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종전과 평화만이 장기불황 막는다

道雨 2022. 7. 5. 10:19

종전과 평화만이 장기불황 막는다

 

지난해 초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물가오름세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서머스는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에 이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1조9천억달러 규모의 미국구호계획법 등 천문학적인 돈풀기로, 지속적인 물가오름세와 불황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크루그먼은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공급망 병목이 주원인이어서, 물가오름세는 일시적이고, 불황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금리를 올리면서, 물가오름세에 대한 진단은 서머스의 판정승으로 보이지만, 최근 두 사람은 의견이 일치한다. 불황에 대해서다.
서머스는 지난 1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경제가 향후 6~9주 안에 침체로 들어간다면 물가오름세 압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황이 시작되면 수요가 줄어 물가오름세가 약해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미국이 침체로 들어가면 정책 입안자들이 통화수축을 완화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크루그먼도 같은 날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경제가 아주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많아지고, 2분기에는 경제가 수축될 것으로 보는 것이 가능해서 물가오름세도 빠르게 떨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되는 물가오름세가 겹치는 경기침체, 즉 스태그플레이션이 짧은 기간 동안 생길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스태그플레이션에서 오름세를 뜻하는 ‘플레이션’은 지속적이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연준이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에 대처하기 위해 정책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사람 모두 이제는 물가오름세를 따질 때가 아니고 불황이 엄습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미리 경고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그 불황이 엄혹하다고 비관한다. 그는 6월29일 <프로젝트 신디게이트>에 ‘스태그플레이션 부채위기 어른거린다’라는 기고에서, 현재 물가오름세는 코로나19, 공급망 병목, 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 요소가 결정적인데, 공급 측면으로 인한 물가오름세는 스태그플레이션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통화수축을 하면 경착륙 위험이 커진다고 했다. 그는 경기 경착륙 앞에서 통화당국은 통화 완화 정책으로 다시 돌아설 수밖에 없고, 이는 혹독한 스태그플레이션 부채위기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1970년대의 부채위기 없는 스태그플레이션이나, 2008년 물가오름세 없는 부채위기와는 달리, 스태그플레이션과 부채위기가 복합된 것이다. 그는 거품이 낀 자산가격은 절반 가까이 폭락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1970년대의 장기불황은 중동전쟁에 이은 오일쇼크로 촉발됐지만, 그 근본 원인은 전후 자본주의 체제인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였다. 미국 달러의 힘에 의지한 자본통제와 고정환율제가 붕괴되자, 물가오름세와 경기침체가 장기간 지속됐다. 이는 자본자유화와 변동환율제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벌어진 세계화는 중국의 저가 생산력을 바탕으로 물가오름세를 막았지만, 자산 거품을 야기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최근 물가오름세와 엄습하는 경기침체의 근본 원인이 루비니 교수의 지적처럼 공급 측면에 있다면, 그 근본 원인은 중국을 미국 주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디커플링이다. 30년 동안 그렇게 많은 돈이 풀렸는데도 물가오름세가 없었던 근본 배경은, 중국이 풍부하고도 값싸게 물건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대신 풀린 돈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을 폭등시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제압하려고 디커플링을 시행하면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자, 공급 측면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일고, 부채위기까지 겹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적이다. 풍부한 원자재를 공급하던 러시아를 봉쇄하니, 1970년대 오일쇼크와 같은 위기가 촉발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등 서방은 8%대의 물가오름세로 금리를 올리는데, 중국은 5월 소비자물가 오름세가 2.1%에 그쳐 지방채와 국채를 더 발행해 돈을 풀고 있는 것은 시사적이다. 국외로 가야 할 상품들이 나가지 못하고, 러시아로부터 값싼 석유 등 원자재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된다면, 디커플링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겹치며 폭력적으로 진행돼서, 장기불황이 불 보듯 뻔하다. 우크라이나 종전, 그리고 미-중의 대결이 아니라 건설적 경쟁의 구도를 타협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지금 몽유병 환자처럼 전쟁과 장기불황으로 걸어가고 있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