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국 정당은 왜 ‘정책정당’이 되지 못할까?

道雨 2022. 11. 22. 10:04

한국 정당은 왜 ‘정책정당’이 되지 못할까?

 

 

 

 

열정과 분노는 개혁의 불씨다. 하지만 더 나은 사회는 그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역사를 보면 개혁 대상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씨가 마른 장작으로 옮겨 타 들불이 되어야 들판을 바꿀 수 있다. 정치의 공간에서 들불이 시민의 드넓은 지지라면, 마른 장작은 헌걸찬 결사체일 것이다.

 

1900년 2월27일 런던의 화요일 아침, 비장한 눈빛의 129명이 안개를 헤치고 삼삼오오 모였다. 이들은 이날 ‘노동대표위원회’란 정치결사체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6년 뒤 노동당으로 이름을 바꾼 이 결사체는, 2차 세계대전 뒤 국가가 실업과 질병 등 각종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복지국가 시대를 열었다.

 

영국이 복지국가를 선도한 배경에는, 80년 전 내놓은 ‘베버리지 보고서’란 비전과, 이에 기초해 개혁정책을 현실화한 노동당의 일관된 실행이 있었다.

창당 이래 최초로 단독 집권에 성공한 노동당 클레멘트 애틀리 내각(1945~1951)은 건강, 주거 등 각 분야 개혁정책을 제도화함으로써, 전쟁 상흔으로 가득한 폐허를 희망의 땅으로 바꿨다.

 

이처럼 서구에서 정당은 당대의 절박한 문제를 풀 비전과 정책대안을 마련하고, 시민의 정치에너지를 수렴해, 빈곤과 질병 등으로부터 시민권을 보장해낸 핵심 정책결정자이자 정치결사체였다. 이런 정당을 우리는 ‘정책정당’이라고 부른다.

20세기 유럽 복지국가는 정책정당이 주도한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대한민국 정당은 어떤가.

당원 수나 조직 등 외형적으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11월 현재 등록된 정당 수는 46개다. 이중 국회에 진출해 입법활동을 하는 정당은 다섯. 더불어민주당(169석)과 국민의힘(115석)이 소속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정의당이 6석, 기본소득당 1석, 시대전환 1석, 무소속이 7석이다.

이들 정당은 의석수와 득표율에 따라 국고보조금(1400억원)을 나눠 받는데, 90%는 두 거대정당의 몫이다.

의석수나 교섭단체, 영향력 등으로 보건대, 한국은 양당체제 국가다.

 

선관위 ‘2021년 정당의 활동 개황 및 회계 보고’를 보면, 당원 수도 전체 인구의 20%에 이르는 1042만명에 이른다. 역시 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원이 각각 485만명, 407만명이다. 당비를 내는 당원 수만도 민주당 102만명, 국민의힘 60만명이다. 150여년 역사의 독일 사회민주당 당원 수가 40만명 조금 넘고, 영국 노동당도 기껏 50만명 언저리인 점을 고려하면, 외형상으로는 모자랄 게 없는 모습이다.

 

이런 외형적 성장에도 우리나라 정당은 정치불신의 진원지로서 시민들한테서 외면받고, 공론장에서는 동네북처럼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2021년 3월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정당은 주요 정치·사회기관 통틀어 가장 신뢰도가 낮아, 응답자 열에 한명만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시민의 삶에 직결되는) 복지를 비롯해 시민사회의 이익을 집약하고 이익집단들의 갈등을 조정하는데 무능력하기 짝이 없었다”(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기실 더 심각하고 고질적인 문제는, 정책의 생산에서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정책결정 과정, 즉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에서 여전히 주변적이거나 혹은 보조적 행위자에 머문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 서른해가 훌쩍 지났는데도, 정당은 늘 정책결정의 핵심 행위자로 발돋움하지 못했다.

