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마늘씨를 빼앗긴 문둥이

道雨 2022. 9. 20. 10:37

마늘씨를 빼앗긴 문둥이

 

 

 

내년에 ‘노인 공공형 일자리’ 6만 개가 없어진다고 한다. 노인들(아마도 65세 이상 70대들이겠지)이 한 달 30시간 일하고 27만 원 받아가는 ‘질 낮은 일자리’(등하교시 아동 보호하기, 배식 보조 등)라고 한다. 

이 일자리는 “일 하고 임금 받아가는 직업이라는 의미보다는, 국민연금 혜택을 제대로 못받아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일정한 수입을 보충해주는 복지의 성격“이 더 강한 듯하다.

 

정부는 대신 연간 267만 원을 주는 ‘시장형 일자리’를 추진한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영빈관을 새로 짓는 등 ‘아방궁놀이’를 하기 위해 벼룩이 간을 빼먹으려는 작태라고 간주한다. ‘시장형 일자리’가 연 250만 원(월 20만 원 남짓?)의 임금을 보장해 준다지만, 나머지 17만 원+α를 투자해서 노인들 스스로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어 보라는 뜻이라지만, 젊은이들과의 경쟁에 나설 노인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부는 그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1년에 267만 원 X 6만 명, 6백억 원 정도를 절약하게 되는 셈이다. 돈이 생겼으니 다시 영빈관을 짓겠다고 나설지도 모르겠다. 간을 빼앗긴 벼룩은 살 수가 없을 것이다.

 

공공형 일자리를 빼앗긴 노인들의 자살이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정부가 절약한 그 6백억 원 속에는 과연 노인 몇 명의 생명이 담겨져 있을까?

‘벼룩이 간을 빼 먹는다’ 보다 더 심한 말도 있다. ‘문둥이 콧구멍의 마늘씨를 빼먹는다’. 남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잔인하고도 인색한 처사를 일컬음인데, 그 정확한 유래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천형의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센병 환자가 최후의 수단으로 콧구멍에다 박아넣은 매운 마늘씨까지 빼먹는 작태를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마지막으로 기댔던 치료수단을 잃은 한센병 환자는 어찌해야 하나?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며, 받는 노인들 태반의 연금액도 35~40만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노인들이 ‘질 낮은 일자리’로 27만 원을 보태 겨우 살아가는 것마저 눈꼴시어, 더 나은 수입을 내세우며 경쟁으로 내몰려는 건가.

 

이 나라가 자본금도 없고, 경영 노하우도 없고, 시장정보도 어둡고, 무엇보다 눈이 침침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팔심도 없고, 걸음걸이마저 위태로운 노인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만큼 블루오션인가.

 

나는 며칠 전까지 ‘노인 공공형 일자리’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다. 아직은 생생한 체력으로 “친구들을 모아 시장형 일자리에 한 번 도전해 볼까?”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복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가?

 

아니, 나는 지금 무척 불행한 상태이다.

이런 무도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태반의 노인들이 그런 무도한 나라를 만드는 것에 한 몫 거들고 있다는 것이, 그들 중 태반이 나라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고, 항의할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런 이들이 글과 말도 할 줄 몰라 내가 대신해 이런 한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 강기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