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측근) 관련

국익 위해 ‘이 ××’ 보도하지 말아야 했나?

道雨 2022. 10. 6. 10:28

국익 위해 ‘이 ××’ 보도하지 말아야 했나?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일본 방문은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는 악몽으로 기억된다.

첫 해외 순방의 빡빡한 일정, 엄청난 보도량, 시차도 힘들었지만, 잇따른 엠바고 요청으로 속앓이를 했기 때문이다. 미 상공회의소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에프티에이(FTA) 걸림돌이었던 쇠고기 수입 문제가 새벽에 합의됐다”며, 협상 타결 소식을 전했다. 12시간 뒤 양국 장관들이 발표할 내용을 먼저 공개한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룸을 찾아와 ‘국익과 국제 신뢰’ 등을 이유로 공식발표 때까지 엠바고를 요청했다. ‘현장에 있던 외신 기자들도 엠바고 받겠느냐’며 옥신각신하던 중, 일본 <교도통신>에서 첫 보도가 나왔다. 일본에선 순방 마지막 날, 기자 조찬간담회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시민들이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는 것이다. 맘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고 말했다. 이후 이 대변인은 ‘국익’과 ‘비공식 대화’를 이유로, 오프(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과 대변인 사이에 거친 말이 오가기도 했다.

 

14년 전에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던 ‘대통령 발언 오프’가 2022년에 가능하겠는가.

처음 대변인실이 ‘이 ××’ 발언에 풀기자에게 오프인지 엠바고인지 알 수 없는 ‘간곡한 요청’을 했지만, 기자단도 마음대로 받아줄 수 없는 게 지금 미디어 환경이다.

 

그런데 13시간 뒤 누구도 예상 못 했던 방식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말실수’는 ‘왜곡’, ‘자막’은 ‘가짜뉴스’로.

70여일 만에 공개석상에 나타나 기자들에게 “저 누군지 아시냐”던 김대기 비서실장이 직접 브리핑장에 나와 “바이든 언급 없었고, ×× 발언도 안 들린다”며, 여섯번이나 “가짜뉴스”라 했다. 고위 당정회의에도 나가 “가짜뉴스로 동맹 훼손”이라며, 사실상 당에 지침을 제시했다.

 

정치·외교 무대에서 이번 같은 ‘핫 마이크’ 사례는 종종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이 각각 기자, 야당을 향해 ‘개자식’(son of a bitch)’, ‘똥 덩어리’(piece of shit)라고 욕하다 들켰지만, 다들 곧바로 사과하고 끝냈다. 2016년 9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마약사범 처형’과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날 비난한다면 ‘개××’라고 욕할 것”이라고 했다가, 보도 뒤 곧바로 사과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국익 훼손을 우려해 보도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고, 여당 의원들이 보도 언론사에 항의 방문해 사장 물러나라 한 적이 없었고, 말실수한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방금 한 말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각각 마이크가 꺼진 줄 모르고 말한 장면이 드러나 사과한 바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당시 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2016년 12월9일 캐나다 의회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오타와/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경우는 있었다.

1971년 피에르 트뤼도 총리가 의회에서 야당 대정부 질의 도중 혼잣말로 욕(f××× off)을 하는 입 모양이 텔레비전 화면에 잡혔다. 그러자 트뤼도는 “f×××이라 한 적 없다. ‘퍼들더들’(fuddle duddle, 아무 뜻 없음)이라 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해명이랍시고 했다.

2015년 총리가 된 아들 쥐스탱은 “퍼들더들은 아니었다 생각한다”며, 사실상 아버지의 쌍욕을 인정했다.

 

44년 뒤,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 ××’ 발언을 후세는 어떻게 기억할까.

역대 청와대도 불리한 보도엔 툭하면 ‘국익’을 앞세웠다.

 

국익과 진실 가운데, 언론이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느냐는 오래전에 논란이 끝난 사안이다.

 

미국이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조작한 ‘통킹만 사건’(1964)을 담은 펜타곤 문서를 1971년 6월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리처드 닉슨 정부는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제소했지만, 대법원은 “언론은 통치자(the governors)가 아니라, 통치를 받는 사람(국민, the governed)들을 위해야 한다”며 <뉴욕 타임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영화 <더 포스트>(2018)에서 잘 드러나듯, <뉴욕 타임스> 특종인데, <워싱턴 포스트>도 회사의 존폐를 염려하면서까지 뒤따라 보도했다.

 

주영진 <에스비에스>(SBS) 앵커는 똑같이 보도한 140여개 언론사 가운데 <문화방송>(MBC)만 문제삼는 국민의힘 의원에게 “<문화방송> 따라간 게 아니라, 저희(SBS)도 나름대로 확인해서 방송한 것”이라 했다.

 

                                                          * 영화 <더 포스트>(2018). CGV 아트하우스 제공.

 

 

<문화방송> 보도에 대해, ‘불명확한 말은 본인에게 확인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기자가 대통령 발언을 일일이 대통령에게 확인하는 건 불가하다. 대변인실이 그 역할을 맡는다.

시끄러운 만찬장 등 말이 잘 들리지 않을 때는 대통령실 직원과 기자가 화면을 다시 들으며 합을 맞춰간다. 그리고 13시간 동안 아무 반론이 없었다. 이번 보도에 ‘사실 확인’을 강조하는 건 원론적으로 맞되, 비겁하다.

 

 

*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 박대출 ‘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TF’ 위원장(오른쪽)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28일 <문화방송>(MBC)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보도와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권태호 | 저널리즘책무실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