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道雨 2022. 7. 8. 11:16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현 정부가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는 대통령령, 부령이 헌법과 법률을 무력화하고 있어 사태가 심각하다. 이 사태를 제어할 수 있는 헌법기관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가 있지만, 사법부를 통한 해결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사이에 헌법과 법률 위반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일단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지난달 7일 법무부는 법무부령으로 공무원의 인사를 담당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했다. 그런데 정부조직법에는 법무부가 공무원의 인사 업무를 담당할 권한이 없고, 해당 업무는 인사혁신처 소관으로 명시되어 있다.

법무부는 ‘법무부 장관이 인사혁신처장에게서 인사 업무를 위탁’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주장대로라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업무를 위탁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위탁하고… 이 모든 게 가능해진다.

법무부와 인사혁신처 직무를 장관과 처장이 서로 위탁하고 위탁받은 것은, ‘행정 각 부의 설치·조직과 직무 범위는 법률로 정’하도록 한 헌법 위반이다. 다른 부처도 아니고 법무부 장관이 이런 위헌·위법한 부령을 만들어 내놓다니 놀랍다.

지난달 27일, 행정안전부 장관은 행안부 안에 경찰업무조직을 만들고 경찰청장 지휘규칙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장관은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 사무에 경찰청을 통해 치안사무를 관장하게 하고 있어, 조직 신설도 시행령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틀렸다. 정부조직법상 행정안전부 직무로 치안 업무는 없으며, ‘치안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두고, 경찰청의 조직·직무 범위 등은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따로 정해둔 법률이 ‘경찰법’이고, ‘경찰법’은 ‘국가경찰사무에 관한 인사, 예산, 장비, 통신 등에 관한 주요 정책’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기구로 ‘국가경찰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에는 각 부 장관 소속으로 18개 청을 두도록 하고 있지만, ‘별도의 법률’로 조직, 직무범위 등을 정하도록 한 것은 검찰청과 경찰청뿐이다. 법무부 산하에 ‘검찰국’이 있으므로 행안부 산하에도 ‘경찰국’을 둘 수 있다고 주장하나, 틀렸다. 정부조직법에 법무부 업무로 검찰 업무는 명시돼 있지만, 행안부 업무에 치안 업무는 없다. 그러니 부령으로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위법이요 위헌이다.

지난달 16일,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경영책임자의 의무 명확화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을 포함했고, 지난 4일 고용노동부는 시행령 개정을 공식화했다. 아직 시행령 세부 내용이 나오지 않았고, 고용노동부가 ‘중대산업재해 예방에 도움이 되는 명확한 해석’에 방점을 둔 만큼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5월15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정부에 건의한 내용을 반영한 법 개정안이 이미 집권당 의원 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만큼,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현 정부의 이런 행보에 더불어민주당은 조응천 의원 대표 발의로, 상임위 의결로 위임입법 수정 요구를 할 수 있도록 국회법(98조의2) 개정안을 제출해 놓았고, 대통령과 집권당 원내대표는 ‘위헌’이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개정안은 19~20대 국회 국민의힘 전신 정당 소속 여러 의원들이 발의했던 내용과도 유사한데 이제 와 위헌이라는 것도 의아하지만, 아무튼 개정에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 전에라도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부령은 상임위 의결로 검토 의견을 부처에 송부할 수 있으며, 대통령령은 본회의 의결로 정부에 송부할 수 있다. 정부조직법처럼 여러 조항에 걸쳐 시행령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법 자체를 개정할 수도 있다.

98조의2 개정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상임위원회별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빠른 대처가 필요한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이제 두달 지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저 절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하려면 히틀러를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히틀러는 의회와 갈등하지 않고도 정책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얻으면서 출발했다.’

2015년 영국 캐머런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중요 정책을 추진하다가 의회에 의해 가로막혔을 때, 영국 신문 <가디언> 사설의 한 구절이다. 권력의 남용은 그들 개개인이 나빠서라기보다 견제받지 않아서 시작된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