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윤석열식 신적폐청산’의 위험한 뿌리

道雨 2022. 7. 21. 09:41

‘윤석열식 신적폐청산’의 위험한 뿌리

 

 

 

최근 권력기관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북한 어민 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이른바 ‘윤석열식 신적폐청산’이 시작된 것 같다. 검사 시절 특수통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종북몰이 사건’으로 첫 사정을 시작한 건 의외다. 본게임 전 몸풀기인지 모르지만 뭔가 어설프고 위태롭다.

 

도마 위에 오른 두 사건은 여러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쾌도난마식으로 자르기 어렵다. 정치적 논란이 클 수밖에 없는데, 애초 어느 한쪽의 완승이 힘든 사안이다. 지금의 여론 동향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청산이 압도적 여론 지지 속에 이뤄진 것과 대비된다.

 

사정의 전개 과정도 기이하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이 정권 바뀌자마자 안면몰수하며 직전 수장들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사건 실체와 관계없이 정치적 잣대가 작용한 결과다. 사건들 성격상 마구잡이로 몰아칠수록 국민적 반감도 커질 수 있다.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종북몰이 사정의 배경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최근 발언으로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포럼에서 한 총리는 현 정부의 국정 기조를 압축해달라는 질문에 “대통령이 분명히 하고 싶은 건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 이런 것들을 전체적으로 한번 커버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 세계시민을 여러번 언급한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정을 운영한다면 결국 자유로 귀착되는 것”이라며 “책임 있는 자유에서 혁신이 나오고 경제가 잘될 수 있다. 그런 자유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유에 기초해 민주주의·인권·법치를 새로 확립하고, 경제를 일으키고, 국제사회와 협력하겠다는 게 대통령 뜻이란 얘기다. 굳이 명명하자면 ‘자유주의 대한민국 프로젝트’ 정도일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자유주의 소신은 신적폐청산이 왜 이렇게 진행되는지 짐작게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권에서 우리나라가 자유가 아니라 사회주의, 전체주의에 가까운 운동권의 나라가 됐고, 나라 외교의 근본이 훼손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윤 대통령에게 두 사건은 자유와 인권을 다시 세우고, 대북 굴종주의로 일탈한 지난 정권 인사들을 처벌하고, 북한엔 강경 시그널을 보낼 수 있는 다목적용인 셈이다.

 

그런데 정말로 지난 정권이 탈자유주의, 탈인권, 탈법치, 탈한미동맹, 종북이었나? 그런 시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은 자유주의 좌파, 즉 리버럴에 가깝지, 사회주의, 전체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정권 핵심 중에 독재에 저항하며 한때 이념적으로 경도됐던 전대협 출신이 있으면 그 정권이 곧 사회주의인가? 지난 정권 동안 언론 자유가 무너졌나? 법치를 무시해서 검찰총장 임기를 끝까지 보장해준 건가.

 

한미동맹이 이번 정권 들어 두달새 갑자기 좋아졌다는데, 그럼 지난 정권 때는 망가져 있었나. 지난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맺은 포괄적 전략동맹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인가.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이 좌충우돌할 때 평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애면글면한 게 종북인가. 지난 정권의 잘못은 내로남불과 무능에 있지 자유주의 파괴에 있지 않다.

 

북한 어민 북송 사건은 16명을 죽인 흉악범 문제를 가능한 상식선에서 처리하려 한 것에 가깝다. 다만 조사를 철저히 하고 절차를 엄밀히 지켰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도 마찬가지다. 월북으로 섣불리 단정한 대목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여러 민감한 첩보와 내용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리 떠들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들이 이념몰이성 신적폐청산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달여 계속되는 두 사건 몰이 중에 윤 대통령 지지도는 수직으로 추락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락해야 하는데 왜 거꾸로 된 것인가. 종북몰이의 취약성, 양면성을 국민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집권세력은 종북몰이가 더 이상 국민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우리 정치는 국민의 상식적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양쪽 다 아전인수식으로 반쪽 진실만을 말한다는 걸 국민은 두루 보면서 꿰뚫고 있다. 안보 사안을 두고 짜고치는 고스톱식 적폐몰이에 나서 설사 한두 가지 꼬투리를 잡아 누군가 처벌한다 해도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 지지를 받진 못한다.

 

진정한 자유주의는 자유라는 큰 틀에서 서로 생각과 방법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색안경을 끼고 보는 못된 버릇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할 상대를 종북, 전체주의로 몰고, 그것도 모자라 사정기관을 이용해 처벌하고 내쫓으려는 건,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가 아니다.

 

 

 

백기철 |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