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출산율 꼴찌 두 나라(한국, 싱가포르)의 상반된 대처

道雨 2022. 9. 20. 11:26

한국 망한다는 농담 또는 협박, 2개 그래프에 담긴 진실

[이봉렬 in 싱가포르] 출산율 꼴찌 두 나라의 상반된 대처

 

 

 

지난 9월 5일 통계청이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이라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81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 세계인구가 2022년 79억 7천만 명에서 2070년 103억 명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한국 인구는 같은 기간 5200만 명에서 3800만 명으로 감소할 거라는 내용입니다. 많은 언론들이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출산율이 낮아서 인구가 줄어들 거라는 이 당연해 보이는 예측에, 과연 다른 변수가 끼일 여지가 없을까요?
 

▲ 한국과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 비교. 두 나라 모두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출산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봉렬

 

 

한국과 합계출산율 꼴찌를 다투는 나라가 싱가포르입니다.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2010년 이후 3년 동안 한국보다 낮다가, 그 이후로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그래도 싱가포르는 꾸준히 인구가 증가했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출산율은 비슷한데 두 나라의 인구 전망이 이렇게 다르다면, 그 차이를 만드는 요인을 찾아야 합니다. 제가 싱가포르에 이민을 오면서 싱가포르 인구에 머릿수 하나 더한 사연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비자제도

전 2006년에 싱가포르에 직장을 구해 이민을 왔습니다. 아내와 두 딸도 함께 왔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이민을 오기 위해서는 최소 EP(Employment Pass)라 부르는 취업비자가 필요합니다. EP를 받으면 우리의 주민증과 같은 신분증이 생기며, 이를 이용해 집을 구하고, 은행 계좌를 열고, 전화나 인터넷을 개통하는 등, 시민권자와 거의 동일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DP(Dependent Pass)라 부르는 거주비자를 받아서 학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월급이 높으면 부모도 초청해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 싱가포르의 상징물 멀라이언상 뒤로 금융빌딩들이 보입니다. 시민권자 수가 350만명에 불과한 싱가포르가 나라를 선진국으로 유지하려면 외국인의 유입이 필수입니다. ⓒ 이봉렬

   

 

조건이 좋은 만큼 EP발급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발급 기준을 늘 까다롭게 관리하는데, 지난 9월 1일부터 새로 바뀐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월급이 최소 5천 달러(5백만 원)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40대 중반의 경우는 만 달러(1천만 원) 이상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교육 수준도 학사 학위 이상을 요구하고, 일하는 분야도 정부가 정한 전문 직종 위주로 발급합니다.

이번에 새롭게 점수제도가 생겼는데, 학력과 월급 수준뿐만 아니라 국적과 회사 내 시민권자 비율까지 수치화 하여, 일정 점수 이상에게만 EP를 발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자격요건 외에도 싱가포르 회사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EP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정부 고용 사이트를 통해 최소 2주간 싱가포르 시민권자를 고용하려 노력했다는 증빙을 해야 합니다. 외국인 채용이 싱가포르 시민권자의 실업을 불러오지 않도록 하려는 안전장치인 것입니다.

2년마다 한 번씩 갱신을 해야 하고, 회사를 그만 두면 EP가 취소되어 떠나야 하는 제약도 있습니다.

 


EP가 전문직을 위한 비자라면, 일반직을 위해서는 SP(S Pass)가 있습니다. 주로 제조업에서 일을 하는데, 비자 발급을 위한 최소급여가 3000달러(3백만 원)로 EP에 비해 낮고, 요구되는 교육수준도 마찬가집니다.

 

건설, 해양,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남들이 꺼리는 힘든 일을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WP(Work Permit)가 있습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어도 최소 만 18세에서 50세 미만의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이면 발급이 가능합니다. 다만 산업군별로 고용 가능한 국가가 제한되어 있고, 가족을 데리고 올 수는 없습니다.

SP나 WP로 뽑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월급이 적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싱가포르의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자 발급 전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해야 하고, 채용 후에는 필수적으로 의료보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고용할당제가 있어서 기본적으로 회사 전체 인원의 18%에서 25%까지만 채용이 가능합니다. 회사에서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 시민권자도 그만큼 더 뽑아야 하는 구조입니다.
  

▲ 동남아 인근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이 잔디를 깎고 있습니다. 모두 정식 비자를 발급 받아 일하며 정부의 관리 하에 있습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에는 메이드라 부르는 가사도우미가 약 24만 명 정도 있습니다. 맞벌이가 기본인 싱가포르에서 가사노동과 자녀 돌봄을 맡기 위해, 이웃 나라 인도네시아나 미얀마, 필리핀 등에서 온 여성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을 위한 비자가 별도로 있으며, 정부가 그들의 월급과 복지 수준, 고용주와의 갈등 등을 관리합니다. 메이드로 인해 싱가포르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예술과 엔터테인먼트 분야 종사자를 위한 비자, 사업자를 위한 비자 등, 외국 인력을 데려오고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카테고리의 비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 정부는 각 분야의 글로벌 핵심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해외 네트워크 전문가 비자(One Pass : Overseas Networks and Expertise Pass)를 새로 만든다고 발표했습니다. 내년 1월부터 발급 예정인 이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한 직군에서 최소 월급이 3만 달러(3천만 원. 연봉이 아니라 월급이 맞습니다)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업, 예술, 문화, 스포츠, 과학, 기술, 연구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가 있을 경우에는 3만 달러 이하도 발급이 가능합니다.

이 비자의 특징은 유효기간이 5년이라는 것과 중간에 회사를 그만 두거나 옮기더라도 비자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가족 동반이 가능하고, 배우자도 싱가포르에서 직장을 구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가 원하는 최고의 인재를 구하기 위해 문턱을 확 낮춘 겁니다.
  

