가 (IMF 때처럼) 한 방에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새로운 차원의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날로 악화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취약하다"면서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따른 데미지가 많이 누적된 터라, 어느 순간 크고 작은 폭탄들이 터질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세계시장에서 한국이 서서히 퇴출당하는 중인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이달 들어 일곱 번이나 연중 최저점을 새로 찍었다. 외국인 매도세가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우리 경제의 심각성을 두고 가장 먼저 거론되는 문제는 고물가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5.4% 올라, 13년9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올라선 것도 2008년 9월(5.1%) 이후 처음이다. 6월 또는 7~8월에 6%대 물가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추경호 부총리는 예상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소비자물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다"며, 특히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이 일반 물가 상승을 견인하는 현상)이 심각해 국내외 물가 상승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조짐이라고 진단했다. 

시사저널이 농·축산물 무역거래 플랫폼 트릿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6월20일 현재 한국의 채소류 가격(도매가)은 1년 전보다 19.4%, 육류 가격은 15.9%, 과일류 가격은 10.7% 뛰었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온 농·축산물 가격이 엔데믹 국면에도 전혀 꺾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앞서 트릿지는 3월초 기준 한국의 밥상 물가가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초와 비교해 30% 넘게 비싸졌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관계 당국이 밥상 물가를 안정시키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코로나19 사태 대응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이 인플레이션 압력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벌어진 영향이다. 러시아가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훼손은 주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물가 상승 충격을 안겼다. 

한국의 지난 1년간 채소·과일류 가격 상승률은 트릿지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총 65개국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속했다. 미국(10.9%, 3.3%), 프랑스(5%, 0.3%) 등 같은 선진국 그룹으로 묶인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더욱 두드러진다. 천진우 트릿지 연구원은 "국내산과 수입 농산물 가격 상승세가 함께 나타나, 시장의 충격이 배가되는 중"이라며 "공급 다변화도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은 상태라, 당분간 가격 안정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릿지는 또 조사 대상국 중 35개 개발도상국의 채소·과일류 가격 상승률이 30개 선진국보다 높은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채소류는 35개 개도국 가운데 26곳(74.3%)의 가격이 10% 이상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진국은 30개국 중 12곳(40%)에서 10% 이상 올랐다. 과일류의 경우 개도국은 20개국(57.1%)에서, 선진국은 9개국(30%)에서 상승률이 10% 이상이었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환율에 반영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식품물가 상승률 격차가 벌어지는 원인에 대해 트릿지는 △개도국의 통화가치가 크게 떨어진 점 △개도국 상당수가 사료, 비료, 농기자재 등 농작물 생산에 필요한 주요 자원을 해외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점 등을 꼽았다.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식품물가 상승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낀 한국도 안고 있는 리스크다. 한국에서는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동시에 실물경제가 둔화 조짐을 보이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생산·소비·투자가 2년2개월 만에 동시에 감소했으며 현재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두 달 연속 하락했다. 이는 고스란히 환율에 반영됐다. 

6월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02.8원에 마감해, 2009년 7월13일(1315.0원) 이후 12년11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종가 기준 1300원 선을 웃돌았다. 이후로도 1298.2원(6월24일), 1286.5원(6월27일), 1283.4원(6월28일), 1299.0원(6월29일), 1298.4원(6월30일) 등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중이다. 과거 환율이 1300원 이상 올랐던 시기는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위기 상황이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물경기 악화와 금융시장 불안 확산이 원화가치 하락을 불러왔다"면서 "한국 경제와 기업의 신뢰도 등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다녀온 최성환씨(가명·37)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결혼해 뒤늦게 간 신혼여행이라, 맘껏 즐기고 쓰고 오자는 마음으로 갔는데도, 부쩍 오른 물가와 높은 환율을 맞닥뜨리니 간이 콩알만 해지더라"며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한 것에 감지덕지하고, 면세점 쇼핑은 건너뛰었다"고 전했다.

달러 기준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면세점은 환율이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되는 구조다. 고환율 현상에 물건값도 덩달아 올라, 급기야 일부 제품이 백화점보다 비싼 '가격 역전' 현상까지 발생했다. 내국인의 면세품 소비심리가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팬데믹의 암흑기를 빠져나와 업황 회복을 기대했던 면세 업계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주요 대도시를 봉쇄해 보따리상들의 활동이 제약을 받은 데다, 외국인 단체관광객 회복 속도도 더딘 상황에서, 기댈 곳은 휴가철 내국인 수요 회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 러시에 벼랑 끝 몰린 대출자들 