 

실제 국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정책을 도입하거나 개혁하는 과정에서, 정당이 정부를 끌어가는 주도적 역할을 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현 여당인 국민의힘이나 같은 계열의 역대 정당에서도,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민주당이나 같은 계열 역대 정당들 모두 마찬가지다.

 

정치학자인 장훈 중앙대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에서 정책정당은 밤하늘의 ‘북극성’같다고 비유한다. “밤하늘에 밝게 빛나며 우리가 가려는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좌표를 비춰주지만, 그에 다가가는 노력은 성공하지 못한 채 하늘에 뜬 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정책정당과 정당정부는 이론이나 규범적 목표로 존재할 뿐 구체적 현실이 되기 어려웠고 “한국 민주주의 30여년 역사는 정책정당이란 목표와 기대에 대한 좌절의 역사”였다.

 

소수정당과 원외 정당은 의석수나 재정 등 여러 한계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모여 있고, 200여명에 가까운 당직자와 막대한 국고보조금까지 지원받는, 더욱이 수차례 집권한 두 거대정당은 왜 지금껏 대한민국 정치와 정책생태계에서 정책정당이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을까? 나아가 왜 민주화 이후 아직도 한국 정당은 정책을 통해 경쟁하며 시민의 더 나은 삶과 밝은 미래를 여는 주도적 정책행위자가 되지 못하는가?

 

장 교수는 세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념이나 조직보다 특정 정치지도자 개인이 지배하는 허약한 선거정당이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인 데다, 시민사회와 연계구조가 취약하고,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서 대통령과 관료의 지배력에 눌려 위상과 역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는 “분단 현실과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추구한 구체제”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이런 상황이 “이념적 파라미터(매개변수)가 극히 협소한 정당체제를 구조화”했고, 한국 정당이 “포괄정당을 지향하도록 해, 이념과 정책보다, 여당이냐, 야당이냐의 차이를 지니도록 했을 뿐”이라고 진단했다. “이념적 차이가 약한 정당들이 차별성을 내세우려다 보니, 그저 수사만 화려하고 강하게 표출하는 현상을 보였다”는 얘기다.

 

여야 정당 소속 의원들의 평가는 어떨까.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너무 잦은 선거와 관료에 포획된 정치구조, 정책을 가다듬고 검증하는 싱크탱크 부재 등 삼중고를 원인으로 든다. 그는 “의원이 된 이래 지난 2년간, 6개월에 한번꼴로 선거를 치렀다”면서 “정치행위인 선거로 인해 정책행위를 할 축적의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대선 때마다 정책이 정당이 아닌 후보 캠프에서 개발되고 결정되는” 현실을 들며 “정책이 사적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구조에선, 정당은 결코 유능한 정책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될 수 없다”며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궁극에는 선거제도, 제왕적 대통령제 등 정당의 정책기능을 가로막는 외부적 요인을 손질해야 정당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당 내부의 부실한 정책논의 시스템, 정당 연구소의 취약한 정책생산 능력, 양성보다 ‘깜찍 영입’에 치중하는 정치인 충원구조 등 정당 내부의 “총체적 정책아마추어리즘”(신광영 중앙대 교수)이 정책정당으로 가는 길의 걸림돌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렇듯 정당이 문제투성이고 정책정당의 길에 숱한 장벽이 있다고 해서, 정당의 존립 의의와 ‘정책정당’이란 목표마저 놓을 수 있을까. 선거경쟁으로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고 집권을 통해 정책과 법을 만드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자율적 정치결사체로서 정당보다 나은 모델이 있을까.

정책정당 없이 더 나은 사회로의 획기적 전진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정당이 시민(유권자)의 욕구를 얼마나 공공정책으로 현실화하는가에 시민 삶의 질이 달려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정당이 가장 핵심적 정책결정자 구실을 해온 유럽에서도 정당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팽배한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결국 한국 정당은 오늘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비전을 공유하고 현실화할 정책정당 확립이란 오랜 목표와 함께,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팬덤정치 등 서구 정당들이 직면한 도전에도 대응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창곤 |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