 제가 일하는 부서의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중 싱가포르 시민권자는 셋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영주권이나 취업비자를 받아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 시민으로 살 수 있는 영주권과 시민권

싱가포르에서 비자를 받아 일하는 것을 넘어, 아예 싱가포르로 이민을 와서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영주권이 필요합니다. EP나 SP 소지자나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민국(ICA)에서 심사 후 결정합니다. 영주권 취득은 매년 싱가포르의 인구 상황과 정부 정책에 따라 그 수와 기간이 달라지는데, 인구가 400만 명대이던 2000년대 초에 비해 500만대 후반인 지금 조금 더 까다로워지고, 승인까지 기간도 길어졌습니다. 매년 약 12만 명 정도 신청을 하는데, 약 3만 명 정도가 영주권을 받습니다.

영주권을 받으면 취업 상태와 상관없이 계속 거주가 가능하고, 수입이 있으면 우리의 국민연금과 같은 CPF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아파트도 구매 가능합니다. 저는 EP로 싱가포르 이민 생활을 시작한 후 영주권을 받아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저 같은 외국인 영주권자가 싱가포르 인구의 10% 가까이 됩니다.

아예 싱가포르 시민권을 받아서 영구 체류할 수도 있습니다. 영주권을 2년 이상 소지한 21세 이상 성인인 경우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이 됩니다. 시민권 역시 이민국에서 심사 후 결정하는데, 매년 새롭게 시민권을 받는 외국인의 수가 2만 명대에 이릅니다. 매년 3만 2천 명정도 아이가 태어나는 나라에, 매년 2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싱가포르 국민이 되는 겁니다.


  

▲ 출산율이 낮지만 외국인 이민자를 받아 들이고 싱가포르 국적을 주면서 인구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 중 시민권자는 62%,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입니다. ⓒ 싱가포르 인구센서스 자료

 

 

이렇게 다양한 경로로 외국인이 싱가포르에 들어와서 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맞습니다. 싱가포르의 인구가 늘어납니다. 그것도 한창 일할 나이의 인구를 뜻하는 생산연령인구(만 15~64세)가 늘어나게 됩니다. 비자도 영주권도 시민권도 모두 그 연령대를 위주로 발급하니까요.

2010년 싱가포르의 인구는 508만여 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569만 명으로 12% 이상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인구 증가 폭은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외국인 이민을 대하는 한국의 자세

이제 다시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한국의 저출산과 고령화가 얼마나 심각한 지는, 세계와 한국의 인구 피라미드를 비교해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한국 인구가 줄어들 뿐 아니라, 고령인구 구성비가 50년 후에는 46.4%로 증가해서 생산연령인구 46.1%를 넘어설 거라는 예측입니다.
 

▲ 세계와 한국의 인구 피라미드 비교표. 50년 후에는 고령인구가 생산연령인구를 넘어서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 통계청

  

 

출산을 선택할 엄두가 나지 않는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저출산은 되돌리기 어려운 사회현상입니다. 고령화는 이미 예정된 미래입니다. 현 상황에서 인구 감소를 막고 생산연령인구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출산율 제고가 아니라 외국인 유치입니다.

합계출산율이 우리와 크게 바를 바 없으면서도 성공적인 인구정책을 이어오고 있는 싱가포르는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입니다.

그럼 한국은 외국인 이민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하고 있는지 알아보겠…, 아, 알아볼 것도 없습니다. 한국은 아직 외국인 이민을 통합 관리하는 부처조차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고용노동부, 이민과 외국 국적 동포는 법무부가, 재외동포는 외교부가, 결혼이민자와 이른바 다문화 가족은 여성가족부가 따로 나눠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이민을 받아들이는데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도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2020년 기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203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3.9%입니다. 38%인 싱가포르에 비하면 거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정식 취업자격을 받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44만 명으로 그 수가 많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전문 인력은 4만 명에 불과하고, 40만 명은 단순기능 인력입니다.

체류외국인을 국적별로 보면 중국이 42.9%로 가장 많고, 베트남 10.7%, 태국 8.8%, 미국 7.2%, 우즈베키스탄 3.4% 순입니다. 특정 국가에 많이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한국의 체류 외국인 수와 국적별 분류. 지난 5년간 200만 명 수준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중국인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 법무부

 
한국도 외국인 이민에 대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해서 불법체류자만 늘리고 정작 고급 인력 유치는 못하는 게 아니라, 전문직부터 단순기능 인력까지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특정 국가나 민족에 치우치지 않게 조정도 하고, 그들이 한국에서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겪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더불어 우리가 싱가포르처럼 인구의 38%까지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외국에서 온 저임금 노동자들 덕분에 농어촌이 유지가 되고, 공장에서 저렴한 상품을 생산할 수 있으며, 전문직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첨단 산업이 발전하고, 그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가 더 늘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맞습니다.
 

▲ 밭에서 깻잎을 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이제는 이주노동자들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춘희

 
하지만 현실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학대하는가 하면, 전문직 노동자의 유입이 몇 안 남은 양질의 일자리마저 빼앗아 간다고 여기며, 이주 노동자의 유입 자체를 꺼리고 있습니다. 무수한 교회 사이에 이슬람 사원 하나 들어서는 걸 필사적으로 막는 편협함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외국인을 무작정 받아들인다면 사회적 갈등만 키울 수도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가 줄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외국인과 어울려 살 수 없다는 폐쇄적인 우리의 태도가 나라를 망하게 만들 것입니다.

성과도 없는 출산 대책에 매달리지만 말고, 이민에 대한,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