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민생이 비상인데, 재정은 긴축인가

道雨 2022. 7. 12. 12:20

민생이 비상인데, 재정은 긴축인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이다. 정부는 민생안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기록하는 등, 물가는 연일 오르고 경기는 둔화돼 민생이 비상인 가운데, 정부가 8일 제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취약계층 지원 정책들을 내놨다. 저소득층의 생계지원을 위해 에너지바우처 단가를 인상하고 식료품비와 생필품비 지원을 확대하며 취약계층 복지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식료품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돼지고기 등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과 농산물 조기방출 등도 추진된다. 필요한 정책들이지만 총 8천억원 규모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윤석열 정부 거시경제정책의 방향 자체다. 비상경제민생회의 전날 개최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겠다며 긴축재정 기조를 선언했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50%대 중반으로 관리하고, 특히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내로 유지하는 재정준칙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이후 다시 닥쳐온 복합위기 가능성 앞에서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경기를 둔화시켜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악화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정부의 과도한 재정확장으로 나라 곳간이 비었고 국가채무비율이 빠르게 높아졌다지만, 누가 뭐래도 한국의 재정은 매우 건실한 편이다.

특히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 한도 법제화는 강력한 긴축편향을 만들어낼 것이다. 한국은 연금 수입에 비해 지출이 적어 사회보장성기금 수지가 흑자이기 때문에,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포함한 통합재정수지 적자보다 더 크다. 거시경제에 중요한 것은 통합재정수지인데, 재정준칙에 따르면 통합재정수지 적자 한도는 국내총생산의 약 1%에 불과하다. 이런 정책은 경기관리를 위한 유연한 재정운용을 가로막고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편 정부는 지출구조조정으로 마련한 재원을 가난한 이들에게 더 두텁게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공공부문 개혁은 필요하겠지만, 재원을 생각하면 고유가 시기 정유회사의 높은 이윤에 대한 과세처럼 대기업과 부자에게 한시적으로 증세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의 말마따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부담을 나누고 연대하고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된 경제정책방향은 역시 그와는 반대 방향이다. 정부는 민간 주도 경제성장을 강조하며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 감세를 제시했다. 이는 기업과 부자 감세가 고용과 성장을 촉진해 그 이득이 서민에게도 돌아갈 것이라는 ‘낙수효과’ 경제학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경제학 연구와 역사적 경험은 그것이 환상임을 보여준다. 이 흘러간 주장이 2020년대에 되살아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게다가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며 임금인상 억제를 주문했다. 하지만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22년 4월 임금총액은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해 1분기보다 크게 낮아졌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4.8%에 비해도 한참 낮았다. 결국 실질임금은 하락했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임금-물가 상승 악순환 가능성도 크지 않다.

통화정책도 우려스럽다. 높은 인플레를 배경으로 한국은행은 빠르게 금리를 인상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나 전쟁 같은 공급 쪽 요인이 크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실질국내총생산은 잠재국내총생산보다 낮아 총수요와 경기과열로 인한 물가상승 가능성은 작다.

이런 상황에서 급속한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경기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금리인상과 함께 원화 환율이 높아졌지만, 코로나19 이후 한국의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이 다른 국가에 비해 특별히 심각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외환시장 불안 가능성도 제한적이다. 금리인상과 동시에 재정도 긴축한다면, 경기가 급속히 둔화되고 민생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크게 하락했고, 보수언론마저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통령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지만, 그것은 국민의 어려운 삶을 챙기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실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말로만 민생을 얘기할 게 아니라 경제정책방향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