환율이 이슈로 부상하자, 정부는 환율만 갖고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추 부총리는 6월26일 KBS 방송에 출연해 "IMF 위기 땐 우리 경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으나, 지금은 미국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등시키다 보니,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 강세가 나타난 것"이라며 "주변국과 큰 흐름에서 차이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1300원' 자체를 경제위기 상황의 증표라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환율 외에도 경제위기 상황을 알려줄 만한 증표가 차고 넘친다는 점이다. 현시점 우리 경제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진단도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수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복합의 위기에 경제와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각오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어려움을 '숨이 넘어갈 정도'라고까지 표현하며, 정부 안팎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윤 대통령이 물가 안정과 더불어 핵심 민생 과제로 꼽는 부분은 금리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물가를 잡기 위해 펼치는 금리 인상 정책이 서민 대출자들을 숨 넘어가게 만들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5월26일 기존 연 1.5%였던 기준금리를 1.75%로 0.25%포인트 올렸다. 앞서 금통위는 2020년 3월16일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내리는 이른바 '빅 컷'(1.25%→0.75%)에 나섰고, 같은 해 5월28일 추가 인하(0.75%→0.50%)를 통해 2개월 만에 0.75%포인트나 금리를 빠르게 인하했다. 이후 무려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지난해 8월26일 15개월 만에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통화정책 정상화의 시작을 알렸다. 기준금리는 같은 해 11월과 올해 1월, 4월, 5월까지 약 9개월 사이 0.25%포인트씩 다섯 차례, 총 1.25%포인트나 급등했다. 경기 하강 우려에도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누르기 위해서다. 한은이 긴축 기조를 이어가면서, 연말쯤엔 기준금리가 2.25~2.5%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저금리 시기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족에게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집값 하락 추세와 맞물려 계속 대출이자를 감당해야 할지, 집을 팔아버려야 할지 고민하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4억1000만원을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30년 만기 원리금일시상환)을 받은 경우 1년 전(연 3.88% 금리 적용)에 비해 지금(연 5.05% 금리 적용) 월 이자 부담이 28만원 늘어났다. 고정금리 주담대 상단은 올해 중 연 8%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주담대 8%' 시대가 열린다. 8%대에 진입하면 고정금리로 대출받을 때 지난해(연 4.36% 금리 적용)보다 월 이자 부담이 60만원가량 많아진다. 

국내 최대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도 5월26일 이후 대출금리 인상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자영업자들은 '금리가 또 오르면 장사하기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올라갈 때마다 가계의 이자 비용이 3조원 이상 늘어나고, 기업 부담도 2조7000억원 더 커진다고 한은은 추산했다.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것도 자영업자들에게 악재다. 

"비상 이상의 수준…특단 대책 없으면 나락"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6월28일 "급격한 이자 부담 상승은 영끌족과 자영업자들을 비롯한 경제 주체를 줄도산에 직면하게 한다"며,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이 대출 수요자들에게만 가중되지 않도록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예대 마진(대출·예금 금리 격차)을 점검해 달라고 촉구했다. 어느 하나 빠짐없이 모든 경제 분야에서 절규가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세계은행 출신의 국제 경제개발 전문가인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6월20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경제위기는 사이클로 온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굉장히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사실은 코로나19 발생으로 (IMF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경제 대위기가) 돌아오는 사이클이 조금 지연된 느낌"이라며 "지금은 비상 이상의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엄혹한 겨울이 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규제 완화와 노동생산성 향상, 적절한 과세 등을 통해 우리 경제 자체의 성장력을 키우는 한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장 고통받는 계층을 위해 특단의 복지정책을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스태그플레이션만큼 심각한 잠재성장률 하락세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스태그플레이션과 더불어 잠재성장률 하락을 경제 대위기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가 노동·자본·토지 등 생산 요소를 모두 사용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최대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실제 경제성장률의 장기 추세를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보통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으면 저성장 추세로 본다. 

조 의원은 "코로나19 사태 전부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점점 낮아지는, 즉 경제 전체가 쪼그라드는 상황이 계속돼 왔다"며 "스태그플레이션과 잠재성장률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는 두 마리 토끼인데,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놓치면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이 오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00~07년 연간 3.8%에서, 2007~20년 2.8%, 2020~30년 1.9%, 2030~60년 0.8% 등으로 계속 떨어진다고 봤다. 2020~30년까지는 OECD 평균(1.3%)보다 높지만, 2030~60년에는 OECD 평균(1.1%)을 밑도는 건 물론, 캐나다(0.8%)와 함께 38개국 가운데 공동 꼴찌가 된다. 특히 OECD가 제시한 한국의 0%대 잠재성장률 진입 시기는 국책연구기관이 기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20년가량이나 빠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이토록 빨리,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 문제가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추경호 부총리는 "과감한 정책 기조 전환과 강도 높은 구조개혁 없이는 잠재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OECD의 경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오종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